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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록/영화: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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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뉴스 데이] 비극을 이겨내는 힘 1. 여자로서의 수치심과 믿음의 붕괴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수녀들과, 그들에게 신이 보낸 응답과 같은 의사의 이야기. 2. 시종일관 차갑고 어두운 화면 끝에 꽃잎이 날리는 마지막 장면이 나왔을 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드디어 먹구름이 걷히고 이곳엔 햇살이 가득합니다. 영화 [아뉴스 데이] 중 3. 동정이나 이해는 커녕 사실이 알려지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이지만, 품에 안은 순수한 생명과 부모 잃은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으며 새 삶을 시작한 모습-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도왔던 의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결국 인간을 고통에서 구해내는 것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4.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비인간적 상황을 돌파하고 마무리하는 힘이 인류애와 극단의 인간성이라고 생각하니 그 끔찍함이 ..
[거울나라의 앨리스] 넌 날 실망시켰어 2010년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았을 때 생각했다, 이건 명작은 아니지만 꽤 매력적인 영화라고. 명작인지 수작인지 범작인지 졸작인지, 그것까지는 모른다. 나 같은 일반 관객에게는 예술성보다는 얼마나 매력적인 영화인지가 중요할 뿐. 그렇다고 일반 관객들이 영화 보는 안목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를 나노 단위로 분석할 식견이 없을수록 스토리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 우리는 예민해진다. 개연성이 떨어진다면 "별로인 건 아니었는데... 그냥 그랬어"처럼 비교적 부드러운 혹평부터 관객 수 폭망이라는 과격한 응징(?)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는 영화의 완성도에 반응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뭐랄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 마디로 쉽게 얘기하자면, 꽤 괜찮은 전작으로..
[사울의 아들] 소리로 상기하는 비극 유대인도 아니고, 전쟁 세대도 아닌데 꼭 내가 아우슈비츠에 갇힌 홀로코스트 피해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이 영화로 알게 된 홀로코스트는 폭력이나 공포, 두려움, 비극이라는 상투적인 표현 그 이상의 그 무언가 같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홀로코스트 영화는 망상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지옥이라는 말도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아. '지옥'은 [사울의 아들] 속 아우슈비츠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크나큰 감정의 진동 폭을 암시하는 단어 같아서. 그곳에서의 진짜 삶은, 슬픔이나 울분과는 다른, 건조하고 비인간적이며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함 그 자체이자 깊게 패인 상처 같기도. 영화 속 아우슈비츠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걸 티끌만큼도 찾을 수 없는 사막이었다. 모든 인간적인 ..
[위플래쉬] 열정의 희생으로 피어난 독선. 이런 삶을 원해요? 극장에서 나와서 조금 시간을 갖고, 다시 영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객관적으로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간단히 얘기하자면, 몇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영화를 보면서 했던 내 생각 그대로가 나에게는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재능있는 삶은 그 자체로 축복이기도 하지만 저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삶의 전부를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있는 열정적인 삶-플레처와 앤드류는 "I'm here for a reason"이라고 말한다-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왜? 그렇게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찰테니까. 한창 삶의 의욕으로 가득한 젊은이라면, 아니, 고만고만한 삶을 사느라 언젠가 가슴 속의 열정을 잃은 우리 중 대다수는 그런 불꽃 같은 ..
[내일을 위한 시간] 존재하기 위한 노력 On s'est bien battu? Je suis heureuse.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어느 영화든지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고, 위기를 무사히 넘기기를 바라면서 주인공을 절대선으로 착각하기도 한다-악역이 주인공인 영화 자체가 많지 않기도 하지만. 하지만 이 영화는 우울증에 걸린 동료를 희생시켜야 하는 갈림길에 선 모든 인물들의 선택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주인공인 산드라에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영화 속 세계가 마냥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게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분법적인 판단을 보류하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옳은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게 옳은 선택이지? 산드라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자신의 복직을 반..
[마이크롭 앤 가솔린] Deux Heures avec des Petits Garçons 네 줏대는 머리 스타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네 선택으로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네 행동으로 조금 지친다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별 일 없었지만, 이상하게 5분도 아깝다 할 정도로 사람들과의 교류에 매달렸던 게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다. 이상한 게, 꼭 이럴 때는 프랑스어를 듣고 싶단 말이지. 그것도 행복한 영화를. 그래서 이 영화가 나와 친구를 잠재웠던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 작품임을 알면서도, 나름대로 기대를 안고 보았다. 길게 말할 영화는 아닌 듯 하다. 감독 본인의 자전적 영화에 내가 더 이야기할 게 뭐가 있겠어. 그리고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다만 뭐 하나 말할 것이 있다면... 다니엘이랑 테오가 만든 저 집차(?) 타 보고 싶다ㅋㅋㅋ 어디서 이렇게 엉뚱한 애들이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원칙, 그 허약함에 대해서 You're asking me how a watch works. For now, just keep an eye on the time. 시계 작동 원리는 묻지 말고 그냥 시계 바늘이나 잘 보고 있어요. * 개인적으로 정말 번역 잘했다고 느낀 부분이다. 역시 영화 번역은 황석희! 이 영화는, 너무나 구조적으로 짜여지고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범죄는 공포 그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이 되었고, 촘촘하고 깊숙이 사회에 파고든 그 범죄를 소탕하는 사람 역시 얼마나 혼란스럽고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정의가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이 오히려 끝없는 딜레마에 빠져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까놓고 말해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의 또다른 버..
[바닷마을 다이어리] 언제까지 머물러도 좋을, 네 자매의 오래된 집 언제까지 머물러도 좋을, 네 자매의 오래 된 집.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았다.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2015년 칸느 프리미어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일단 이 영화의 캐스트가, 도저히 주목하지 않고서는 배기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기 때문이지만 또 하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드디어 부담 없이 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서였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열두 살 소년 가장([아무도 모른다])이나,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 사실은 병원에서 뒤바뀐 남의 자식이라는 걸 알게 되는 아버지([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보다는, 가출한 아버지가 낳은 이복 동생을 감싸 안는 세 자매 쪽이 감정적으로 (비교적)덜 힘들지 않겠냐는 거지. 하지만 스토리는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15년 전에 바람 나서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