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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군산] 프리-코로나 군산 나들이 (ft. 부여) 코에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군산에 가 보기로 했다. 원래 생각했던 곳은 부산이었는데 일행이 생기고 기차가 아닌 차로 교통편이 바뀌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 부산이 군산이 되는 기적이. 엉뚱하게 부여에 꽂혀버렸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군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부여' 표지판을 본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왕 나왔으니, 이왕 가는 방향이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이런 생각이 문제다 에잉. 아무튼 그런 이유로 부여로 빠져서 정림사지와 국립부여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정림사지는 이름 그대로 오층석탑과 건물 터만 남아서 을씨년스러웠다. 석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요하고 아름다웠지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준비하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그 불상. 박물관에 전시된 건 복제품이고 진짜는 서산 가야..
창덕궁의 가을과 겨울 #2 후원으로 간다. 여기서부터는 해설사가 동행해야 한다. 창덕궁 전각들을 돌아보는 사이 몸이 얼었다. 다른 데는 괜찮은데, 얇은 첼시 부츠로는 아무래도 한겨울 야외 활동을 견디기 어려웠다. 조금 튀어도 무릎까지 올라오는 털 부츠를 신었어야 했나. 좀더 보온에 신경 쓰지 않은 나와, 똑같은 날씨를 코트 한 벌과 목도리로도 거뜬히 견디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추위를 타는 것인지 저 사람이 추위를 안 타는 것인지, 아리송하고 왠지 억울해지는 사이 예약 시간대의 해설사가 입구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앞에 섰다. 가을에 왔을 때는 같은 시간대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99명이었다. 나까지 더하면 100명. 한손에 쏙 들어올 듯한 휴대용 앰프와 마이크를 든 해설사 한 명이 이걸 다 통솔할 수 있어? 내심 ..
창덕궁의 가을과 겨울 #1 2022년 새해를 대비해 2021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은 창덕궁 후원 예매. 2019년 가을에 다녀온 후로 후원에 다시 가고 싶어 적당한 시기를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딱 1월 첫째 주 말에 눈이 내린다는 기상 예보가 떴다. 눈 내린 하얀 고궁을 보는 걸 '이번 겨울에 꼭 할 일'로 꼽아두고서도 정작 2021년 첫눈이 내린 날에는 후다닥 궁으로 달려가지 못한 걸 두고두고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지. 정작 창덕궁을 다시 찾은 날에는 기대만큼 눈이 내리지 않았고 내가 본 것은 눈이 소복소복 쌓인 궁이 아니라 낙엽도 채 남지 않은 삭막한 풍경이었지만 3년 전 가을과 이 겨울의 풍경을 머리 속에서 비교하며 궁을 둘러보는 것도 고궁을 좀더 다양하게 살펴보는 방법이지 싶다. 대강 '이번보다 지난 가을에 찍..
210915_말하기 어려운 시대 (ft. 의식의 흐름) 오랜만에 쓰네, 하루에 한 줄. 일년에 한 줄로 고쳐야 하나? 나 요즘 '금쪽 같은 내 새끼' 열심히 봐. 미래를 걱정해 줘야 할 애는 없지만, 오은영 박사님이 부모들에게 해 주는 말을 덩달아 듣고 있다 보면 나도 새겨 들을 만한 말이 많더라고. 내 어린 시절에 대입하게 되는 말도 더러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공감한 건 '말'에 관한 거였어.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부모들의 가장 흔한 고민은 아이의 '떼'야.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얻을 때까지 악을 쓰며 조른다고 하소연해. 아이의 떼쓰기를 유발한 원인과 맥락은 케이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아이들이 자기 감정을 좋은 말로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는 거야. 아이들은 배우지 않았으니까 모를 수 밖에 없고. 그러니 부모가 해야 하..
['17 서울야행] #Ep3 주말 낮, 서촌에서는... 다음 목적지는 통인시장. 박노수 미술관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곧바로 시장 입구가 나온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길을 잃어버린 후 내게 골목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서촌에서 통인시장 찾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행동 치료 역할을 했다. 그만큼 쉽다. 통인시장 가는 길에 지나친 맛집과 카페자주 지나다녔는데 아직까지 못 가 봤네. 밥도 먹은 마당에 시장은 왜 왔나 하겠지만, 첫 번째 이유는 경복궁에 가기 전에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고 두 번째로는 후식으로 먹을 간식 없나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서촌에 있는 서울 시내 유명 시장으로 매스컴도 여러 번 탔던 곳이라 호기심이 일었다. 막상 와 보니 통인시장은 건물 사이에 아케이드를 만들고 지붕을 덮은 모양새다. 오일장 같은 게 아니라 상설이구나. 내가 자란..
201121_책 또 버리기: 책장은 미니멀, 지식은 맥시멀 책을 또 버렸다. 미니멀 라이프는 중독인 걸까. 지난 7월, 작정하고 책을 중고로 팔거나 버린 이후로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또 처분할 것이 없나, 깜박 하고 버리지 않은 건 없나, 하고 책장을 훑어보는 습관. 인터넷 중고서점에서는 매입가를 높게 쳐주지 않기 때문에 중고책 팔기가 쏠쏠하긴 해도 큰돈을 만지는 일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돈보다는 책장에 빈 공간을 만들어가는 게 훨씬 즐거웠다. 빈 공간이 늘어갈수록 책장에 가득 꽂힌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책장에 꽂힌 책은 분명 취향이 반영된 결과이지만, 현재의 나도 과연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사람의 자아는 그 어느 순간에도 완성되지 않고, 그 자아를 형성하는 인간 내외의 모든 자극과 아웃풋도..
[국체론] 극일보다 지일해야 하는 이유 평소 눈여겨 보던 출판사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년 '사쿠라 진다'와 '속국 민주주의론' 그리고 '영속패전론'에 이르기까지, 시라이 사토시의 책을 (어쩌다 보니)놓치지 않고 읽어온 터라 고민할 것도 없이 냉큼 신청했고, 당첨되었다. 서평이라는 걸 써 본 적이 없어서 바로 후회했지만. SNS 등에는 글자 수 제한이 있으니 중언부언하는 나한테 SNS 서평 쓰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블로그에서 조금 길게, 서평 아닌 감상에 더 가깝게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 9월 14일,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가 총리직에서 사퇴했고 그 뒤를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가 이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 후 스가 신임 총리는 "아베 총리가 추진해 온 정책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 나의 ..
[나무의 시간] 은은한 나무 내음 #삼다독 #나무의시간 연휴 직전 대출. 존재는 알았지만 나무에는 관심도 없어서 모른 척 했는데, 실물을 보니 책 표지가 고즈넉하고 부들부들 촉감이 좋고 결정적으로 도서관 책 치고는 꽤 깨끗해서 빌려왔다(초 3 여름방학 숙제인 독후감 첫 줄로 '선생님이 쓰라고 해서 쓴다'고 썼다가 개학날 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내 독후감을 낭독하신 게 갑자기 기억나네. 감각적이고 시니컬한 독서는 유구하다). 전문 서적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훌훌 읽을 수 있겠지만, 나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훨씬 무겁고, 그 애정으로 쌓아올린 지식과 감상은 소재와 분야를 넘나든다. 300쪽이 넘도록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애정은 어떤 것일까. 그런 애정을 그 무엇에도 가져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부럽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한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