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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About Me/내킬 때 쓰는 일상

231006 10년 된 노트북 당근에 판, 뒤늦은 이야기

 

올해 여름의 끝, 아이패드 미니2를 처분하면서 9년간 썼던 옛 노트북(made by LG)도 당근에 팔았다.

 

작년에 디스플레이가 고장났다가 기적적으로 부활(?)했길래 주로 거실 TV에 연결해서 부모님께 영화 보여드리는 용도로 썼는데,

부활이라고 믿었던 현상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어느 순간 외부 모니터와의 연결을 해제하면 한동안은 멀쩡하다가도 채 한 시간도 못 가서 도로 화면이 꺼져버리는 기현상이 반복되었다.

노트북처럼 너덜너덜해진 노트북 파우치에 넣어서 책상 구석에 밀어놓았던 건 추억이 깃든 물건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노트북이 그냥 전자 쓰레기가 되지 않고 그나마 부품 값이라도 건질 수 있는 물건이 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았다.

 

수명이 다하거나 이제 안 쓰는 노트북에서 부품 값이라도 건지자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이것(↓) 때문.

 

 

삼성 SENS Q310

 

LG 노트북 전에 4년간 썼던 삼성 노트북 되시겠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노트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정 컴퓨터가 필요하면 집의 데스크탑 PC나 학교 컴퓨터실을 이용했는데

2학년이 되고 어느 영어 수업에 들어갔다가 나 빼고 쏼라쏼라 영어가 유창한 클래스메이트들에게 충격받아 가능한 자주, 많이 영어에 나 자신을 노출시켜야겠다 생각하고 그걸 이유로 노트북을 구입했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들이 들고 다닐 가벼운 사용 용도로 넷북이 많이 시중에 나와있었을 때인데 넷북은 그때 기준으로 봐도 단순 문서 작성 목적을 겨우 충족하는 수준이어서 패스. 오래 쓰자는 생각으로 다소 비싼 노트북 구입을 결심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하이마트에서 구입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이마트에서 이걸 산 건 정~~~말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사실 이 노트북을 살 돈으로 훨씬 좋은 사양의 노트북을 살 수도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컴퓨터에 대해서는 1도 모를 때라 하이마트 직원이 권하는 대로 제품을 선택해 결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량 노트북이 조금씩 시장에 나오기 시작함. 오메 피 같은 (울엄마) 돈...

 

 

이걸 120만원 주고 샀다...

 

무게가 3kg 정도 됐던가? 노트북이라는 분류가 무색하게 우리집 내 방 책상 위를 벗어나서는 쓸 수 없는 노트북이었고

혹여 조별 발표 준비 때문에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한쪽 어깨가 무너질 걸 각오하고 챙겨 나가야 했다.

그런 주제에 구입한 지 3년 정도 되니 속도도 무지 느려짐... 하. 웬만하면 기계 느린 걸 참을성있게 쓰는 나도 이 노트북은 내 생에 첫 노트북임에도 학을 뗐다.

 

대학원에 입학하며 정말로 오랜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게 되자 결국 이 노트북은 DVD 플레이 머신으로 전락했고 한참 인터넷 정보를 뒤진 끝에 샀던 게 LG 노트북이었다.

삼성 노트북은 거의 10년을 방구석에 묵혀두었다가 작년 봄인가, 어느 컴퓨터 수리점에 맡겨서 폐기했다.

부품 값이라도 받을 줄 알고 더운 날씨에도 끙끙대며 짊어지고 갔는데 한 푼도 못 받...기는커녕 오히려 수리점 사장님이 나한테 폐기 비용을 받지 않은 게 감사할 정도로 고물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이 다음에 처분할 전자기기가 생기면 치킨 값이라도 받을 수 있을 때 타이밍 놓치지 않고 처분하리라 마음 먹었었다.

 

 

 

요즘 노트북들과 비교해도 디자인이나 무게나 뒤지지 않는 명기였다. 프리도스여서 가격도 국내 대기업 제품 치고는 저렴했던 93만원. 훨씬 싼 노트북들도 많이 나오는 세상이지만 이것저것 자랑할 만한 하드웨어를 장착하고도 이 정도 가격인 건 그때나 지금이나 꿇리지 않는다.

 

화질도 좋고, 슬림하고 가볍고, 디자인으로는 이후의 LG 플래그십 라인인 그램보다도 (내 눈에는) 더 예뻤던 데다 디스플레이가 나가기 전까지는 잔고장 한 번 일으키지 않은 튼튼함까지 갖춰서 정말 오랫동안 애용했다. 돈을 벌게 된 후로도 노트북을 바꾸지 않은 이유가 있다니까.

 

그렇지만 그는 고장이 나 버렸고... 램을 교체한 후로도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당근행.

 

 

 

내 것보다 상태 나쁘고 오래된 노트북들도 당근에서 5만원 이상에 팔리는 걸 보고 나도 자신있게 5만원에 올렸다. 그런데 '좋아요'만 많이 눌리지 잘 팔리질 않는다. 사람들이 멀쩡한 컴으로 오해해서 채팅을 걸었다가 사실을 알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거래가 파투날 게 싫어서 물건 이상에 대해서 자세하게 써서 올렸더니... 그래서인가.

그래서 가격 제안으로 돌렸더니 두 사람이 각각 3만원과 4만원 오퍼를 보내옴. 그 중 4만원 제안한 분과 거래 약속을 잡았다.

 

나는 실 사용할 줄 알고 윈도우 초기화할 건데 새로 깔아드릴까요, 물건 이상은 확인하셨나요, 연결해서 쓰실 외부 모니터는 있나요 등등 꼬치꼬치 캐물었다. 근데 이 오래된 노트북을 사 간다는 사람이 달리 궁금한 건 없는지 괜찮습니다, 네네만 연발하고 질문을 아예 하지 않았다. 누가 보면 내가 구매자여.

 

 

 

여튼 내 개인정보가 털릴 게 걱정되는 사람은 나니까 노트북도 깔끔히 포맷을 해 줬다. 포맷의 밀도와 횟수도 아이패드 때와 비슷하다. 윈도우10에서 제공하는 기본 초기화 서너 번, USB 꽂고 진행하는 공장 초기화 세 번.

 

 

 

마이크로소프트 계정에서도 지웠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에도 이렇게 기기들 연계해서 관리하는 기능이 있었던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애플만 그런 줄ㅋ

 

 

 

한 번 초기화하는 것도 시간이 오지게 걸려서 초기화 진행하면서 딴짓했다. 늦은 밤까지 초기화, 초기화, 초기화...

그 과정이 하도 지루한 데다 어느덧 저녁잠 많아진 나이가 되어서 한 5번째 초기화를 할 때가 되니 꾸벅꾸벅 졸게 되는데 은근 짜증났다ㅋㅋㅠ 지난한 초기화는 그나마 남아있던 애정 한 조각을 떼어내는 시간이었던 듯...

 

중고로 팔 거라서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지는 않고 마지막 포맷 때 부팅 상태로 놔둔 채로 노트북 전원을 껐다.

 

다음날 구매자를 만나 노트북을 전해주는데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제발 잘 써 주세요'라는 오오라를 온몸으로 내뿜는 내 태도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돈만 쥐어주고 바삐 떠나려 하더라고... 궁금해서 '고쳐서 쓰실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내 노트북과 비슷한 사양의 노트북이 있는데 고장이 나서 내 노트북과 합쳐서 다시 만들 거란다. 그 말을 듣는데 키메라가 떠올랐다(...).

 

순간 팔지 말까, 이런 생각마저 들었는데 내가 갖고 있어도 관공서 홈페이지 쓸 때나 필요한 용도 이상의 몫은 해 내지 못할 게 뻔했다. 삼성 노트북을 간신히 처분한 기억도 있어서 속으로 '헤어질 결심'을 하고 구매자 분의 품에 노트북을 넘겼다.

이후로 별 일 없고 별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내 9년 쓰고 10년째 갖고 있던 옛 노트북은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키메라가 된 것 같다.

 

 

여튼 이렇게 노트북과도 작별했다.

 

 

 

 

 

Bye. Au rev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