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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Voyage/외출 #excursion

창덕궁의 가을과 겨울 #2

 

 

후원으로 간다. 여기서부터는 해설사가 동행해야 한다. 창덕궁 전각들을 돌아보는 사이 몸이 얼었다. 다른 데는 괜찮은데, 얇은 첼시 부츠로는 아무래도 한겨울 야외 활동을 견디기 어려웠다. 조금 튀어도 무릎까지 올라오는 털 부츠를 신었어야 했나. 좀더 보온에 신경 쓰지 않은 나와, 똑같은 날씨를 코트 한 벌과 목도리로도 거뜬히 견디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추위를 타는 것인지 저 사람이 추위를 안 타는 것인지, 아리송하고 왠지 억울해지는 사이 예약 시간대의 해설사가 입구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앞에 섰다.

 

 

후원 관람 제한 인원 100명이던 시절

 

 

가을에 왔을 때는 같은 시간대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99명이었다. 나까지 더하면 100명. 한손에 쏙 들어올 듯한 휴대용 앰프와 마이크를 든 해설사 한 명이 이걸 다 통솔할 수 있어? 내심 놀랐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그 와중에 일행끼리 뭉쳐서도 낯선 동행자의 발뒤꿈치를 밟거나 어깨를 치는 일 없이 해설사를 졸졸 따라 다녀서 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무질서 속의 질서, 무심한 듯한 젠틀함, 그런 게 이런 건가. 그 무리 중 하나이면서도 나는 마른 체격의 해설사 한 명을 쫓아가는 우리가 목동을 따라가는 양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첫 유럽 여행 때도 이런 경험을 했는데.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모 여행사의 무료 야경 투어가 열렸던 날, 한국인 수십 명이 가이드 딱 한 사람을 두세 줄로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에 지나가던 프랑스인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걸 봤던 기억도 난다. 창피하다기 보다는 우리 자신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다가 흥이 올랐던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이 공짜 투어를 즐기고 있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말을 섞고 갸악갸악 웃기도 했으니까.

 

종국에는 여름밤 노상에서 와인 까고 놀던 파리 젊은이 몇 명이 이 무리에 합류해서 같이 돌아다녔다. 퐁뇌프에서 우리를 보고 (비)웃더니 퐁데자르에서는 우리 무리의 남자들과 어깨동무하고 알렉상드르 3세교까지 따라오더라니까? 무슨 의형제인 줄.

 

아, 요즘 후원 관람 제한 인원은 시간대별 50명이다. 코로나 때문에. 훨씬 쾌적해진 관람이 코로나가 후원에 미친, 유일한 긍정적 영향이랄까.

 

 

 

후원으로 올라가며 후원 입구를 찍어보았다

 

 

근데 왜 이번에는 정식 한국어 해설에 키 큰 외국인이 끼어있는 거지...? 궐내각사 권역 어느 문에 기대서 알파벳으로 쓰인 여행책을 읽고 있던 양반이 왜 여기 있는데ㅋㅋㅋ

 

 

 

사엄많(사람 엄청 많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성수기의 후원 부용지. 리즈 시절...은 조선 시대일테니까 지금은 그렇게는 못 부르겠구나. 아무튼 사방에 사람 밖에 안 보이던 부용지. 도떼기 시장 같아서 조금 짜증났는데 이제는 이 광경이 그립다. (아련)

 

 

 

가을과 겨울의 부용정. 필터가 조금 꼈지만 뭐 느낌은... 전달되겠지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지만, 흙탕물에서도 피어나는 모습에 기품이 어려있다 해서 유교에서는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청빈과 고고함을 상징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가만 있었겠냐고. 왕궁에 연꽃의 이름을 붙인 정자와 연못까지 만들어서 덕질(?)했다. 지금도 연꽃이 핀다는데 여름에는 감히 창덕궁을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부용지 한가운데 섬은 이제는 잘 알려진 대로 정조가 신하들, 특히 정약용을 유배(?) 보내던 곳이다. 제시간에 시를 못 지으면 조각배에 띄워서 귀양 보내곤 했다는데 지금이야 근엄한 줄로만 알았던 정조가 그런 장난기 있는 분이었냐며, 유쾌하게 웃지만, 왜 아무도 당하는 정약용 입장 왕이니까 참는다 에서는 생각 안 해 주냐고요. 물론 나도 그냥 꽁꽁 언 부용지에서 스케이트 타면 안 되나, 이런 거나 상상했지만.

 

 

 

 

 

부용지에 비치는 부용정과 주합루의 그림자가 은은했다. 둘러볼수록 이 풍경 자체가 보물이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이 가능한 많이 내 새끼 예쁜 거 알아줬으면 하는 보물. 그런 의미에서 2018년 후원 영화당에서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손님맞이를 했던 건 꽤 세련되고 칭찬받을 의전이었다.

 

잠깐 다른 이야기. 이번 후원 방문에서는 해설사가 이런 비화를 들려주었다. 창덕궁 후원을 또다른 이름인 '비원'의 영문명 'Secret Garden'으로 소개하곤 하는데, 영단어 garden은 정원사가 반듯하게 손질하고 가꾼 서양식 정원을 의미하다 보니 외국인 관람객들은 '이게 무슨 garden이냐'고 실망한다고 한다. 한국의 정원 문화에 익숙치 않은 이들의 이해를 돕느라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깝게 정원에 대응하는 garden을 쓴 탓이다. 이야기를 듣고 웃었지만 외국인들의 오해가 못마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부용지 주변으로 자유분방하게 우거진 수풀이나, 뚜렷한 상징과 가치를 담아 세워진 정자들이 어우러져 연못에 비치는 풍경은 오직 한국어 '정원'이라는 단어로만 제대로 설명될 것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제는 한국식 정원을 '정원', 하다 못해 'jeong-won', 후원은 그냥 후원, 뭐 이렇게 알아가면 좋겠고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식 정원의 풍경은 고유하고 그것을 묘사할 말과 글도 고유하다. 유럽은커녕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도 닮아있지 않다. 이 보물 같은 풍경이 온전히 우리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묘사할 말이 있다는 게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겠어.

 

이런 생각이 소위 국뽕인가 싶지만, 그냥 문화적 자신감이 커져가는 세대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 같은 거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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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합루 가까이 다가갔다. 2019년에는 어수문을 지나 주합루 본 전각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는 해설사의 안내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때문인지 추운 계절 탓인지 아니면 문화재 보호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예전 기억이 잘못됐든지, 뭐 아무튼 이번에는 주합루에 올라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쉽지는 않았다. 저 계단을 올라가라고 하는 게 더 가혹하다.

 

 

 

겨울 후원도 예쁜데 겁나 추워

 

 

줄곧 실외에 있는데도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해설사도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관람객들끼리 일정 거리를 두고 마스크도 제대로 써 달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창경궁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며칠간 창경궁이 폐쇄되었다나. 어떤 남자 분은 턱스크하고 있다가 큰소리로 주의를 받기도 했다. 방역 수칙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해설사의 말에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마스크 안쪽에서는 비염과 추운 날씨 때문에 콧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마스크 덕에 흉한 모습을 안 보였네. 마스크를 제대로 쓰는 게 여러 모로, 모두에게 다 좋은 일이었다.

 

 

 

'19. 10월 영화당

 

 

가을의 화사함은 어딘지 묵직하게 빛이 부서지는 것처럼 보인다. 단풍 때문인가.

 

 

 

'19.10월 애련지

 

'19.10월 애련정

 

 

단풍철 후원에서 가장 멋있고 운치있는 곳.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은 연못과 정자의 조합을 참 사랑하셨던 것 같아...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던 효명세자가 책 읽고 공부하려고 지은 의두합과 운경거도 애련지를 바라보고 서 있다. 독서실에 등록하는 대신 독서실을 만들어버린 세자 저하 클라스.

 

 

 

 

 

관람지 권역으로 들어서서 곳곳에 배치된 정자들을 둘러본다. 관람지를 빙 둘러가는 길에 저멀리 존덕정이 보이고 나무 사이로는 연못에 가장 가까운 관람정이 있다. 이 각도 저 각도에서 관람정을 뜯어보다가 기시감이 들었다. 알고 보니 '킹덤' 시즌 1 초반에 좀비 왕한테 뜯어 먹힌 시신들을 던져두던 곳(...). 이 고즈넉한 정자와 연못을 좀비 수장지로 쓰다니 김은희... 무서운 사람...

 

 

 

 

 

옥류천이 원림 느낌이 좀더 강해서 산 속에 들어온 듯 유쾌하고 진지해지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옥류천 권역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후원에서도 깊숙한 곳에 있고, 가는 길이 오르막이라 그렇지 않아도 더위와 추위에 지친 사람들이 관람을 포기해서 아예 관람 코스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왕도 여기까지 갔냐'고 씩씩댄다는데, "왕은 가마 타거나 말 타고 갔겠죠"라는 해설사의 쿨한 첨언에 웃음이 터졌다. 나도 딱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ㅋㅋ 교토 수학원 이궁의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갈 때도 '왕이 자기 다리로 걸어서 올라와야 했으면 이딴 식으로 정원 안 만들었을걸?'하고 투덜댔던 기억도 떠올랐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가을에는 내심 감탄했던 옥류천까지 가지는 못하고 연경당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와 어머니 순원왕후의 존호 의식을 위해 만들었다는 연경당. 역시 양반 사대부 집을 본따 만들어졌지만 실제 헌종과 경빈이 지냈던 낙선재와는 달리 연경당은 주거보다는 연회 목적을 위해 지어졌다. 게다가 양반가를 모방했어도 왕가의 건물답게 사대부가의 상한선인 99칸 이상의 규모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런 배경지식 없이 연경당이 왕가의 것임을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은 부엌의 유무 여부인 듯. "안채에도 부엌이 없네"라는, 눈썰미 좋은 일행의 지적이 아니었으면 대충 해설사의 설명만 알아들은 척 하고 지나갈 뻔 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의문인 건 왕가가 굳이 일반 사대부의 집을 본따 건물을 세운 이유. 왕도 한 사람의 선비이자 사대부라는 인식이 있었던 건지, 그냥 민가의 생활 양식을 궁금해 하다 못해 동경하기까지 한 것인지. 아, 해설사한테 이걸 물어볼걸.

 

겨울 후원 관람은 연경당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해설사가 이끄는 대로 창덕궁 가장자리 길로 걸어 돈화문으로 향했다.

 

 

 

 

 

헤어지기 전 해설사가 곁가지로 소개해 준 향나무. 무려 750살이라고 하니 나무의 삶 대부분을 돌봐준 조선 왕조보다 더 오래된 셈이다. 나이도 많고 10여년 전에 태풍 피해도 입어서 제 힘으로는 곧게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 주변 곳곳에 지지대를 세워서 힘없이 늘어진 줄기를 받쳐주었다. 늙어도 너무(?) 늙어서 그대로 고꾸라지기는커녕 이대로 승천할 것 같다. 천년째 되는 해까지 빠이팅.

 

 

이렇게 새해 창덕궁 구경 끝. 가을에 처음 왔던 창덕궁과 그때의 인상을 되짚으며 이러쿵저러쿵 생각을 덧붙여 보았다. 가을에 찍은 사진이 아까워서 마구 휘갈기느라 제목이 거창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글이지만 집에 돌아와서 가을의 기억에 겨울의 것까지 더해서 돌아보니 이것도 새롭네. 볼 거 다 본(?) 창덕궁이 더 좋아지기도 하고. 이제는 봄과 여름에도 가 봐야지. 2022년 계획에 적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