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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Voyage/외출 #excursion

['17 서울야행] #Ep2 걸어서 서울






둘째날



아침에 눈을 뜨고도 한동안 이불 속에서 뒹굴거렸다.

자주 와서 별로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한 서울, 종로인데도

집에서 왔다갔다 하며 보는 서울과

하룻밤 집을 떠나가면서 보는 서울은 느낌이 조금 다르네.



난 후자가 더 좋다, 진짜 여행하는 기분이라.










전날 체크인을 도와준 스태프가

다음날 아침에도 숙소 마당을 빗질하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한 마디로 체크아웃 끝.


하룻밤 잘 묵고 갑니다.


문을 나서고 보니

어째 하늘 색깔이 아슬아슬하다.

이 불길한 회색빛은... 비가 오겠는데.




워낙 늑장을 부린 탓에 체크아웃을 하고 보니 오전 10시를 훌쩍 넘겼다. 난 맨날 체크아웃을 늦게 해...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탓도 있지만 짐 하나라도 빠졌을까봐 침대고 이불이고 다 뒤집어가면서 배낭 챙기느라... 아침부터 지친다, 배고프고. 우산 사고 밥부터 먹자


서촌에는 좋아하는 식당이 하나 있어서 그곳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경복궁역 근처에서 접이식 우산을 하나 사서 배낭에 꽂고 아점 먹으러 출발.




서촌, 북촌, 인사동 등 경복궁 주변 동네에서는 그 어떤 프랜차이즈도 한글 사용을 어기지 않는닷.

이렇게 보니 '할리스커피'라는 이름도 알파벳보다 한글로 쓴 간판이 훨씬 예쁘다.




주말 오전 이 동네는 벌써 조금씩 시끌시끌했다. 뭐, 관광 명소니까. 근데 오전 시간대부터 한복을 빌려입고 다니는 관광객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경복궁을 향해 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서촌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이 집 팥죽 맛있다고 본 것 같은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맛을 못 봤다. 너무 궁금하네, 그 소문난 팥죽 맛.




경복궁 부근은 소음이 슬슬 피어오르고 있지만 역시 골목 안쪽으로는 아직 조용했다.


내가 가려는 곳은 경복궁역에서도 걸어서 10~15분 거리.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여러 가게들이 슬슬 문을 열어두고 있어서 걸어가는 길에 곁눈질로 구경했다. 가재미식 윈도우 쇼핑. 주로 식당 안을 들여다 보고 메뉴를 훔쳐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집 저 메뉴 맛있나? 다음에 오면 먹어봐야지 등등. 서촌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식당이나 카페가 알차게 들어서 있다.


  

 


사진은 그렇게 예쁘게 찍히지 않았다는 게 함정. 날이 워낙 구렸다 흠흠.




내가 간 곳은 '누하의 숲'. 좋아해서 서촌 쪽에 가게 되면 웬만해서는 이곳에서 밥을 먹지만, 영업 시간 같은 걸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찾아가다 보니 브레이크에 걸려서 발길을 돌려야 할 때도 더러 있었다. 이날도 은근 걱정하며 찾아갔는데(스마트폰 검색이고 뭐고 일단 발로 뛰어서 직접 가 봐야 직성이 풀리는 상당히 피곤한 성격) 다행히 이날 이 시각에는 영업 중이었다. 심지어 사람도 없어. 2층은 텅 비어있었다. 내가 들어오자마자 손님들이 한 무리씩 들어왔지만. 슬슬 점심 영업 시간이기는 했으니까.




누하의 숲에 오면 항상 주문하는 고정 메뉴, 치킨남방정식.

절대 실패하지 않는 메뉴, 언제 먹어도 좋은 메뉴다.


누하의 숲은 '생활의 달인'에서 처음 봤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한일 부부가 운영하는 일본 가정식당이라며 나오길래 호기심에 쭉 앉아서 지켜봤다. 이렇게 TV에 맛집이라고 소개해서 나온 곳 치고는 정말 맛있는 곳이 없어서 약간은 시니컬하게 보고 있었는데, 이 치킨남방정식을 비롯한 메뉴 실물이 화면에 잡히자마자 자세를 고쳐 앉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머 저 집은 꼭 가 봐야 해, 이 모드가 되고. TV를 보고 몇 달이 지나 친구와 함께 방문했는데, 친구가 이런 곳은 어떻게 찾냐며 칭찬했다ㅋㅋ 그 이후로 또 가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마침 서촌에 왔기에, 혼자여도 다소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용감하게 밥 먹으러 왔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 또 성공. 다음에 또 와야지.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는데 새 위치로 옮긴 이후에는 가 본 적이 없다. 다음에 서촌 가면 또 들러야지.

생각난 김에 가게가 이전한 곳을 찾아보니 이렇다.




배를 채우고 가게를 나섰다. 근처에 더 가 볼 곳 없을까 궁금해서 주위를 좀 돌아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니 배짱도 참 좋다. 골목 포비아인 내가 그 복잡한 누상동 골목을 누비겠다고 들어섰으니... 그렇지만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누하의 숲에서 통인시장 쪽으로 가는 큰길로 빠져나와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누상동 9번지, 윤동주 시인의 옛 하숙집 터가 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이곳이 연희전문학교 학생이던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곳이라는 걸 알리는 동판 뿐이다. 동판 말고는 별다른 표식이 없고 바로 좌우로 빌라들이 들어서 있어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는 걸 쉽게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나는 알아봤다! 그렇지만 알아보기 힘든 만큼 눈치챘을 때의 놀라움은 배로 다가온다. 와, 여기가 이런 데였어? 별다른 유적지가 아닐 수 있겠지만 골목에 스며들어 있는 애국지사의 흔적, 옛 서울의 흔적을 느끼는 순간 이 동네가 좀 더 특별해 보였다. 이 동네에는 골목마다 사람의 이야기가 정말 켜켜이 쌓여있다.


동시에 이날 점심을 일본 가정식으로 먹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내가 일본 음식 먹는 건 일본인이길 원해서 그런 게 아니고, 프랑스 음식을 먹는다고 프랑스인인 것도 아니고, 윤동주 시인이 왜 그런 음식 먹고 왔냐며 뺨을 올려붙인 것도 아닌데 혼자 기분이 묘했다. 요 몇 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단순한 생활 속 선호와 애국심을 동일시하는 태도는 광기 어린 무지한 배타심만 부추길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때는 이런 촌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어렸구나 나...


더 올라가 볼까 하다가, 더 걸어봐야 인왕산 등반 밖에 남을 것 같지 않았다. 본디 태어나기를 무릎 관절이 허약한 나로서는 등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도로 내려가기로 했다. 터덜터덜 큰길로 내려가며 통인시장에서 닭꼬치 먹을 생각을 하던 내 눈앞에 한 미술관이 나타났다.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parkns01


여행 다니며 미술관도 꼭 가 보고 이래저래 교양있는 척 했지만 정작 우리나라 화가는 잘 모른다. 그러니 박노수라는 이름도 생소했다. 그 사실에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리고 미술관이라는 말에 호기심을 느끼며 들어가서 관람해 보기로 했다.




미술관은 왠지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부잣집으로 나올 것처럼 생긴 2층 주택이었다. 사실 요즘 인테리어 감각으로 보면 딱히 세련되어 보이진 않지만, 부티는 여전했다. 묘한 분위기의 건물이었다. 한옥은 당연히 아니고, 양옥이지만 북미의 주택과도 좀 달라 보였다. 또 딱히 유럽 어느 곳의 집을 쏙 빼닮은 것 같지도 않고... 건물 외관을 살펴보다가 처마 끝과 창틀에서 그 이질감을 느꼈다. 처마 밑으로 드러난 서까래는 한옥에서도 많이 보아왔지만, 직선으로 쭉 뻗은 처마 끝과 검붉은 창틀은 이질적이다. 이것저것 섞은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중국 기술자들이 프랑스풍으로 지은 한옥이라고 한다. ...어디서 (더 많은)한옥과 프랑스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옥과 중국식 건축법이 혼합된 곳이라고도 하는데 이런저런 말을 하기는 했어도 정확히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짚어내려면 역시 내가 공부를 더 해야 할 듯 하다.




이 비싼 땅에 앞마당과 야트막한 뒷산까지 갖춘 2층 주택까지 지었을 정도면 대체 이 건물을 처음 지은 사람은 얼마나 돈이 많았던 걸까. 이런 세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다...) 안으로 들어섰다. 매표 데스크에서 책을 읽던 스태프가 입장권을 끊어주었다. 종로문화재단 인턴 명찰을 달고 있던 것 같은데, 잘해봐야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스태프가 이런 호젓한 미술관에서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 대학 생활이 떠올랐다. 대체 난 뭐 했담. 그 찰나에 이 많은 생각을 하며 신발을 벗고 나무 바닥을 밟았다. 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두운 색깔의 나무바닥은 왁스칠을 얼마나 했는지 번쩍번쩍거렸다. 보이는 걸로만 그런 게 아니고 정말 미끄러워서 실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몇 번이고 혼자 트위스트를 춰야 했다. 방문객이 거의 없는 게 다행이었다. 누구도 원치 않을 요란한 춤사위를 보여줄 뻔 했다.


실내는 철저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종로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내부 사진이 있으니 참고해도 좋겠지만, 웬만하면 직접 눈으로 보라고 하고 싶다. 사실 박노수 화백의 작품보다는 집 구경(?)에 더 마음이 갔다. 조금 가파르다 싶을 정도로 폭이 좁은 계단, 외관을 보고 상상한 것보다 좀 더 넓은 실내, 벽돌로 만든 벽난로 등등. 일제강점기에는 이 모든 것이 지금 느끼는 것보다 훨씬 이국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건축주도 그런 이국적인 양식에 일가견이 있을 정도로 해외를 돌아봤다거나 국제 교류가 잦은 상류층 인물이었을테고...


대체 어떤 사람일까, 원 집 주인이 궁금해져서 입장하며 챙긴 팸플릿을 열었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구한말~일제강점기 친일파 썅놈의새끼 윤덕영이었다. 딸에게 주려고 지은 집이 이 건물이라고 한다. 내 추측이 맞았다는 쾌감을 느끼면서도 기분이 나빠졌다. 윤덕영이면 친일파, 그것도 한일합방 때 조카인 황후의 치마 폭에 숨겨진 옥새를 빼앗아 한일합병 조서에 찍은 경술국적이다. 매국노도 보통 매국노가 아닌데... 그럼 그렇지. 옛날에도 노른자위 땅이었을 이곳에 이 정도 집을 지었을 정도면 그만한 권력과 부를 가졌을텐데 그 시기에 친일파 아니고서야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었을 리가. 지금은 터만 남은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과, 온갖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고 서울시 문화재자료 1호로 등재된 이 집을 대조해 보니 기분이 한층 이상해졌다.


아, 물론 이 집을 남긴 박노수 화백은 잘못 없다. 오히려 그동안 한국 화단에 무지했던 시간이 아쉬웠다. 컬러풀한 수묵화는 미술책에서 보던 옛 수묵화보다 훨씬 현대적이면서도 그림 하나하나가 한 편의 동화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림을 찬찬히 돌아본 후 밖으로 나와 집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집 뒤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지붕과 눈높이를 맞췄더니 아래쪽에서는 면면만 볼 수 있던 굴뚝이 보였다.




저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들


예전에 '파리의 지붕들'이라는 주제를 가진 사진 모음을 본 적이 있다. 가파르거나 완곡하거나 둘 중 하나면서, 왠지 얇아보이는 푸른 잿빛 지붕 위로 촘촘히 올라와 있는 붉은 벽돌 굴뚝들. 파리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파리의 지붕들이 만드는 파리만의 풍경이다. 여기에 올라오니 왠지 그 사진들이 떠올랐다. 자학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서울의 지붕은 확실히 파리만큼 감수성을 자극하지는 못하는 듯 하다. 그보다 더 건조하고 단조롭기도 하고. 다만 고층 건물들과 주택이 어지럽게 어울린 스카이라인은 그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환기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파리의 지붕이 그 자체로 그림이라면 서울은 이야기다. 새삼 이 오래된 서울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