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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About Me/내킬 때 쓰는 일상

210915_말하기 어려운 시대 (ft. 의식의 흐름)

 

오랜만에 쓰네, 하루에 한 줄. 일년에 한 줄로 고쳐야 하나?

 

나 요즘 '금쪽 같은 내 새끼' 열심히 봐. 미래를 걱정해 줘야 할 애는 없지만, 오은영 박사님이 부모들에게 해 주는 말을 덩달아 듣고 있다 보면 나도 새겨 들을 만한 말이 많더라고.

내 어린 시절에 대입하게 되는 말도 더러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공감한 건 '말'에 관한 거였어.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부모들의 가장 흔한 고민은 아이의 '떼'야.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얻을 때까지 악을 쓰며 조른다고 하소연해.

 

아이의 떼쓰기를 유발한 원인과 맥락은 케이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아이들이 자기 감정을 좋은 말로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는 거야. 아이들은 배우지 않았으니까 모를 수 밖에 없고.

 

그러니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은 아이에게 자기 감정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하도록 짚어주고, 그걸 '말'로 충분히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거라더라. 아이도 사람인지라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 불편함의 원인을 부모에게 말로 이해시키지 못하는 아이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부모에게 발길질을 하며 비명을 지르는 거지. 그러니까 부모가 '말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해. 그것도 제대로 말하는 법을. 그래야 아이의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 즉 부모와의 관계부터 오해없이 사랑으로 채워갈 수 있을테니까.

 

아이 양육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모든 유형의 인간 관계에 적용된다는 생각에 무릎을 탁 쳤어.

성인도 마찬가지잖아. 화나거나 두렵거나 짜증나는 마음을 험악한 말로 내뱉는 사람, 많잖아. 심하면 아이처럼 악쓰고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도 더러 있고. 솔직히 이런 사람, 다들 살면서 한두 명쯤은 봤잖아.

근데 난 그런 사람이 요즘은 한둘이 아니라 대여섯 정도로 많아지는 세상 같아. 그 정도로 다들 자기가 뭘 말하는지, 사실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그저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기만 해. 그러다가 싸움이 나고. 인터넷에 글 올려서 여론 싸움 붙이는 건 이젠 뭐, 늘 있는 일이고. 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내가 정의고 내가 이겼다, 이렇게 생각하는 시대인 것 같아.

 

이게 다 우리가 제대로 말하는 법을 못 배워서 그런가봐... 싶은데 오늘 서점 갔다가 좀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어.

 

서점에서는 신간이랑 베스트셀러를 분야별로 쫙 진열하잖아. 그 책들을 찬찬히 훑어보면 요즘 사람들이 뭘 궁금해 하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강 알 수 있는데, 오늘 간만에 서점 가서 본 세간의 관심사는 단연 '말하기'였어(아 물론 주식도... 투자도... 부동산이랑...). 어른답게 말하기, 일 잘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부모와 아이의 대화법 같은 제목을 단 책들이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올라 있었어. 그래도 사람들이 소통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 말 잘하는 법을 궁금해 하는구나, 생각했지. 3,4년 전부터 나도 '말'에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던 터라 호기심에 책 몇 권을 들춰봤어.

 

웃긴 게 뭔지 알아? 그 책들 전부 비슷한 이야기를 해. 진정성을 담아라, 배려해라, 간결하게 말해라, 어휘력을 늘려라 등등. 너무나도 기본적이고, 알면서도 못하는 것들이라 피식 웃었어.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 비슷한 말만 늘어놨더라고. 한편으로는 허탈했지. 이제는 이런 기본적인 것도 누군가 알려줘야 알게 되는 걸까? 아이는 아이니까 모른다고 해도, 솔직히 우린 이제 성인이잖아.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시대를 '이 기본적인 것도 모르니 방법론을 알려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여기는 걸까, 스스로 부끄러우면서도 좀 괘씸한 생각마저 들었어.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기본을 망각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어.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는 걸 보면 '말'이 비단 이 시대만의 과제는 아닌 듯 한데 그 기본을 제대로 지키는 게 대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와서 내 귀로 흘러드는 말 하나하나를 해체되다시피 잘게 찢어서 분석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이라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틀려'서는 안 되는 세상이라서 그런 걸까 싶어. 예민한 세상이라서 다들 그렇게 말 잘하는 법을 알고 싶어하나? 잘할 생각만 하다가 기본을 잊은 걸까 싶다가 '그럼 사람들은 다들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 물듯 떠올랐는데 이건 약간 옆길로 새는 말 같으니 일단 스킵.

 

다시 금쪽이로 돌아가 보자. 말을 왜 잘해야 하는지는 결국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잖아.

사람들이 좋은 말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야. 원만하고 인정 넘치는 사회 생활, 뭐 그런 거.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소통해야 하고, 제대로 소통하려면 예쁘면서도 정확한 말을 해야 하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말을 잘 못 해서 말 잘하는 법을 알고 싶어하는 요즘 사람들은 이전 세대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어. 다같이 사회성 떨어지는 세상이다 보니 이제는 별 생각 없이 한 마디 툭 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어려운 거야.

 

제대로 말하는 법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왜 중요한지 모르는 세상이라고 할까.

 

그러니 우리는 말하는 법도 알아야 하지만 왜 좋게 말해야 하는지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해. 머리는 다 컸어도 배워야 한다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어차피 살아야 할 세상이면 나만 옳다는 생각은 버리고 상대의 마음도 헤아리는 예쁜 말을 하면서 살면 더 좋지 않을까?

정말...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