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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About Me/내킬 때 쓰는 일상

231005 올해 무슨 일 있어...? 아이패드도 골로 갔던 여름의 끝

 

어쩌다 보니 또 수중의 전자제품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게 됐다. 나조차 가뭄에 콩 나듯이 오는 블로그에 쓴다는 글이 또...ㅋㅋ

 

8월 말의 어느 날. 그날도 열심히 실내 사이클을 타고 있었다. 사이클이 뱃살 빼기에는 참 좋은데 문제는 너무 지루하다ㅠ 책이든 OTT 콘텐츠든 뭔가를 들여다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아야 겨우 하루 운동량을 채울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아이패드 미니2를 거의 매일 사이클 보드 위에 올려두고 미드를 보면서 운동을 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아이패드 화면.

 

 

 

이걸 보자마자 X됐다는 걸 직감했지.

 

 

전원을 껐다 켜 보기도 하고, 애플 고객지원팀에 SOS를 쳐 보기도 하고,

전자제품 고장나면 하는 국룰급 리액션인 아이패드 뒤통수 때리기도 시전해 보았는데 될 리가 있나.

애플 고객지원팀에서는 너무 오래된 물건(주: 아이패드 미니2는 2013년 10월에 세상에 나왔다; 나는 2014년 11월에 애플 공홈에서 구입)이라 수리비가 엄청날테니 차라리 그 돈으로 신제품을 사라고 권했다. 부품 구하기도 쉽지 않을 거라며.

LG 노트북 고장났을 때 LG 서비스센터에서 들은 말과 똑같아서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는데 애플 상담원의 말투가 진심으로 나를 안타까워(?)하는 듯한 분위기라 차마 육성으로 웃을 수가 없었다.

 

결국 급한 대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옆 동네에 있는 사설 수리점에 가져갔다.

수리점 사장님은 제법 친절했지만 "이걸 고칠 돈으로 차라리 당근마켓에서 미니2를 하나 더 구해라" "수리비가 당근마켓에서 중고 사는 돈보다 더 나올 것"이라는 처방(?)을 내놓으셔서 나를 좌절케 했다.

 

그 밖에 주변 도시의 사설 수리점 십수곳에 전화해서 수리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노트북 고장 때도 그랬지만 물건을 오래 쓰지 못하는 상황에 묘한 서글픔도 느껴지고 나 혼자 자본주의에 대해 굉장히 쓸데없는 저항을 하고 있다는 웃픈 자각도 들고...

 

또 아이패드 하나에 복잡한 감정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찾아) 느끼면서 며칠이 흘렀고

셀프 수리까지 생각했다가 수리 실패시 기회 비용이 꽤 크다는 것만 깨닫고 백스텝한 뒤 결국 당근마켓에 내 아이패드를 올렸다.

'디스플레이만 고치면 되는데 난 똥손이라 못 고친다. 심한 증상이 아니니 고쳐 쓰시든 부품용으로 쓰시든 누구든 가져가시라...'고.

 

솔직히 글 올리면서도 '누가 사겠어' 했는데 곧바로 '좋아요'가 막 눌리더니 10분도 안 되어서 구입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대강 이야기해 보니 이미 아이폰 여러 대를 고쳐 써 본 경험이 있는 대학생이었고

내 아이패드를 사다가 직접 고쳐서 영상 셔틀로 쓰고 싶어서 거래하겠다고 하더라고.

임시보호하는 동물을 입양 보내는 사람의 감정이 이런 건가ㅋㅋㅋ 오래된 물건이라고 해서 냅다 버리지 않고 계속 쓰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과 실제 수리 경험까지 알고 나니 금액을 떠나서 이 물건을 이 사람에게 보내고 싶어졌다.

그 잠시동안에 역시 짱구를 굴려서 '팔지 말고 수리를 의뢰할까' 하고 계산도 해 봤는데 대학생이라고 공임비를 후려치는 건 양심상 못할 짓이고 상대도 응할 리가 없고 결정적으로 수리에 실패하면 금방 싸해질 우리 둘 사이(모르는 사람이지만ㅋㅋ)가 마음에 걸려서 그냥 시원하게 팔기로 했다.

 

그렇게 첫 채팅 후 5분 만에 거래 결정.

 

 

 

여러 번 케이스에 끼우고 빼면서 모서리가 까진 흔적 몇몇 군데만 제외하면 내가 봐도 참 깨끗하다.

 

보내기 전에 DFU 초기화도 했는데 이건 네이버 블로그에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니 나는 설명은 스킵하고 사진만 올린다.

 

 

 

이거 하려고 존재도 잊고 있던 아이튠즈 프로그램까지 찾아서 깔았다... 이젠 애플에서도 아이튠즈 프로그램을 안 쓰는지 애플 공홈에 올라온 아이튠즈 프로그램 자체가 굉장히 오래된 버전이더라고.

 

간단히 저장 공간만 확보하려고 하는 포맷이 아니라 중고로 팔아서 완전한 타인이 쓸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니 DFU 초기화를 두 번 정도 해 주고 '모든 콘텐츠 및 설정 지우기'도 네다섯 번 정도를 반복했다. 어디서 주워 듣기로는 여러 번 해 줘야 확실히 밀린다고 해서...(는 찐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름)

 

 

 

마지막으로 '나의 찾기'에서 아이패드 미니도 확실하게 삭제하고 빠이빠이할 준비를 마쳤다.

 

 

 

초기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도 가는 그 순간까지도 멀쩡해지지 않았던 그...

 

대학원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는 지하철로 편도 두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을 논문이나 과제를 읽으며 보내려고 시도했는데 아무래도 인쇄해서 읽으면 눈이 편하지만 그것들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어깨는 너무 괴로웠다. 뭐 좋은 방법 없나, 고심하던 차에 애플에서 아이패드 미니2를 정가보다 훨씬 할인해서 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무렵 Touch ID가 탑재되는 미니3이 나오면서 직전 세대인 미니2를 염가 처분한다는 소식이었는데 마침 종이를 대체할 무언가를 찾던 내 필요에 딱 부합해서 냉큼 샀다. 아이폰 5S 이후로 생애 두 번째로 갖게 된 애플 제품이다.

 

 

 

어찌나 설렜는지 그때 받았던 배송 문자를 아직도 지우지 않고 있었다ㅋㅋㅋ

 

한동안 의도했던 대로 지하철에서 논문을 읽거나 과제를 수정하는 데 썼지만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귀신 같이 유튜브 셔틀이 되었던 내 아이패드 미니2.

4년 전 어느 스터디에 들고 갔더니 스터디원이 '노인 학대 하냐'고 놀람 반 놀림 반의 멘트를 날리기도 했는데

그때도 이미 구동 속도가 느려서 어플 하나 띄울 때마다 5~7초는 기다려야 했지만 그래도 이 물건에 밴 이런저런 기억 때문에 그런 말들에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내가 그만큼 물건을 오래 잘 쓰는 사람 같아서 자랑스러웠다.

 

다만 기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사람들의 기술적 수요를 충족하는 어플 같은 소프트웨어가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사이

내 아이패드는 최신 소프트웨어가 요구하는 하드웨어적 역량을 갖추지 못해 노인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 약간 포기(?)하는 심정이 되어 유튜브 셔틀로 쓰며 심지어 샤워할 때도 욕실에 들고 들어가는 게 생활화되다 보니

노인인 내 아이패드의 수명은 훅 깎였고 그게 화면이 흔들리는 현상으로 나타났을 터이다. 그러니 뭐... 아이패드를 당근으로 떠나 보내게 된 건 애플이나 아이패드가 아닌 내 책임이지ㅠㅠ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카페에서 구매자를 만나 당근 거래를 하는 순간까지도 미련을 못 버리고 질척(?)거렸다ㅋㅋㅋ 아 정말 잘 쓴 아이패드인데, 더 오래 잘 쓸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다행히 구매자가 인심이 좋아서 "혹시 수리에 성공하시면 후기 좀 보내주세요"라는 내 요청을 선선히 받아들였고

2만원에 깨끗한 아이패드(+내가 갖고 있던 액정 보호 필름 여분)를 득템해서 기분 좋아진 구매자를 떠나 보내며 그렇게 9년간 함께 한 아이패드와 작별했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나서 정말 구매자가 후기 사진을 보내줬다ㅋㅋㅋ

 

 

 

저렇게 뚜껑(?)을 여는 거였구만.

'이렇게 간단한 거였냐'며 허탈해 하는 나에게 구매자는 본인도 아이폰 여러 대를 망가뜨려 가면서 겨우 셀프 수리를 할 수 있게 됐고 디스플레이 교체가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나한테는 많이 힘들었을 거라며 친절하게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부활한 아이패드 미니2. 저 선명한 화질 보소...ㅠㅠ

 

갑작스러운 이상에 당황하고 당근으로 처분하면서 아쉽기 그지 없었던 물건인데

저렇게 멀쩡해져서 다시 제 쓰임새를 갖춘 걸 보니 이제는 비록 내 소유의 물건은 아니지만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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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이패드를 떠나보내고 그동안 영상 시청으로 시간을 낭비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서 이제 내 인생에 아이패드는 없...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유튜브 머신(?)에 길들여진 지 오래된 몸이라 OTT든 유튜브든 못 참겠더라고ㅋㅋㅋㅋㅋ

그래서 또 한참 당근마켓을 뒤져서 미개봉 아이패드 9세대를 찾아냈다.

최신형 or 플래그십 모델은 아니지만 미니2보다는 커진 화면과 짱짱한 소프트웨어 구동 능력을 실감하니 기분은 참 좋더라.

심지어 이걸로 책도 본다! 그리고 내 블투 헤드폰이랑도 연결이 돼!! 미니2로는 엄두도 못 내던 일들을 하면서 9년간의 추억은 무슨, 기억 저편으로 밀어놓고 잘 살고 있다ㅋㅋㅋㅋㅋㅋㅋ 이것도 한 10년 굴리고 빠이빠이해야지.

 

 

 

 

아무튼 이렇게 내 생에 소유했던 전자제품의 한 챕터가 마무리되고 또다른 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