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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Voyage/외출 #excursion

['19 군산] 프리-코로나 군산 나들이 (ft. 부여)

 

 

코에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군산에 가 보기로 했다. 원래 생각했던 곳은 부산이었는데 일행이 생기고 기차가 아닌 차로 교통편이 바뀌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 부산이 군산이 되는 기적이.

 

 

 

엉뚱하게 부여에 꽂혀버렸지만.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고속도로를 타고 군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부여' 표지판을 본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왕 나왔으니, 이왕 가는 방향이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이런 생각이 문제다 에잉. 아무튼 그런 이유로 부여로 빠져서 정림사지와 국립부여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정림사지는 이름 그대로 오층석탑과 건물 터만 남아서 을씨년스러웠다. 석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요하고 아름다웠지만.

 

 

서산 마애삼존불상 (복제품)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준비하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그 불상. 박물관에 전시된 건 복제품이고 진짜는 서산 가야산에 있다. 별 생각 없이 들어간 박물관인데 복제품을 보고 나니 진품이 보고 싶어졌다. 고아한 미소가 묘하게 눈길을 잡아둔다.

 

 

 

하지만 진짜 하이라이트는 이거지.

 

 

백제 금동대향로

 

'금동대향로는 실물을 보지 않은 자 논하지 말라'는 말이 법으로 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아하고 신비롭고 아름답다. 문화재와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단번에 명품 중의 명품임을 알아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실제 용도대로 모형품에 향을 피운 걸 봤는지 영상을 봤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걸 보고 와서는 한동안 금동대향로는 살면서 한 번은 꼭 봐야 된다고 주위에 영업하고 다녔다.

 

 

 

금동대향로가 빠뜨린 생각지도 못한 여운에 젖은 사이에 군산에 도착했다. 주차하고 보니 어느덧 점심 시간. 일행이 TV에서 맛집이라고 했다며, 자기도 여기 쫄면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간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 일행은 우리에게 이걸 먹자고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맛집이라고 소개하는 곳들을 믿으면 안 되는 건데, 알면서도 맨날 속는다. 동네 분식집에서 먹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음식을 대충 먹고 이성당에서 빵과 밀크쉐이크로 미처 채우지 못한 배를 채웠다.

 

 

 

군산 관광지라고 해 봐야 거기서 거기라 대충 돌아보고 선유도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일단 동국사부터 간다.

 

 

 

그냥 봐도 일본 양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국내에 얼마 없는 일본식 건축 양식의 절이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라는 걸 제외하면 별 감흥 없이 지나갈 것 같다.

 

 

 

 

 

 

 

 

 

 

절 경내에 소녀상이 있다는 게 의외이면서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소녀상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으로 간다.

 

 

...위치 때문에 일제의 조선 수탈의 거점이 되었던 도시가

그 흔적을 관광 자원으로 남겨 활용한다는 게

이해 불가한 일은 아니지만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고 보니 웹툰 '고래별'에서도 첫 배경지는 군산이었던 것 같은데.

 

 

 

 

그 웹툰, 드라마화된다는 말이 있던데. 초반부는 이런 데서 찍으려나.

 

거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바깥 정원 쪽을 내다본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가늘고 길게 뻗은 기둥들 사이로 정원 풍경이 네모나게 정리된(무슨 강박증도 아니고)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손질한 풍경을 감상하는 그 방식이 전형적인 일본식이다. 사는 것도, 조경도 일본식을 고집했던 집주인이구만. 이곳에 일본식 가옥을 세우는 것이 집주인의 애국적-애향적 취향이 아니라 상식이었을 시대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선유도로 가 볼까.

 

 

 

새만금 방조제는 이때 처음 가 봤는데 무슨 도로가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어.

인천공항 갈 때 생각난다.

 

 

 

선유도 해변 한 번 걸어보고

 

 

 

다시 군산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폐공장과 수산 시장을 둘러보았다.

 

살면서 한 번도 충청도 이남으로 내려올 일이 없었던 내 눈에는 이토록 아무 것도 없이 황량한 빈 공간이 낯설었고, 한때 손꼽히는 대도시였던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쇠락해 어떤 의미에서는 이국적일 정도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 나름의 매력이야 있겠지만 어쩐지 국토 균형 발전의 필요성을 눈으로 보고 온 느낌 밖에는 남지 않는 나들이. 군산 시내로 돌아와 먹은 저녁식사도 열받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함께 나들이 떠난 일행과 금동대향로를 제외하면 일생 가장 김 빠지는 여행이었다. 그냥 이러이러했다라고 사진만 남겨놓을 생각으로 적어보는 뒤늦은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