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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록/책: Books

[국체론] 극일보다 지일해야 하는 이유




평소 눈여겨 보던 출판사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년 '사쿠라 진다'와 '속국 민주주의론' 그리고 '영속패전론'에 이르기까지, 시라이 사토시의 책을 (어쩌다 보니)놓치지 않고 읽어온 터라 고민할 것도 없이 냉큼 신청했고, 당첨되었다. 서평이라는 걸 써 본 적이 없어서 바로 후회했지만. SNS 등에는 글자 수 제한이 있으니 중언부언하는 나한테 SNS 서평 쓰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블로그에서 조금 길게, 서평 아닌 감상에 더 가깝게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 9월 14일,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가 총리직에서 사퇴했고 그 뒤를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가 이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 후 스가 신임 총리는 "아베 총리가 추진해 온 정책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당선 소감을 남겼다. 28일 아베는 "스가 총리가 훌륭하게 뒤를 이어줘서 정말 안심하고 있다"는 말로 그 다짐에 호응했다. 같은 정당 소속 정치인으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지만, 정책을 넘어 정권 기조의 연속성을 가정해 두 사람의 정치적 사상의 공통분모를 파고들 필요가 생기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시라이 사토시의 국체론은 가장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는 책이다. 인물 개개인에 대한 분석보다는 그들이 공유하는 정신의 역사를 파헤치고 본질을 알아가는 경제적인 방법을 취한 이 책은, 사람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일본 정치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국체란 19세기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아이자와 세이시사이가 만든 말로, 메이지 유신으로 형성된 천황 중심의 통치 체제를 가리킨다. 태평양 전쟁 패전 후 천황은 실권을 잃고 예의 상징적 지위로 돌아갔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국체 개념은 유명무실해졌다고 생각한다. 시라이는 '국체는 다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살아있다'고 그 통념을 부인하며 '국체론'을 시작한다.


국체론은 '역사는 두 번 되풀이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또 한 번은 비극으로'라는 헤겔의 말을 가설 삼는다. 그 가설 위에 시라이는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 근대사를 국체의 형성-안정-붕괴기로 나누어 시대별 국체의 양상을 설명하며 전전과 전후 국체의 동일성을 치밀하게 논증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두 시기 국체의 사이클은 흡사 평행 세계를 보는 듯 하다. 국체가 어떻게 당대 일본에 태동했던 다양한 가능성을 말살하고, 얼마나 단단히 일본을 옭아매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데,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전전 국체의 결말, 즉 태평양 전쟁이라는 극한의 파멸이라는 사실이다. 두 국체가 비슷한 경로로 형성되어 발전해 왔다면 전후 국체의 끝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시라이는 전전 국체에 의해 파멸했던 전전 일본처럼 전후 일본도 전후 국체에 의해 심각한 자가당착과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왜 전전 국체와 전후 국체는 비슷한 궤도를 따라가는 것일까? 시라이에 따르면 전전과 전후의 국체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가 이음매 없이 매끄럽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전전 국체는 '신민은 천황의 적자'임을 천명하지만 민본주의와 같은 따스한 통치관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근대 일본에 태동했던 다양한 가능성을 천황 중심의 체제로 일축하고, '도리도 전략도 없는 전쟁 수행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p. 103)를 국민에게 강제했고, 그 결과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한국이 가장 큰 희생자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반()민주주의와 폐쇄성으로 요약되는 전전 국체는 청산되어 마땅했다. 그러나 천황의 권위를 빌려 일본을 쉽게 통치하려는 미국과, 천황제 존속의 DNA를 가진 쇼와 천황의 결탁으로 국체는 '천황'에서 '미국'으로 대체되어 이어졌다. 다시 말해 전전 국체는 별 고민 없이 전후에도 계승되었고, 전후 일본에는 미처 해소되지 못한 전전의 폭력성과 자기 혐오가 고스란히 남았다. 자기 편익을 위해 국체(천황)를 수립하고 신성화하여 이용한 일본 지배층의 유구한 전통은 일본의 친미 보수 우익의 형태로 살아남았다.


바로 여기서 '전후 국체=미국'이라는 시라이의 분석이 도출된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자기 보신을 위해 국체를 교묘하게 재편성한 '국체호지' 세력은 이제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해' 일본을 이끌어간다. 지금 일본은 독립국이라고 할 수 없으며 미국의 신민 상태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않는 노예라는 주장은 굉장히 도발적이다. 그러나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면에서 미국에게 좌지우지되다 못해 미국에 복종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전후 일본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라는 데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이 미일안보체제와 미국 우월의 경제-통상 구조를 한몸 바쳐 떠받치는 사이 일본 내적으로는 비판 없는 '미국류' 도입으로 인한 모순이 누적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평화주의 국가를 자처하면서도, 아예 개헌을 통해 군사력을 갖춰 철저한 미국의 보조 군사력으로 활용되고자 하는 모순은 우리에게도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들이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전쟁 특수'로 거둔 (미국이 제공한)경제적 과실의 달콤함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반도 위기를 부추기는 그 위험성의 가시화는 그 자체로 국체를 연구하는 것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에게도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국체론은 일본의 민낯 - 반성도 부끄러움도 없는 '전범국', 단 한 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적 없으면서 평화-민주국가임을 자칭하는 뻔뻔함, 대미 종속의 영속화를 자초하는 비굴함, 허상을 자초했음에도 그 허구를 견디지 못해 일상적으로 일으키는 정신 승리, 전쟁으로라도 현실을 리셋하고 싶어하는 자기파괴적인 충동 등 - 을 낱낱이 보여준다. 대부분의 서평은 한일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홍보하지만, 나는 이 책이 단지 외교만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도 돕는 책이기에 일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체를 이해하고 전후 일본의 역사에서 비롯된 일본 보수 지배층의 뒤틀린 심리를 이해한다면, 총리가 바뀌어도 일본의 기조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 한일 관계사 자체 못지않게 더욱 근본적이고 개별적인 '일본'을 이해해야 하며, 벽창호 같은 일본 앞에서 좌절하거나 분노하기 이전에 일본을 알아야 한다. 일본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 그리고 '국체론'의 저자 시라이 사토시가 쓴 다른 책들을 엮어둔다. 늦었지만;



막연하게 진저리 치기만 했던 일본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에 올 여름 읽었던 책들.


나름 여러 방법으로 경험해 온 일본에 관해 느껴온 바가 정연한 글과 논리로 정리되어 있었다. 우치다 타츠루와 시라이 사토시 두 일본 지성의 표현이나 통찰은 내가 막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을 너무나 적확하고 신랄하게 정리해 줘서 놀랄 정도ㅋㅋㅋ 미국에 대한 비굴할 정도의 셀프 종속을 '노예'에 비유하기까지 하는 주장이 무척 도발적이고, 무언가에 대한 종속과 현 일본의 끝없는 답보 상태를 엮어 설명한 부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어서 특히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이런 나라가 바로 이웃에 있어 끊임없이 우환이 되어온 걸 생각하면... 이 책 저자들은 자기 나라(일본)를 생각해서 이런 책을 썼겠지만, 다 읽고 나니 나는 내 나라가 더 걱정이다. 해를 넘겨도 극일보다는 지일해야 하는 이유.



2019.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