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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록/책: Books

[나무의 시간] 은은한 나무 내음




#삼다독 #나무의시간


연휴 직전 대출. 존재는 알았지만 나무에는 관심도 없어서 모른 척 했는데, 실물을 보니 책 표지가 고즈넉하고 부들부들 촉감이 좋고 결정적으로 도서관 책 치고는 꽤 깨끗해서 빌려왔다(초 3 여름방학 숙제인 독후감 첫 줄로 '선생님이 쓰라고 해서 쓴다'고 썼다가 개학날 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내 독후감을 낭독하신 게 갑자기 기억나네. 감각적이고 시니컬한 독서는 유구하다).


전문 서적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훌훌 읽을 수 있겠지만, 나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훨씬 무겁고, 그 애정으로 쌓아올린 지식과 감상은 소재와 분야를 넘나든다. 300쪽이 넘도록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애정은 어떤 것일까. 그런 애정을 그 무엇에도 가져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부럽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한 나무쟁이가 수십년 목재를 사고 팔러 다니며 쌓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의 역사는 자연이라는 근원으로 돌아감으로써 한결 우아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가 정의한 '성숙한 사회("시민들이 세상의 사물 이치에 대하여 드러나지 않는 지식, 상식, 교양을 가지고 있다")에 깊이 공감한다. 콘크리트와 철처럼 생명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약간의 정성은 거추장스럽고 비싸진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책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좋은 책이지만 30쪽쯤부터 의무감에 페이지를 넘기고야 말았다. 이건 내 탓인데, 갈수록 책을 편하게 읽기가 힘들어진다. 아니, 편한 책을 읽는 게 힘들다고 해야 하나.



2019.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