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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About Me/내킬 때 쓰는 일상

220109_일단 써야 고칠 수 있다

 

 

"일단 써라. 뭐든지 써야 고칠 거 아냐."

 

학위 논문을 쓰던 때 지도교수님이 내게 한 말이다. 글줄을 붙잡고 며칠을 낑낑대다가 약속한 면담일이 되어 교수님께 쭈뼛쭈뼛 보여드리면, 교수님은 뭐라도 써서 초고를 완성해야 고쳐 쓰고, 고쳐 써서 논문을 완성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남보다 멋진 문장과 완벽한 논리 구조를 가진 글을 동경했던 나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깨달음을 주었던 말이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건 건강한 야심이 아니라 허영심이 아닐까?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알게 되어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몇 년이나 지나버린 제주 여행기를 뒤늦게 쓰면서 교수님과 헤밍웨이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일단 써 봐야 고치고, 고쳐야 남에게 보여줄 글이 나오는 것 아닌가. 기억을 더듬고 겨우겨우 몇 줄 써 내려가면서 지난 몇 년동안 바쁘다고 기록을 미루어 두었던 걸 후회하고 있다. '잘 썼다'며 감탄하는 사람이 없어도, 설사 기록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감명깊은 순간을 때때로 느끼곤 했던 여행인데, 일단 써 봐야 판단하지 않겠는가. 일단 써야 어떻게 고칠지가 보이고 어떤 문단이 필요없는지도 보인다. 글도, 인생의 모든 선택도 일단 저질러 봐야 완결을 볼 수 있다는 당연한 말을 일부러 상기해야만 행동으로 따르는 나 자신의 금붕어 같은 기억력이 싫지만, 그래도 적어본다. 올해는 꼭 쓴다, 제주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