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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Voyage/외출 #excursion

['17 서울야행] #Ep3 주말 낮, 서촌에서는...


다음 목적지는 통인시장. 박노수 미술관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곧바로 시장 입구가 나온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길을 잃어버린 후 내게 골목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서촌에서 통인시장 찾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행동 치료 역할을 했다. 그만큼 쉽다.





통인시장 가는 길에 지나친 맛집과 카페

자주 지나다녔는데 아직까지 못 가 봤네.




밥도 먹은 마당에 시장은 왜 왔나 하겠지만, 첫 번째 이유는 경복궁에 가기 전에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고 두 번째로는 후식으로 먹을 간식 없나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서촌에 있는 서울 시내 유명 시장으로 매스컴도 여러 번 탔던 곳이라 호기심이 일었다. 막상 와 보니 통인시장은 건물 사이에 아케이드를 만들고 지붕을 덮은 모양새다. 오일장 같은 게 아니라 상설이구나. 내가 자란 곳에서는 지금도 오일장이 서기 때문에 나에게는 노천에 좌판을 연 상인들의 모습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그냥 써 봤다.



입구에서는 한적해 보였지만 아케이드 아래 좁은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찼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인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엽전 도시락'에 담을 먹거리를 사고 있었다. 어린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상인들도 정신이 없었다. 나처럼 카메라만 달랑 들고 있는 사람은 진작에 안중에 없다.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를 맡으니 꼭 명절 직전 시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게다가 점심 반찬을 고르는 어린 친구들의 열정적인 상의와 주문이란... 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대화 한 토막. 한 여자아이가 마지막으로 고를 반찬으로 '전이냐 꼬치냐'를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묻는 대화였다. 음... 나는 쌀밥에 먹을 반찬으로는 전이 좋다고 생각해.


그나저나 엽전 도시락은 누구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참 기발하다. 통인시장은 전통 시장으로서의 특색을 살린 자체 관광상품 개발로 스스로 경쟁력을 갖춘 모범적인 사례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나 몇몇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타고난 정체성을 강조하고 즐길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한 것만으로도 시장은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다. 대형 마트에 밀리다 못해 정부 지원금과 대형마트 의무 휴무일에 의지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재래 시장의 현실이 떠오른다. 전국 곳곳의 시장들에도 즐거운 스토리텔링이 가미되기를 기원한다.





입구 맞은편, 골목 끝까지 갔다가 돌아서 나오면서 이 시장에 온 진짜 목적을 달성했다.





맛있어...♡ 생각보다 양이 좀 적긴 했지만.





순간 먹을까 말까 흔들렸다. 밥 먹고 닭꼬치 먹고 군밤까지 사 먹을 뻔 하다니...

이제 생각해 보니 이때 살이 부쩍 쪘던 이유가 이거였구만?!




통인시장 옆구리(?)에 난 출입구로 쏙 빠져나왔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하다니...

별 거 없는 이 동네가 왜 이리 좋다냐.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 전날 밤에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 인사동까지 걸어갔다 왔으니 이날은 경복궁 뒤로 난 길을 따라 경복궁 동쪽으로 건너가 보기로 했다. 아, 물론, 그 목적을 깔끔하게 이루지는 못했다. 가다가 청와대를 만났거든. 종로구민이 아니라 청와대가 경복궁에 그렇게 바짝 붙어있을지 몰랐다. 아니, 있는 건 알아도 입구 앞을 지나서 걸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때만 해도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지 않아서 아무리 봐도 돌아서 가야 할 것 같았다. 실제로 그 앞을 지나서 갈 수 있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때는 조금 쫄아서(?) 알아서 피해갔다. 결국 경복궁 서쪽 담을 쭉 따라 영추문 앞을 지나 사직로로 내려왔다.





실제로 청와대로 가는 큰 길과 효자동 골목 곳곳에는 경찰 검문소가 있어서 괜히 얼쩡거리는 것만으로도 잡혀갈 것 같았다. CCTV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저 큰 건물의 높으신 분이 "엄청 수상한데 당장 쫓아가서 민증 까라고 해"라고 무전 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 알지? 난 진짜 쫄았다고.


그래도 그 길에 마냥 무서운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어느 집 마당에 있던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가지런히 앞발 모으고 앉아있는 폼이 귀여워서 한참 쳐다봤더니 금방 시선이 마주쳤다. 멀찌감치 서서 보다가 슬금슬금 다가가서 손을 흔드니 기지개 한 번 켜고 꼬리를 흔들면서 반겨주었다. 너무 귀여워... 심각하게 귀여워. 남의 집 마당이라 선뜻 다가서지는 못하고 멀찍이 서서 손만 흔들고 표정으로만 우쭈쭈 얼러주었는데도 강아지 꼬리가 붕붕, 프로펠러를 돌리느라 바빴다. 개들은 어쩌면 이렇게 착할까. 오래 있지 못해서 이제 안녕 하고 자리를 뜨는 나 자신이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순진무구하다. 결국 발을 떼지 못하고 남의 집 강아지와 눈을 맞추며 노느라 2,3분여를 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효자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니 이런 풍경도 봤네.


참고로 이건 낮술 좌판이 아니다. 잔치국수와 칼국수를 파는 노점이었다. 길거리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먹기로는 술안주만 한 게 없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낮에 한적한 골목 좌판에서 잔치국수를 먹는 것도 꽤... 괜찮은데?! 한편으로는 근엄하기 그지 없는 청와대 근처에 이런 좌판이 열려있다는 게 재미있어서 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아, 나도 먹어보고 싶다. 여기쯤 오니 누하의 숲에 다녀온 게 살짝 후회되기도 하네...





돌담을 따라 뚜벅뚜벅




삼청동 방향에서 보이는 국립민속박물관


광화문 앞을 지날까, 어제 다녀간 길인데 다른 길 없을까? 발은 부지런히 놀리면서도 머리로는 딴 길로 샐 생각을 하며 영추문을 따라 걸었다. 그 와중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트인 입구를 발견해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 광화문 안쪽으로도 경복궁을 가로지를 수 있네? 그대로 직진해 바로 삼청동으로 넘어왔다. 중간에 들른 고궁박물관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조금 궂은 날씨이긴 하지만 주말 삼청동 거리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 덕에 심심하지는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생각보다 많았던 건 조금 의외였다. 근처에 경복궁도 있고 국립민속박물관도 있어서인가?(민속박물관 주차장은 투어 버스로 가득찼다. 그리고 버스로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은 빨간 깃발 아래 모인 중국인들... 이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 많이 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어쨌든 손에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 겨울보다 한층 가벼워진 옷차림 등을 보니 역시 4월 어느 주말이네라는 생각이 든다. 청명한 하늘이나 초록빛 가로수, 여러 가지 밝은 색깔의 꽃, 이런 것들도 봄의 아이콘이지만 난 역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데서 덩달아 봄을 느낀다.




프린트 베이커리


빵집인 줄 알았는데 갤러리라고 한다. 어쩐지 빵 냄새가 안 나더라고... 맛있는 냄새가 안 나서 샤랄라한 외관의 사진만 찍고 지나쳤는데 들어가 볼 걸 그랬다. 블로그로 다른 사람들이 다녀온 프린트 베이커리 사진을 보는데 여기 갔으면... 사지도 못할 그림에 정신 팔려서 서너 시간은 족히 보냈을 것 같다.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에 있는 북카페. 이전에 이 근처 카페가 마음에 들었던 터라 다시 찾아가 볼까 했는데, 이 북카페에 더 눈길이 갔다.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 앞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또 마주친 댕댕이. 골든 리트리버 실물을 보는 게 처음이라 믿거나 말거나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쓰다듬어 보고 싶었는데 이 댕댕쓰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으으... 한 번 껴안아 보고 싶었는데. 털에 윤기가 잘잘 흘러서 꼭 엘라스틴으로 감긴 것 같다.




삼청동 코리아 목욕탕


무한도전 '마이너리티 리포트' 특집이 떠오른다. 멤버들이 찾으러 올 때까지 욕탕 안에서 퉁퉁 불어있던 명수옹... 그때 그 삼청동 코리아 목욕탕은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뉴얼되어 운영 중이다. 삼청동 주민들의 동네 목욕탕이자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숙소에서 지금의 용도로 바뀌었다니, 십수년 전부터 이미 관광 명소화되어 온 삼청동을 반영한 변화처럼 느껴졌다.




삼청동 안쪽까지 걸어들어 갔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늦은 오후.


미친 척 하고 삼청동 바깥쪽 길로 삼청동을 돌아볼까 했지만 슬슬 경복궁으로 돌아가야 했다. 애매한 대기 시간(?) 동안 체력도 아낄 겸 삼청동 문화거리 초입으로 돌아가 근처 아무 카페에 들어갔다.





별 거 없이 한적한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만 지켜봐도 재미있다. 오랜만에 몇 년 전 사진을 들춰보며 사람들이 맨얼굴로 다니는 거리를 회상하는 것도 즐겁다. 그 즐거움이 어설픈 사진 몇 장으로 박제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불과 1년여 만에 어색해진 그 모습이 하루라도 빨리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