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기록: About Me/내킬 때 쓰는 일상

201121_책 또 버리기: 책장은 미니멀, 지식은 맥시멀

책을 또 버렸다.


미니멀 라이프는 중독인 걸까. 지난 7월, 작정하고 책을 중고로 팔거나 버린 이후로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또 처분할 것이 없나, 깜박 하고 버리지 않은 건 없나, 하고 책장을 훑어보는 습관.


인터넷 중고서점에서는 매입가를 높게 쳐주지 않기 때문에 중고책 팔기가 쏠쏠하긴 해도 큰돈을 만지는 일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돈보다는 책장에 빈 공간을 만들어가는 게 훨씬 즐거웠다.

빈 공간이 늘어갈수록 책장에 가득 꽂힌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책장에 꽂힌 책은 분명 취향이 반영된 결과이지만, 현재의 나도 과연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사람의 자아는 그 어느 순간에도 완성되 않고, 그 자아를 형성하는 인간 내외의 모든 자극과 아웃풋도 어느 시점에 고정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내가 미처 머리에 담지 못한 책을 읽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끌어안는 게 나와 책 모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과거/지금의 내가 고른 책은 반드시 바로바로 머리에 집어넣도록 하자. 그게 아니라면 과거보다는 현재 나의 관심사에 집중하자. 과거에 내가 궁금해 했지만 해답을 찾지 못했던 일은 언제든 다시 궁금해 하게 될테니까, 그 호기심이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인 공간은 현재의 나에게 주자. 그 해방감과 상쾌함이 매력적이다.


그런 생각으로 두세 달 동안 집 안 여기저기에 흩어진 책을 둘러보며 계속 가지고 있을 것과 팔 것, 버릴 것을 추린 결과.



 


ㅁ 필요한 토익스피킹 성적은 취득했으니 이제 나에게는 필요없다.


ㅁ 7월 정리 후 집에 남은 책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더 이상 감흥을 주지 못하는 책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 책을 읽은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이모저모 생각할 것들을 던졌고 아직 어렸던 당시의 내 일상을 돌아보게 했지만, 이제는 책 없이도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처분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 여행 이후 유시민 작가가 책에 쓴 생각들을 직접 몸으로 부딪쳐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글이 기억나지 않으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ㅁ 김영하 작가는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훨씬 낫다.



 


ㅁ 정세랑 작가가 요즘 인기이긴 한가 보다. 서점에 가니 그동안 냈던 책들이 매대 한 줄을 열맞춰 채우고 있었다. 이 책의 발췌가 핫한 일도 있고 해서, 호기심에 읽어보았다. 어찌나 인기인지, 도서관에 책이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결국 내 돈 주고 샀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데다 소설 속 가족사가 주는 격려와 용기도 좋았지만 나에게는 그게 문제였다. 모두가 해피해피한 이 세계관이 너무 이질적이야.......



 


ㅁ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도 안녕. 침대 위에서 라면 냄비 올려놓고 먹어야 할 때 요긴하게 잘 썼다. 하드커버라서 냄비가 안 엎어지거든.



 

 


ㅁ 팝/락 쳐돌이였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 다들 뭐 하는지... 마룬 파이브 말고는 소식이 안 들리네.


ㅁ 부모님이 사회 생활하시면서 선물받은 책도 있었다. 부모님은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모르는 눈치. 호기심에 몇 장 들춰서 읽어보았는데 팔랑귀인 나에게는 정치인이 쓴 책은 좋지 않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2013년도 벌써... 7년 전이다. 휴.





몇 안 되는 소설 전집 중 '백야행'은 버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것도 계속 가지고 있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백야행'은 소설보다는 드라마지.


ㅁ '크레용 신짱' 작가가 산에서 실족사한 후 작가가 직접 그린 50권이 유작으로 남아 출간되었다. 원래 작가의 마지막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이것도 나이 드니 더는 못 품겠다.






  


ㅁ 이번에는 알라딘에 보낸 모든 책이 매입되지 않았다. '크레용 신짱'은 제대로 정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매입불가 상품에 끼어있는지 의문이고, '아Q정전'은 내가 보낸 짐에 누락되어(예스24에 팔았다...) 그렇다 쳐도 백야행은 왜 중복되어 집계된 건지...? 백야행 상권과 중권은 매입되지 않았는데, 찾아보니 알라딘에 동일한 책의 재고를 이미 많은 경우에는 책을 보내도 매입불가로 처리된다고 한다. 그러면 처음부터 받지를 말든가. 알라딘의 중고책 재고는 어플이나 웹으로 조회할 수 없으니 매매자나 매입자 둘 모두 일단 책을 보내거나 받아봐야 확인되는 부분인데, 뭐 하러 그런 뻘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ㅁ 알라딘에는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책들을 팔았다면, 예스24에는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 책들을 팔았다. 두 서점의 매입 기조가 조금 다른 것 같다 느낀 대목이다. 알라딘의 매입 스펙트럼이 더 넓다고 해야 하나. 절판되어 더 구할 수 없는 책은 알라딘에서, 시중에서 구할 수 있지만 저렴하게 사고 싶은 책은 예스24로 가야겠다.



  


ㅁ 예스24는 포인트를 5,000원 단위로만 예치금으로 환전할 수 있다. 조금 약오르는 정책이다. 이미 갖고 있는 1,000원대 포인트를 얼른 예치금으로 환산하고 싶어서 분할 매입한 값을 포인트로 정산해 달라고 했는데... 포인트 정산시 20% 추가지급된다는 걸 몰랐네 젠장. 400원 남짓 '또' 포인트가 남아버렸다.














그러고 보면 인테리어 소품으로 책만한 것이 없다. 집주인의 취향과 교양을 보여주기에 가격 대비 이만한 게 어디 있냐고. 하지만 (친구에게도 말했듯이)그건 책이 만들어진 목적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 쓴 책은 누군가에게 읽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관상용으로 책장에 박제되기 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진다. 물론 부지런한 애독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책이 가진 본연의 목표를 다하지 못하게 한다는 채무감, 당장 필요하지 않은데 끌어안고 있는 고집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건 지난 3,4개월간 집에 '전시'되어있던 책들을 정리하고 책장의 빈 공간은 도서관을 부지런하게 오가며 생긴 확신이다. 책장은 미니멀해도 지식은 맥시멀한 나를 목표로, 올 가을의 책 정리 이야기는 이만 마무리하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