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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170125 to 170201


여행 포토북을 만든 사진 위주로 업로드하였으며 모든 권리는 미 마이셀프 앤 아이, 오로지 나에게 있음.




Day 3

수학원 이궁 앞



셋째 날은 수학원 이궁(슈가쿠인 리큐)에 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예약제로만 입장과 관람이 운영되는 곳이라서 웬만해서는 방문 몇 달 전에 미리 예약해야 갈 수 있다는데 나는 1월, 한창 관광 비수기인 때여서 그런지 이틀 전에 예약했는데도 무난하게 초청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늦은 오전이나 이른 오후 같은 좋은 시간대는 이미 관람 인원이 차서 나는 제일 첫 시간에 갈 수 밖에 없었지만...




가와라마치에서 버스를 타고 40여분을 달려 슈가쿠인 리큐마에 정류장에 내렸고 그곳에서도 15분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수학원 이궁이 나온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길은 주택가 골목길이었는데 좁은 길을 하도 구불구불 들어가다 보니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도중에 어린아이 둘을 자전거 꽁무니에 달고 걸어가는 동네 젊은 여자에게 길을 물어보아야 했다.


이른 아침 공기가 차고 산뜻했다. 조용하고 깔끔한 동네여서 살기 좋겠다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별궁을 이런 곳에 지은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수백년 전에도 살기 좋은 동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먼저 도착했지만 아직 입장 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문 앞에서 20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안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팜플릿과 오디오 가이드를 나누어 주는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다. 강제 영어 청취.

잠시 대기하는 동안에는 수학원 이궁의 소개 영상을 틀어주는데 이건 온리 일어였다. 주위에서 알아듣고 오오~라며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조용히 있는 사람은 나 뿐인 걸 보니 나 혼자 외국인인 듯...












머리가 희끗희끗한 신사가 우리 일행을 인솔했다.

중절모를 쓰고 트렌치 코트를 입은 모습이 가이드라기 보다는 은퇴한 대학 교수가 소일거리로 나온 것 같다.



 


다만 그의 설명은 내가 알아듣기에는 너무 긴 일본어였다 (...)








#가이드샷1
















#가이드샷2



















#가이드샷3 









어쩌다 보니 이런 사진을 다섯 장이나...




수학원 이궁은 고미즈노오 상황이 왕위에서 물러나 왔다갔다 하며 노년을 즐긴 별궁이다.


일본 왕실의 계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수학원 이궁의 관리도 우리나라의 문화재청 같은 곳이 아니라 일본 왕실 소속의 궁내청이 맡고 있다. 그러니 우리 가이드도 그냥 가이드가 아니라 궁내청에서 나온 안내인인 셈이다.



지금 기억을 더듬자면 가장 아래쪽-중간-가장 위쪽 가옥을 보고 수학원 이궁의 하이라이트인 욕용지를 휘 둘러 걸어 내려오면서 관람이 끝났다. 여행 후에 다시 책을 읽어보니 가운데 '나카노 오차야'는 나중에 생겼고 처음 이궁이 세워질 때는 없었다고 한다 (p. 346,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 편 4, 교토의 명소]).


다닐 때는 이런 거 1도 생각이 안 나더라. 언덕 올라가는 게 은근히 힘들어서 왜 이런 곳에 별궁을 지었을까 그 생각만... 왕은 가마 타고 올라가니 상관없나?




푸른 수풀로 올라가는 길에 담을 세웠다.

담의 높이가 성인 남자 키만 해서 올라가는 도중에는 좌우는 물론이고 아래 풍경도 보이지 않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 올라와서 휙 돌아보니 수학원 이궁의 연못 욕용지가 한눈에 펼쳐졌다.

이 정도면 의도한 거겠지. 사람들 모두 카메라로 풍경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학원 이궁 꼭대기에 올라앉은 '인운정'은 가옥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것 없는 정자였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은퇴한 왕의 별장 정자 치고는 소박한 게 멋이라면 멋이랄까. 대신 가옥 그 자체보다도 그 창문에 턱 걸터앉아서 이곳 풍경을 내려다 보았을 생각을 하니 그 정자가 거기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만 겨울에는 상황도 오지 않았을 것 같다. 얇은 나무 벽과 바닥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발이 다 시렸다.




수학원 이궁은 사람들이 관람하는 동안에도 관리인들이 쓸고 다듬고 있었다. 바람 한 점이라도 금방 그 형태를 망쳐놓을까봐 노심초사하게 되는 은각사나 용안사 정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수학원 이궁의 정원도 곳곳에 사람의 손길이 부지런히 닿았을 것이 안 봐도 비디오였다. 꼭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은 푸른 이끼나, 잔가지 하나 삐져나온 것 없이 깔끔하게 이발한 나무만 봐도...


사람이 만든 것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감탄할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어쩐지 어색했다. 예쁘기야 예뻤다만. 게다가 이런 논밭 한가운데에 왕실의 별궁이 들어선 것도 뭔가 찜찜하다. 여기가 진짜 농민들의 논밭이면 제대로 보상은 해 줬을지 걱정이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한다면 속물일까? 그 논밭에서 실제로 작물을 키우는 듯 보여서 더 그랬다. 그 채소를 누가 가져다 먹을까도 은근히 궁금했고.


수학원 이궁 관람은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노인 뿐이었던 우리 관람조는 관람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다들 어딘가로 사라졌다.



후시미이나리에 영감을 받은 버스 기둥?


볼거리가 많은 교토이지만 문제는 그 볼거리들끼리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보통 동선을 미리 짜고 움직이는데 일주일 가까이 교토에만 머물 생각으로 온 나는 그날그날 내키는 대로 다니기로 하고 배짱좋게 금각사 가는 것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결국 중간에 어느 버스 터미널에 잘못 내려 한참 다른 버스를 기다렸지만.



사색.jpg




금각사에 오면서 날이 눈이 띄게 궂어졌다.


한적하다 못해 조용하니 다른 세상 같았던 수학원 이궁과는 달리 금각사는 입구부터 사람, 사람, 사람이었다.





금각사 연못가는 금각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부분 중국 사람이었다. 삿포로에서도 느꼈지만 일본에 중국인 정말 많다.




금각사 뒤편 길로 나오니 부적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살 만한 게 있을까 싶어 발꿈치를 들고 사람들 어깨 너머로 훔쳐 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금칠한 사찰에서 파는 부적은 왠지 영험할 것 같지도 않고.




뒤쪽은 완전히 관광지 먹자판이지만 그 와중에 신심(?)을 지키는 소녀들.


바람이 매섭게 불어 걷는 대신 버스를 타고 용안사로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점심 때가 지난 걸 알고 미리 알아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움직이기로.





우리나라 블로그에도 소개된 곳이고 트립어드바이저에서도 추천 식당으로 꼽힌 맛집이지만 외관은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어서 들어가도 되나 주저하다가 슬쩍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점심을 살짝 넘긴 탓인지 손님은 나 뿐이었다.


세차게 부는 찬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고 돌아다닌 티가 났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식당 주인이 히터를 끌어다 주고 따뜻한 호지차를 가져다 주었다. 메뉴판을 못 읽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대강 설명을 듣고 시킨 메뉴가 나올 때까지 차를 마시면서 몸을 녹였다.




식사는 상상 이상으로 맛있고 정갈했다.

일본 음식답게 기본 간은 조금 강해 내 입맛에는 짰지만, 굉장히 건강한데 굉장히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었다.

채식 식당이라지만 고기 하나 없는데도 싹싹 그릇을 비웠다.


식사 후 맛있었다, 특히 된장국이 너무 맛있다고 말을 걸었다가 주인 아주머니와 몇 마디를 더 주고 받았다. 주인이 일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냐고 묻기에 그냥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니 식당으로 마실 나와있던 동네 아주머니가 일본어 잘한다며 놀라워 했다. 음하하.



여행 온 지 3일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okarahouse




용안사 가는 길. 동네 자체가 호젓한 고급 주택가였다.




식당에서 용안사는 멀지 않았다. 걸어서 5분?


분명 이곳도 잘 알려진 곳일텐데 금각사에 비하면 사람이 없어 경건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카메라를 꺼내는 게 조심스러워서 보살님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부처상은 안 되지만 정원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교토에서 인상적인 곳 몇 군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 용안사 석정이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회색 모래와 이끼 낀 일고여덟 개의 작은 바위 뿐이지만, 법당 마루에 앉아 그 빈 공간을 응시하고 있으려니 도무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차갑고 삭막해야 당연할 풍경이지만 시선 바로 맞은편에 닿는 낡고 바랜 흙담 때문에 오래 되었다는 느낌은 줄지언정 스산하지는 않았다. 아무 것도 없지만 눈이 시리기는 커녕 그곳의 모든 것에 눈길이 갔던 용안사 석정. 등 뒤에서는 어느 한국인 무리가 바위가 딱 이만큼만 놓인 데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무래도 좋지만 들리는 소리라고는 카메라 셔터 소리일 뿐인 조용한 곳에서 그렇게 큰소리를 내니 더더욱 바위 개수가 무슨 상관인가 싶어 울컥 했다.



용안사 내 큰 연못, 경용지까지 휙 돌아서 나오니 늦은 오후가 되었다. 같은 방향에 있는 아라시야마까지 가기보다는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래된 가부키 극장 미나미자.


명절이나 생일에 해외에 혼자 나온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설 연휴는 조금 이상했다. 혼자 쓰는 숙소 방에서 일정을 마치고 뒹굴거리며 인터넷을 하다 보면 명절 특집 프로그램 기사나 SNS 소식 때문에 명절에 들뜬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나 혼자 여기 있으려니 놀러왔어도 기분이 묘하다고 할까. 기온 근처에 멍청하게 서 있으려니 문득 보고 싶던 건 다 본 것 같은데 그냥 집에 갈까,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내 돌 나오는 설 특집 방송 보고 싶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그나마 시내에서 가까이 있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에 가 보기로 했다.

늦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며 버스를 타려고 기온 산조까지 걸어가서 정류장에 서 있는데 버스가 오질 않았다.

결국 다시 가와라마치까지 걸어와서 버스를 탔다. 교토 버스 헬이다. 나는 바보 같고. 하하.




그런데 더 바보 같은 건 교토 해가 그렇게 빨리 떨어질 줄 몰랐다는 거다.


버스 타고 10분도 안 되었는데 벌써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더니 청수사 아래 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이미 6시 가까이 되어있었다. 청수사로 영차영차 올라가는 도중에 결국 "오늘의 관람은 끝"이라는 안내 방송이 언덕 위에서 울렸다. 입장 종료까지는 30분 정도 여유가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정보가 틀린 모양이었다. 결국 녹차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도로 터덜터덜 내려왔다. 밝을 때 다시 오고 만다, 내가.




기온상!




숙소 근처 피자 가게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라 점원 모두가 영어를 곧잘 하는 곳이었다. 내가 외국인인 걸 알자마자 영어로 주문을 받았는데 일어도 괜찮다고 하니 그 다음부터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폭풍 같은 일본어가 쏟아졌다.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보고 겨우 피자를 주문하고 났더니, 혼자 앉아있는 사이에 다시 돌아와서는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몇 년 전에 부산으로 먹자 여행 간 적이 있다고 웃는 얼굴이 유쾌해 보였다. 나도 안 가 본 부산을 두 번이나 다녀간 일본인과 나누는 이야기라니. 더군다나 시칠리아에서 온 이탈리아인이 피자를 굽는 가게에서.

혼자 바에 앉아 생맥주까지 시켰더니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미 어른이 되고도 한참 남은 나이지만, 기분이 그렇다고.





쓸데없지만 우연히 발견하고 기분 좋아져서 올리는 영상.


수학원 이궁 올라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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