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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여행 이틀째 되는 날 아침. 흐그극 이상한 소리를 냈다가 내 기지개 켜는 소리에 내가 빵 터진 기억이 난다. 유쾌한 아침이로다.


세상에, 누가 업어가는 줄도 모르고 푹 잤네. 집을 떠나기 전 밤샘한 데다 첫날 길지 않은 일정에도 죽어라 걸어 다녀서 피곤했나 보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 떨어진 걸 보면... 아, [프렌즈] 보다가 인중에 아이폰 떨어뜨렸지 참ㅋㅋㅋ 기지개를 켜고도 한참을 뒤척이다가 8시 반쯤 겨우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낮까지 뒹굴뒹굴하고 싶은데... 잠이 아쉽다.


호스텔 참 쾌적다. 침대 매트리스도 푹신하고 이불도 청결하고 무엇보다 조용했어. 이상하게 여행만 오면 프라이버시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쓰는 병이 또 도져서, 비즈니스 호텔이나 호스텔 싱글룸을 제쳐놓고 7인 도미토리를 예약했는데 저쪽 침대를 쓰는 사람들이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소리도 빤히 들릴 정도로 조용한 방이었다. 아침에도 일어나니 그새 다들 나가고 방에는 나 뿐이었다.


호스텔 호감도 상승에는 전날 밤 마주친 호스텔 스탭도 한 몫 했다. 공용 욕실에서 씻고 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호스텔 스탭과 딱 마주쳤다. 졸지에 외간 남자에게 민낯을 보이게 되어서 어맛 놀라라 고개를 홱 돌렸는데 이 남자 하는 말이 "앗, 미안합니다 ;) ". 여자의 예민함을 이해하는 멘트였다고 하면 꿈보다 해몽인가? 바로 자리를 피해줘서 여유롭게 물건을 챙겨서 방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가 않더란 말이지.


그런데 그 사람, 1층으로 내려오니 호스텔과 같은 건물을 쓰는 식당 '하루야'의 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먼저 "오하이요고자이마스 :) "라고 인사하길래 나도 얼떨결에 "구... 굿모닝"이라고 인사해 버렸네.

본의 아니게 인터내셔널(?)한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이 스탭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엄청 빠른 일본어로 뭐라고 하는데 내가 알아들을 턱이 있나. 영어로 말해주세요, 라고 부탁하니 영어로 말을 거는데 이건 더 못 알아 듣겠더라. 매너는 좋은데... 음... 옥토푸스라고 하는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문어를 찾지?


"옥토푸스? 타코?"라고 되물으니 스탭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몇 번 되물어서 알아낸 그의 말은 "Will you go to the university in October?"였다(...). 서로 멋쩍게 웃고 있는데 스탭이 먼저 "ㅋㅋㅋ제가 영어를 못해요"라고 말했다. 솔직하네.

 

대체 이 청년이 무슨 말을 했는고 하니, 이 호스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홋카이도 대학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10월부터 그 대학에 다니는 중국인 학생들이 이 호스텔에 묵는데 이 사람은 나도 그 유학생 중 하나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침 일찍 방을 알아본다고 나갔는데 나는 9시를 한참 넘겨서 내려오니 내 정체가 궁금했던 것. 내가 그냥 관광객이고 다음날 떠날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는 내 지각(?)을 이해한 듯 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웃고 나오려는데 뭐 하나 궁금한 게 발목을 탁 잡았다. "홋카이도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해요?"



예정에는 없는 일이었다.

대학 캠퍼스라면 지난 몇 년간 신물나게 봤고 

홋카이도 대학에 숨겨둔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왠지 대학에 가 보고 싶어졌다.

어떠려나, 이국의 대학은.


스탭이 문 밖까지 따라나와서 알려준 방향으로 걸었다. 

넉넉잡아 걸어서 10분이면 나온다고, 지도도 필요없다고 했다. 

그래, 친절한 당신의 말을 믿어 보지, 뭐.


랜덤 재생으로 돌려둔 아이폰에서는

스핏츠의 [Cherry]가 흘러나왔다.

뭐지, 이 상큼한 시작은ㅋㅋㅋ 




 

스탭의 말이 맞았다.

된 하루를 보낸 다음날이라 오늘은 무리하지 말자며

천천히 걸었는데도 10분도 안 걸렸다.

오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착한 사람.


캠퍼스에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자전거를 탔다. 걸어서 가는 사람은 나 뿐이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서 자전거를 많이들 탄다고 하더니...


그러고 보니 우리도 그렇게 싼 편은 아니다.

나만 해도 수년간 교통비로 달마다 기본 10만원은 썼으니.

나야 자전거를 타고 통학할 거리가 아니라 지하철 타고 다녔지만.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자전거 타고 다니라고 했으면 둘 중 하나다.

허벅지 굵기로 기네스북 올라갔거나(가문의 영광?)

한강에 자전거 집어 던졌거나.


 

아침 홋카이도 대학은 참 여유로웠다.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 옆구리에 책을 끼고 어디론가 가는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수님... 언제 어느 대학을 방문하든 캠퍼스는 이런 여유와 젊음과 낭만과 고민이 있어 늘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대학 교수님들은 실제 연령이나 외모와는 상관없이 웃음만은 싱그러운 분이 대부분이었다. 항상 당신 또래보다 꽤 어려 보이신다고 할까 (양심상 '청춘처럼 보였다'는 표현은 못 쓰겠다ㅋㅋㅋ). 웃는 순간만큼은 유독 젊어 보이는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본 내 결론은, 아무래도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자의 특권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 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좋고 나쁜 자극을 받으니 누군들 젊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중년에 접어든 지 한참이 되었어도 여전히 말갛게 웃으시는 내 은사님들과, 홋카이도 대학 교정을 씩씩하게 걸어가시는 이곳 교수님들을 보고 있자니 수십년이 지나도 언제나 세상을 궁금해 하고 배움을 갈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영원히 젊을 수 있다는 것은 학자의 특권 아닌 특권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뜻하지 않게 한국의 선생님들과 일본 교수님들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지만, 그런가 하면 두 나라 학생들 사이의 차이도 보였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참 많이들 뛰는 홋카이도대 학생들. 남녀 가리지 않고 운동복을 입고 혼자 뛰는 학생들도 종종 보였고, 구호 맞춰 뛰는 운동부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출현했다. 이렇다 자랑할 운동부가 없는 학교를 다니기도 했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캠퍼스를 부지런히 뛰면서 건강을 챙기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확실히 생소했다.

그래서 그럴까요, 내 앞에서 걷던 남학생의 등짝이 유난히 떡 벌어져서 멋있어 보였던 건...?

아, 그리고 의외로 담배 피우는 사람이 별로 없던데. 일본은 흡연 왕국 아니었나. 전날 내가 본 길빵만 해도 헤아릴 수가 없는데ㅋㅋㅋ 내가 못 본 건지.



홋카이도대 어디선가 본 자전거 집합소.

이렇게 많은 자전거를 한꺼번에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앞에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가 대부분이었다. 그 소박함을 보면서 느낀 건 아, 정말 많이들 타고 다니는구나라는 것.

자전거가 특별한 레저 취미가 아니라 그냥 일상 속 교통수단 중 하나라는 느낌?

따로 운동 안 해도 될텐데 조깅도 열심히 하고... 의외로 이게 일본의 장수 비결일지도...라는 망상을 해 보았습니다.

 



홋카이도 대학을 돌아다니다 보니 수염 덥수룩한 서양인의 얼굴이 교정 곳곳에 박힌 게 간간히 눈에 띄었다. 이곳 대학의 설립자인 윌리엄 클라크 박사라고. 1876년 삿포로 농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 학교가 홋카이도대의 전신이 되면서 홋카이도 대학의 설립자로 알려졌다. 정작 삿포로에 머문 건 여덟 달 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학교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는 걸 보면 학교 설립부터 학교 정신 정립까지, 곳곳에 미친 영향력이 대단한 듯 했다.


19세기 중엽이면 구미 열강국 출신의 학자나 선교사가 동아시아에 와서 개화 작업에 참여하며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 나라의 역사에 어떤 자취를 남긴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특히 클라크 박사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홋카이도와 삿포로의 역사를 아는 작업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농학을 연구하던 클라크는 홋카이도 도지사의 요청을 받아 1876년 삿포로 농업 대학의 설립에 참여하기 위해 삿포로에 왔다. 하고 많은 학문 중 당시 일본 메이지 일왕 정부가 삿포로에서 농대를 설립한 것은 사농공상도 전수받은 일본?! 당시 척박한 황무지였던 홋카이도를 비옥한 근대 농업과 식품 가공업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일본 정부의 영향력 밖에 있었던 홋카이도는 사실상 이즈음부터 개척을 위한 인적, 학문적 인프라가 닦이면서 일본 근대사에 들어오기 시작한 셈이다. 원주민인 아이누 족 입장에서 보면 메이지 정부의 홋카이도 진출은 개척이나 개화가 아니라 침략이겠지만. 어디서많이들어본레파토리다? 오늘날 홋카이도 대학이 농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또 홋카이도가 우유와 치즈 그리고 초콜릿, 삿포로 맥주 같은 식품 가공과 낙농업에 의지하는 것을 보면 결국 클라크 박사와 삿포로 농대의 인연은 홋카이도 개척사와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이 모든 건 '이 사람, 대체 여기서 어떤 일을 했길래 이 정도로 기억되고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도져서 원데이 로밍 패스를 또 한 번 낭비하며 검색해 낸 사실이다. 나는 절대 박식하지 않다. 크헝ㅠㅠ

그나저나 홋카이도가 지금 모습을 갖춘 게 겨우 백년여 밖에 안 됐다니. 인문 기행이 될 리가 없네. 시간의 켜가 쌓인 그런 여행은 좀 어려울 듯 하고, 다만 지금을 사는 삿포로 사람들을 보려면 홋카이도 대학이나 삿포로 시내로 나가보는 것도 마냥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내가 다녔던 대학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홋카이도 대학에서 두어 번 더 길을 잃고 겨우 빠져 나왔다. 그 사이에 벌써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아침식사도 안 해서 더 배가 고프네. 점심은 일본 가면 꼭 먹어보라고 다들 추천하는 모스버거로 해결하기 위해 일단 삿포로 역 근처 번화가로 가기로 했다.





삿포로 역 근처 요도바시 카메라 센터.

히라가나 가타카나가 왠지 요란스러워 보인다고 하면 실례인가.

가만 보면 일본은 홍보 판넬이나 현수막 등을 '문자' 중심으로 꾸미는 듯 하다.


 



가는 길에 홋카이도 옛 도청 청사를 지나치게 되어 들러봤다. 빨간 벽이 인상적인 서양식 건물이었다. 그러고 보면 전날 오타루의 건물도 그렇고, 삿포로에서 조금 오래 됐다 싶은 건물은 전부 [빨간머리 앤]에나 나올 법한 양식이다 (시계탑은 캐나다 어딘가의 시계탑을, 아카렌가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의회 의사당을 모델로 지었다고 한다. 매사추세츠커넥션?). 일본인들이 아무리 서양 스타일 추종자이기로서니 왜 이리 서양식 건물이 많을까(하기사 그렇게 따지면 혜화동 동사무소 직원들 뺀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전부 서양 빠돌이 빠순이겠다), 궁금했다.


여행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 문득 그 궁금했던 게 생각나서 답을 찾던 중 읽은 어떤 여행 칼럼의 설명은 이랬다. 북방 개척을 지휘했던 메이지 정부 자체가 서양식을 추구하는 문명개화론에 기반을 둔 데다, 당시 개혁 작업에 참여했던 서양인 학자나 건축가들의 영향을 받아 아예 (사실상 신도시, 계획도시인) 홋카이도 내 정부 청사는 전부 서양식으로 지었고 도시 계획도 서양식을 따랐다나.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납득할 만 했다. 클라크 박사도 삿포로의 도시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니까. 


그런데 그 칼럼은 한 발 더 나아가 당시 홋카이도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의 식문화를 동경해 그들이 먹는 디저트를 따라 만들다 보니 오타루의 키타카로나 르타오처럼 유명한 초콜릿이나 케이크 전문점이 생겼다는 글까지 실었다. 흥미롭기도 하고, 요즘 빠띠제히 지망생들은 유럽보다 일본으로 많이 유학 간다는 말도 들어서 아주 근거없는 말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경' 같은 애매한 개념보다는 차라리 홋카이도가 낙농업이 발달해 어떻게 먹고 살까 궁리하다가 초콜릿과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다른 기사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러나 저러나 홋카이도에 19세기 중엽~말의 서구 국가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건 사실이고.


참, 이런 걸 보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서구화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나라인 것 같아. 사람이나 역사는 여러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다지만 일본은 그 양극단이 가장 격렬하게 나타나는 곳이라고 할까, 나에게는 그런 인상이 강하다. 재미있는 동네야, 아무튼.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오도리 공원에서 옥토버 페스트가 열린다는 홍보 판넬을 본 것이었다. 삿포로 시내를 길게 가로지르는 오도리 공원에서는 마침 9월 가을 축제를 열고 있었는데 그 중 뮌헨 옥토버 페스트를 본따 독일 맥주를 판다나. 내가 유럽에 있을 때도 못 가 본 독일을 삿포로에서 느껴 보겠네ㅋㅋㅋ



아무튼 삿포로 시내 탐방기 1은 여기서 마무리. 별 거 없는데 의외로 말이 길어졌다.



삿포로에서 삿포로 맥주를 찾아나선 나의 여정은 つづ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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