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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Voyage/'16 Roman Holiday

ep #2 열정과 찜통 사이, 7월의 피렌체

 

 

두 눈이 번쩍 뜨인 건 한밤중이었다. 사방이 어두웠다. 곤히 자던 나를 깨운 건 같은 방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였다. 습관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아이폰을 켜니 새벽 서너 시쯤이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전까지 밀라노 아니었어?

 

생각거리가 생기니 잠이 깨는 건 금방이었다.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내렸던 순간의 장면부터 되짚어 보자.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두어 시간 달렸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플랫폼이 가까워지는 장면도 떠올랐다. 플랫폼을 서성이는 수많은 배낭족을 제치고 길을 건너 햄버거 가게를 지났다. 역 앞에서 코카콜라 프로모션을 했던 것 같은데 나, 그 공짜 콜라 받았나.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걷는 동안 직사로 내리꽂히던 햇볕. 정수리가 타는 듯해 '모자를 가져올걸' 후회했던 것도 생각났다. 건물 입구에 붙은 초인종을 누르니 흘깃 내다보고 웃으며 잠깐 기다리라던 어느 할머니. 몇 초 지나지 않아 로비 안쪽에서 문을 열고 나온 젊은 여자. 자기가 여기 주인이라나. 이름이 뭐니, 어디서 왔니? 네가 오늘 오기로 한 OO이구나, 너 기다리고 있었어! 친근한 말투로 포장한 체크인 멘트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호스트를 보며 했던 여러 생각도 한꺼번에 떠올랐다. 영어를 이탈리아어처럼 하는 사람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 말이 진짜 빠르네, 저럴 거면 멘트 녹음해두고 체크인마다 틀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안내받은 침대 옆 바닥에 배낭을 던지고 내 몸도 침대에 던졌다. 홍콩에서는 언제 탈지 모를 경유기를 잠도 못 자고 기다렸다. 좁은 기내에서 편히 잠들지 못했으리라는 건 보나마나 블루레이. 그 바람에 피렌체행 기차 안에서도 고역이었다. 배낭을 지키긴 지켜야겠는데, 끌어안은 배낭이 품에 든든하게 들어와서 거기 기대어 설핏 잠들었다가 후다닥 다시 깨고. 두 시간 남짓 이 짓을 반복하느라 차라리 울고 싶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 생각과 기억을 모두 거쳐 지금 누운 이 침대가 대략 25시간 만에 누운 침대라는 계산에 이르자 눈부터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한두 시간 자고 나면 딱 저녁식사할 타이밍이니까, 호스트가 추천한 티본 스테이크는 그때 가 봐야겠다.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고기, 고기는... 맛있겠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이 캄캄한 새벽이었다. 무려 열두 시간 가까이 죽은 듯이 잤다. 지금 코 고는 누군가는 내가 잠든 사이 도미토리에 들어온 얼굴 모를 룸메이트일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국에서 이탈리아 피렌체까지 공간 이동을 한 듯한 기분에 얼떨떨한데 문득 룸메이트의 코 고는 소리가 귀에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메트로놈처럼 정확하게 반복되는 소리에 다시 또 스르르 눈을 감았다. 한 번 질끈 감고 떴는데 그 사이 또 3시간여가 지나있었다. 심지어 배에 손을 올려두고 처음 잠든 자세 그대로 깼다가 다시 자고 또 가만히 눈만 뜨고 일어났다. 아침 7시, 옆 방에서 잠에서 깬 인기척이 들려왔다.

 

북적이는 화장실이 싫어서 기운차려 일어나 샤워하고 라운지로 나왔다. 창가 테이블에 멍하니 앉은 나를 호스트가 발견하자마자 빵 터졌다. 잘 잤어? 어제 30분만 자고 나간다면서 안 나오길래 다른 사람 체크인하면서 보니까 완전 곯아 떨어졌더라고. 아무도 너 방해 못하게 조용조용 체크인시켰어.

조식을 먹자마자 달려나온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피곤에 절은 나의 '잠만보'적인 모습을 이 이국 땅에서 누군가가 눈치챘다는 게 민망했고, 짧고 굵은 여행에서 반나절을 잠으로 날리는 바람에 어그러진 일정이 억울했으며 마음도 급해졌다. 그 바람에 가고 싶은 곳 없이 쏘다니는 무대책 피렌체 투어가 시작되었다.

 

 

 

피렌체 중앙시장

 

 

#1

아이폰 따위에게 풀샷을 허용할 수 없다는 듯한, 거대한 두오모 사진을 찍느라 성당을 한 바퀴 돌았다. 자연스럽게 두오모를 빙 둘러싼 가게들도 구경하듯이 지나치다가 서점을 발견했다. 이탈리아 책은 이렇구나, 둘러보려고만 했는데 영어책 코너 표시를 본 순간 발걸음이 그 쪽으로 향했다. 벼락치기하듯 떠나온 데다, 피렌체에 도착한 날에 시내를 걸으며 탐색하려던 계획이 모두 어긋나서 '가이드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결국 적당한 두께와 가격의 작은 책 한 권을 샀다. 계산대에서 내가 내민 책의 'A Short History of Florence'라는 제목을 본 중년 여성 점원이 갑자기 웃어 보였다. 점원의 무표정한 얼굴에 굳어있던 내 긴장도 탁 풀렸다.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하다. 미소가 푸근했던 인상을 받았던 걸 보면 피렌체 역사책을 집어든 외국인을 기특(?)하게 본 것 아니었을까 싶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일명 '두오모'

 

 

#2

오전 10시, 두오모 주변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쿠폴라에 올라가려 입장을 기다리는 줄은 그 거대한 성당을 한 바퀴 감싸고 있었다. 아직 오전인데도 피렌체의 태양은 전날처럼 강렬했다. 거대한 두오모가 만들어내는 응달이 아니었다면 그들도 진작 쿠폴라에 오르기를 포기했을지 모른다.

인스타그램에 두오모 사진을 올렸더니 '피렌체 너무 좋지 않냐'는 댓글이 달렸다. 다 좋은데 어깨가 불에 타는 기분이라고 답글을 달았다. 아침 9시에 이미 30도를 훌쩍 넘긴 피렌체를 걷는 게 두려워졌다.

 

 

 

피렌체 두오모의 브루넬레스키 돔과 북적이는 두오모 주변

 

 

#3

정오가 될수록, 태양이 땅과 직각을 이룰수록 내 두피가 햇볕 때문에 받는 고통도 커져갔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피렌체 시내 건물들의 회랑이나 응달을 골라가며 걷다가 도착한 어느 광장. 서점에서 산 책을 읽고 쉬어가기도 할 겸 계단에 앉아 책을 폈다. 영어는 어렵지 않았지만 책에서 다루는 개념과 옛 피렌체 유력 가문들의 이름이 생소해 읽기 쉽지 않았다. 얇은 책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이 도시의 티끌만 한 부분이라도, 진정으로 알고자 했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내가 피렌체라는 도시를 이해하게 된 건 한국으로 돌아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피렌체에 관한 책을 읽은 후의 일이었다(그리고 아직 멀었다...). 책과 여행을 연결하여 대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여행은 책에서 알게 된 것을 확인하러 떠나는 것일까, 아니면 책을 더 잘 읽기 위한 선행 학습일까. 배경지식이 있어도 어떤 여행은 돌아온 이후의 경험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무심히 보게 되는 영화나 책, 같은 곳을 여행한 사람들끼리의 우연한 대화 같은 것들 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을 관조하기 위해 떠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일상과 여행이 뚜렷하게 분리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안눈치아타 광장

 

 

 

그저 더위를 피하려고 무심히 앉았던 계단을, 몇 년이 지나 TV에서 보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이란. 그 계단이 딸린 건물, 그러니까 내 등 뒤로 서 있던 건물의 이름은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Ospedale degli Innocenti)'. '죄 없는 사람들의 병원'이라는 이름답게 이곳은 유럽 최초의 고아원이자 병원으로, 말 못할 사정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1400년대 피렌체 상인 조합이 세웠다. 이 건물이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의 첫 작품이라는 데 있다. 이 브루넬레스키가 바로, 방금 전 돌아본 두오모의 역사적인 돔을 올린 르네상스 피렌체의 천재 건축가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초기 작품으로서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양식이 정립되어 표현된 인노첸티 고아원도 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눈여겨 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던 거다.

 

'알쓸범잡' 시즌 3 유럽 편에서 김영하-유시민 작가가 이곳을 찾아간 장면이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이 건물이 그런 곳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 저기 낯설지 않은데? 멀리까지 가고도 그 가치를 못 알아본 내가 기가 막힐 수 밖에 없다. 이윽고 두 작가의 동선을 따라 인노첸티 고아원의 사연과 여러 전시품이 소개되었다. 내가 이곳을 알았다면 순수하고 여린 아이들과 병자들을 편견없이 돌보는 도시 피렌체의 정신에 감동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앞서 책이 먼저인지 여행이 먼저인지 모르겠다고 썼지만 이거 하나만은 단언할 수 있다. 책이 먼저인 여행이 여행이 먼저인 책보다 훨씬 깊고 풍부하게 기억된다고.

 

 

 

두오모 가는 길에 오타루 운하 창고 같은 곳이 있었다. 알고 보니 메디치 가의 가족 성당 '산 로렌초 성당'(...).

 

뜨거운 햇볕을 피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 무슨 학교로 착각했던 이 건물은 수많은 르네상스 미술품을 품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었다...

 

 

피렌체는 발에 채이는 게 성당이네. 교토에는 절, 피렌체에는 성당, 로마에는 성당과 로마 유적.

 

 

 

#4

가 봤지만 안다고는 할 수 없는 곳들.

먼저, 베키오 궁과 '다비드' 레플리카. 피렌체 정치의 중심지였던 베키오 궁은 지금은 피렌체 시청으로 쓰이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그 유명한 조각상 다비드의 진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베키오 궁과 미켈란젤로 광장에 레플리카가 하나씩 서 있다. 그러니까 아까 그 안눈치아타 광장에서 300미터 거리에 '다비드' 진품이 있었다는 거지...?(눈물)

 

그리고 우피치 미술관의 마키아벨리 조각상. 엄청난 대기줄을 보고 입장까지는 수시간이 걸리겠다는 걸 직감하고 우피치 미술관도 감히 시도해 볼 엄두를 못 내고 백스텝했다. 베키오 다리 쪽으로 걸어가는 길, 미술관 열주 회랑의 좌우로 인물 조각상이 서 있었다. 레오폴드 2세 토스카나 대공의 의뢰로 중세부터 19세기까지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 28명을 선정해 그들의 조각상을 만든 것이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갈릴레이, 조토, 단테 등 조각상으로 모습을 남긴 피렌체 출신 인물들의 면면을 보다 보면 이 28인 선정이 납득되면서도 '스물 여덟 명만 고른다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까'라며 프로젝트 기획자의 고충도 헤아리게 된다. 쟁쟁한 선수들 중 베스트 일레븐을 추려야 하는 축구감독의 마음 비슷한 거랄까.

 

여러 인물의 조각상 사진을 찍었지만 마키아벨리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다. 고등학생 때 멋모르고 '군주론'을 읽었다가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아 덮어버렸는데, 몇 년이 지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생긴 후에 다시 읽어보니 수백년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한 이유도 이해되었다. 거침없고 파워풀하며 때로는 현실적이다 못해 간교하기까지 한 책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리더십을 좋아하지 않기란 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여전히 도덕과 정치의 많은 부분을 겹쳐서 보는 내 눈에는 애민 정신처럼 정치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이 결여된 것처럼 보여서, 읽히기는 해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사실 이런 정치 리더가 현존한다면 불안하기까지 할 것 같다. 리더의 가장 큰 죄악은 무능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의견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실력에 무게를 더 싣는 순간 실력을 이유로 폭주하는 독선이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현실적으로 그를 제어할 방법이 없으리라는 것도 '군주론'이 묘사하는 이상적 군주상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한 군주상을 필요로 했던 당대 피렌체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정치가 아닌 통치를 말하는 '군주론'은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다. 심각한 도덕성 문제 하나쯤은 기본으로 달고 있는, 그러나 그런 건 상대의 네거티브로 치부해버리는 후보들(언제 정신 차릴래!!!) 뿐인 이번 대선 같은 상황에서는 특히 더 불안하다.

 

현실 정치 이야기는 일단 차치하고 우피치 미술관의 조각상들 이야기로 돌아가자.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 28명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학자나 예술인으로,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올려놓은 사람들이다. 정치인이나 군인은 손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나마도 피렌체를 전란에서 구했다든가 뛰어난 외교술로 도시국가 피렌체의 이익을 지켰다든가 등등 피렌체인이라면 기릴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업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화려한 웅변이나 칼보다는 사람들의 정신을 이끌었던 이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준 듯한 우피치 미술관 열주회랑의 선택이 과연 르네상스의 도시답다. 그런 사람들만으로도 거뜬히 그 숫자를 채울 수 있는 인재 풀(pool)이 부럽기도 하고.

 

 

 

 

 

#5

피렌체 풍경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베키오 다리. 바로 건너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들어갔다.

세느, 템즈, 아르노... 그리고 로마에서 볼 테베레까지.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도시를 끼고 흐르는 강을 심심치 않게 보지만 매번 유명세에 비해 작은 규모에 김이 샌다. 실망감, 허탈함, 우스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제4의 기분을 느끼면서.

처음에는 여느 한국인처럼 한강에 익숙해진 나 자신의 눈과 감각을 원인으로 생각했다. 1km 이상씩 달려야 다리 끝에서 끝을 오가는 다리들이 즐비한 정도가 되어야 강이라고 할 만한 것 아닌가? '유명한 강 치고는 너무 작다'. 그러다가 이내 말에 어폐가 있음을 깨닫는다. '강이 커야 유명한가?' 인지도나 주목도와 강의 규모가 반드시 연관성이 없다는 뻔한 이야기를 스스로 묻고 답하다가 새삼 '발견'하고 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남들의 말에 고민없이 동조하는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어떤 때는 반성까지 하게 된다.

 

베키오 다리를 직접 건너본다. 다리 좌우로 쇼윈도에 보석을 걸어놓은, 작지만 화려한 보석 가게가 즐비했다. 소박해 보이는 다리 외관과는 사뭇 달랐다. 수많은 관광객 중 한 명이 되어 오로지 '베키오 다리를 건너본다'는 목적 밖에 없는 채로, 쇼윈도에도 간간이 눈길을 던지면서 의미없이 걸었다. 인사동이나 익선동으로 놀러가는 길에 종로 금은방 거리를 동태 눈깔을 하고 지나던 때가 왜 생각나는지.

 

 

 

 

 

#6

여행을 떠나오기 전 가이드북을 살지 말지 고민했다. 가이드북 하나 없이 오기에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책을 선뜻 주문하기에는 일정이 너무 짧았다. 오버 좀 해서, 책을 펴 보기도 전에 여행이 끝날 것 같았다고 할까. 마침 직전에 가족과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가이드북에서 피렌체와 로마 부분만 찢어 빌려주었다. 원래 두께보다 훨씬 얇아진 가이드북에 홀가분해 하며 짐을 꾸렸던 기억이 난다.

 

종이는 또다른 종이를 소개해 주었다. 가이드북 피렌체 파트는 가 볼 만한 가게로 '일 빠삐로(Il Papiro)'를 꼽고 있었다. '수공예 종이 전문점'이라는 글귀에 흥미가 일었다. 수첩이나 일기도 살 수 있다기에 좋은 여행 기념품이 될 것 같았다. 마침 베키오 다리 건너편에 그 가게가 있어서(피렌체 곳곳에 지점이 있다) 진작 가 볼 마음을 먹었다. 남들은 피렌체 가죽에 돈을 쓰는데 나는 피렌체 종이에 돈을 쓸 작정으로.

 

막상 둘러보니 내가 종이를 소비하는 패턴과는 다른 제품이 많았다. 수첩이나 일기의 디자인도 나와는 맞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기에는 종이의 퀄리티가 지나치게 좋아서 이것저것 별 생각없이 적는 용도로 쓰기에는... 전통 공예품에 낙서하는 듯해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바로 떠나기에는 아쉬워서 머뭇거리다가 점원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쓸 카드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해서 두 장을 골라냈다. 카드 두 장에 무려 14유로(...).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카드에 글을 써 주고 싶을 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지 조금 의문스러워졌다. 어쨌든 호쾌하게 결제했지만.

 

카드 추천을 부탁하고 부탁받고, 또 계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점원과의 대화가 좀더 길어졌다. 물 흐르듯 유창한 점원의 영어에 감탄해서 "영어를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무심코 던졌는데 자기는 미국인이라며 한참 웃었다. 졸지에 미국 사람에게 영어 잘한다고 칭찬한 한국인이 되었다. 그를 마주친 게 영미권 국가가 아니라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라고 변명해 본다. 피렌체에 산 지 42년째라는 점원과 '어쩌다 피렌체에 오래 살게 되었는지' '피렌체의 매력이 무엇인지' 같은 것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를 고향을 떠나 40년 넘게 머나먼 타국에 뿌리내리게 하는 피렌체의 매력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진지한 호기심에 물었는데 대답이 너무 쿨했다. "피렌체니까." 짧은 답에 왠지 좀 피곤해져서 대충 수긍하는 척 했다.

 

점원은 한국에서 왔다는 내 말에 "우리 가게 유명한 것 같던데! 한국인들 진짜 많이 와. 우리가 한국어 가이드북에 나온 것 같더라"라며 반색했다. 나도 가이드북을 보고 일부러 찾아왔다는 말은 민망해서 차마 하지 못하고 덩달아 놀란 척 하며 나는 가게 외관을 보고 궁금해져서 들어왔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점원은 20여년 전에는 한국 백화점에서도 일 빠삐로의 카드를 수입해갔는데 그 백화점이 불에 탄 것 같다며, 너는 어려서 잘 모를 것 같지만 혹시 어느 백화점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한국에는 불에 타거나 무너지거나 부도를 맞은, 혹은 그에 준하는 대형 재난을 당한 유명 건물이 한둘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자학하듯 대답하긴 했는데, 말해놓고 씁쓸하다.

 

 

 

둘이 합쳐 14유로(약 19,000원)

 

 

#7

피렌체 야경 명소인 미켈란젤로 광장에 가고 싶었다. 문제는 동행이 없다는 것. 해가 진 뒤 혼자 돌아다니는 배짱을 부리기에는 겁이 많고 안전제일주의라 야경은 포기할까 했는데, 웬걸. 뜨거운 한낮의 햇볕을 견디다 못해 잠시 숙소로 쉬러 왔을 때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났고 함께 미켈란젤로 광장에 가자는 약속을 했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 서너 명이 같은 날 피렌체에서 만났는데 그들 모두 야경을 보고 싶어한다는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기쁘게도 나의 미켈란젤로 광장행도 순탄하게 결정되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탔다. 일몰 직전 버스 안은 역시 노을 속 피렌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특이한 게 있다면 아시안보다 코카서스 인종이 더 많다.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했지만 정작 내 기억 속 유럽에서 관광객처럼 보이는 백인들은 아시안보다 소수였다(중국의 해외여행 부분자유화 영향도 좀 있지 않을까).

 

그런데 피렌체에서는 유독 백인, 특히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뭉쳐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냥 들리기에 들어본 그들의 영어 발음으로는 북미에서 온 것 같았는데 광장행 버스에도 후루루루 드르르르 하고 기계에 기름칠한 것 같은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피렌체가 미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나 보다, 피렌체가 미국에 어떤 이미지인지 궁금하다고, 진짜 시덥지 않은 추리를 동행들에게 이야기했는데 다들 공감을 못하는 표정이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보는 피렌체 야경보다 남의 영어 발음과 출신 국가가 더 궁금하고 인상에 남은 나, 지금 내가 되돌아 보아도 별종이긴 하네.

 

 

 

 

 

피렌체 야경 사진을 한동안 카톡 프사로 잘 써먹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혈육이 그 사진을 본인 SNS에 올려두었더라. 그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 깊은 생각과 감정을 나누지 않는 형제지간이라 혈육의 SNS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내가 찍은 사진, 좀 괜찮지?'라는 톡에 'ㅇㅇ'이라는 답을 받은 듯하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