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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About Me/내킬 때 쓰는 일상

뜻밖의 레스 웨이스트, 8월

 

 

7월 말부터 네이버 블로그 주간일기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일상이라고 할 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내 일상이라서, 주간일기 몇 줄이라도 적으려면 마른 걸레 쥐어짜듯 내 내면까지 비틀어봐야 글감을 겨우 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의식의 흐름대로 적게 되는데(마치 지금 이 글처럼) 요즘 꽂혀있는 게 환경 친화적인 생활,

예를 들어 미니멀 라이프나 제로 웨이스트 같은 것들이다 보니 주간일기도 주로 그 쪽 이야기를 쓰게 된다.

대체로 환경에 대한 내 상념 뿐이지만.

 

미니멀 라이프나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는 하다.

 

혼자 여행하면서 '가볍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짐에 대한 동경이 생겼고, 여행을 쉬게 되면서는 '모든 짐이 캐리어 한두 개에 다 담길 정도로 단출한 방'을 꿈꾸게 되어 두어 해 전부터 불필요한 물건을 비웠다.

느리지만 꼼꼼하게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면서 그 과정이 단순히 사물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나의 현 상황과 미래에 대한 '생각의 정리'임을 경험했다.

사물에 투영된 내 생각이 정리되자 머리 속에 흐린 구름처럼 떠다니던 잡념이 싹 걷혔는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보니 꾸준히 자잘하게 정리하면서 일상을 가다듬고 있다. 이런 류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미니멀 라이프라고 칭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후의 일이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한다'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 관심의 필요에 현실적인 근거라도 마련해주듯이 마침(?) 이례적인 가뭄과 호우가 반복되었다. 사람 가슴 뛰게 하는 봄과 가을이 (원래도 짧았지만)더욱 짧아지고 있었다. 계절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기상 변화에 더 자주 고통받고 있다. 그 원인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 때문이라고 하니, 필요한 것만 쓰며 쓰레기를 가능한 적게 만드는 삶이 '아름다운 사계절'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알고 살아온 봄여름가을겨울을 앞으로도 경험하며 살고 싶어 미니멀 라이프와 제로 웨이스트를 조금이라도 실천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무슨 대단한 문제 의식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저 지금껏 알던 세상을 늙어 죽을 때까지도 당연한 것으로 두고 살고 싶은 이기심이 사소하게나마 달라지기로 마음 먹은 계기가 되었다는 거다.

 

이 기특(?)한 결심에 뜻밖의 장애물이 있었는데, 가만 두고 보니 내가 원래도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사람이라 나만으로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와 제로 웨이스트 모두 자본주의에 어느 정도 반하는 흐름인데 나부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꽤나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자가 아니라서, 내가 뭘 하든 나의 작은 날갯짓에 불과할 뿐이라는 거다.

 

뭔가 변화를 만들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나...? 라는 아이러니가 생기는데 이건 내 머리 속의 드립으로만 남겨두고, 아무튼.

그게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글을 쓰면서 지난 한 달여간 내가 한 작은 노력을 인터넷에 올리는 이유이다.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나 상념을 적는 블로그여도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이런 식의 소비 방식도 불편하거나 나쁘지는 않겠다는 걸 알아주고 동참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텀블러는 외출할 때는 늘 가지고 나간다. 내 첫 텀블러는 써모스 제품으로 3년 전 내돈내산한 물건인데, 발단은 그냥 '식은 커피를 마시기 싫다'는 마음이었다. 설거지가 조금 귀찮지만 일회용 컵을 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느껴지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고 무엇보다 따끈한 커피를 끝까지 따끈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일년 후 면접을 보았던 곳에서 기념품이라며 이 락앤락 텀블러를 줬다. 텀블러인 줄 알았으면 안 받았을텐데 쳇. 거마비나 줄 것이지... 아무튼 입구가 넓어서 손으로 꼼꼼히 세척할 수 있고 얼음이 녹아 점점 밍밍해지는 아이스 커피를 맛보지 않아도 된다는 최고의 장점이 있어 한여름이면 실컷 애용하는 중이다. 카페 할인은 덤.

 

 

 

 

 

집에서 가까운 가게에서 잠깐 필요한 걸 사는데도 비닐봉지 두 장쯤은 거뜬히 쓰게 된다는 걸 의식하면서 집 근처에서 자잘한 장을 볼 때면 우리집에 남아도는 밀폐용기를 가지고 나간다(우리 엄마는 한 번 쓴 비닐봉지가 너무 더럽지 않으면 물로 헹궈서 또 쓰기까지 한다). 그 와중에 용기내 챌린지를 알게 되어 참여하는 사람들의 포스트를 쭉 찾아보았다. '이게 어디까지 통할까' 하는 호기심에 프랜차이즈 가게에 포장 주문을 픽업할 때도 용기를 가져가 봤다. 아 물론 픽업 전에 개인 용기 포장도 가능한지 매장 방침을 묻는 건 매너지. 우리 동네 굽네치킨에서는 매번 흔쾌히 스텐 용기에 치킨을 정성껏 담아줬다(사진을 안 찍었네ㅠ). 어제는 프랜차이즈인 배스킨라빈스에 용기를 가져갔는데 점원들이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아이스크림을 담아올 수 있었다. 이제 다 먹고 난 아이스크림이 끈적하게 말라붙은 종이 용기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불편하기는커녕 뭔가 속이 뻥 뚫리듯 후련하다.

 

이렇게 시간 많은 자의 8월은 가능한 쓰레기를 덜 만드는 데 쓰였다. 이제 가을이 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