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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asking me how a watch works. For now, just keep an eye on the time.

시계 작동 원리는 묻지 말고 그냥 시계 바늘이나 잘 보고 있어요.


* 개인적으로 정말 번역 잘했다고 느낀 부분이다. 역시 영화 번역은 황석희!



이 영화는, 너무나 구조적으로 짜여지고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범죄는 공포 그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이 되었고, 촘촘하고 깊숙이 사회에 파고든 그 범죄를 소탕하는 사람 역시 얼마나 혼란스럽고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정의가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이 오히려 끝없는 딜레마에 빠져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까놓고 말해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의 또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FBI 요원 케이트가 CIA 요원 맷(조쉬 브롤린 분)과 만나면서 시작된다.





1. 주인공 케이트 메이서는 FBI 요원이다. 그녀와 그녀가 속한 조직은 철저하게 법에 따라 움직인다. 케이트의 상사는 현장 상황을 법무부에 보고하고, 케이트는 카르텔의 자금줄을 틀어쥐자마자 이걸로 카르텔 중간 보스를 검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아레즈에서 호송 작전 도중에 벌어진 총격전에 대해 케이트는 "민간인이 있는데 그딴 짓을 해요?"라고 맷에게 항의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법 집행자이다.





애석하지만 정상적이고 정의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기에 케이트는 맷이 이끄는 작전을 이해할 수 없었고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애초에 정보 입수부터 작전 실행까지, 전권은 오롯이 맷의 것이기도 했지만, 케이트가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야기의 양상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영화는 정치극, 첩보극이 됐겠지). 그러나 이 작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잡기 위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그 안에서 그녀는 어떤 역할을 하면 되는지 아무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케이트는 맷의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을 지지하고 눈치껏 한 역할을 맡기보다는 그저 지시에 따르기는 하되 영문도 모르고 혼돈과 싸울 뿐이다. 그러다 보니 케이트가 하는 거라고는 부분부분 작전에 끼어들 시도를 하다가, 괜히 카르텔에 얼굴이 밝혀져서 부패 경찰한테 살해당할 뻔 하는 것 정도이다.


케이트 개인이 특별히 정의감이 강하기 때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는 오랫동안 이성 관계에 무관심한 나머지 속옷도 손에 잡히는 대로 입는 사람이라는 것 뿐이다. 그러나 케이트가 지금까지 일해 온 방식,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그 방식은 조직이 바뀐 상황에서도 케이트의 행동 방식이 되었고, 그것이 오롯이 케이트가 되어 그 비정상적인 세계에 동화되지 않게 한 것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비정상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공통적인 인간 감정일 수도. 어쨌든 케이트는 후아레즈에서 시신을 보고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동요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무튼, 이게 '당연'한 행동 방식이라는 거다. 법 무시하고 살려면 사람들은 뭐 하러 법을 만들고 일반인과 범죄자를 나눈대?! 다만 케이트가 접한 맷과 알레한드로의 세계는 케이트의 생각은 통하는데 행동 방식은 무시되는, 정상과 비정상이 혼재하는 곳이었다.





정의와 원칙을 이야기하는 케이트는 맷과 그 동료들에게는 한낱 순진한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총격전에 나선 특수대원이 케이트에게 총에 안전장치 걸고 얌전히 따라오라고 반 협박처럼 이야기하겠냐고. 일단 이 여자도 FBI인데, 자존심 상하게시리. 지금 이렇게 무장하면서도 누굴 잡으러 땅굴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케이트는 '내 팀원들'을 쏘는 사고를 칠 것 같은 그런 불안한 존재에 불과하다.






2. 능력을 인정받는 FBI 요원이니 케이트도 분명 똑똑하고 강단있는 사람일진대, 그런 그녀를 단번에 애송이 하룻강아지로 만들어 보이는 맷은 대체 누구인가.

비록 FBI 간부들과의 회의에 티셔츠에 쓰레빠 바람으로 나왔지만, 그를 단순히 능글맞은 아저씨로 봐서는 곤란하다. 맷은 소노라 카르텔의 정체 모를 보스를 잡고자 카르텔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고, 말 몇 마디로 부패 경찰이 술술 정보를 불게 한다. 영화 후반부의 땅굴 작전에서는 무장한 채 앞장서는 인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는 모든 판을 직접 짜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맷이 케이트와 대척점을 이루는 건 카르텔 소탕 작전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다. 그는 후아레즈에서의 총격전의 불법성을 따지는 케이트를 "저놈들 방치하면 후아레즈 꼴 나"라며 일갈한다. 케이트는 카르텔의 자금을 압수했으니 중간 보스를 검거해야 한다고 하지만 맷은 중간 보스가 제발로 카르텔의 끝판왕을 만나러 가게 해야 하니 검거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멕시코에서는 관할권이 없다는 그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같은 사건, 같은 작전을 대하면서도 그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맷은 케이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원칙을 말하는 케이트보다 현실적이고 과감하다.


문제는,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가이다. 당연한 말을 하고 상식적으로 움직이는 케이트가 옳은지, 원칙 따위 어기라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면서도 결과를 내는 맷이 옳은지. 일견 케이트의 편을 들어야겠지만 카르텔을 효율적으로 때려잡고 있는 맷의 논리("저놈들 방치하면 후아레즈 꼴 나"라니... 두려움을 단번에 자극해 무언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말 아닌가)가 훨씬 설득력 있다. 결국 관객은 머리로는 케이트를 따라가지만 가슴으로는 맷의 행동을 용인하는 괴리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간극 사이에 알레한드로가 있다.






3. 엘 패소로 간다는 맷의 말에 속아(?) 탄 전용기 안에서 케이트와 처음 만난 알레한드로는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뭔가 알려달라는 케이트에게는 "시계 바늘이나 잘 보고 있어요"라고 대꾸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스럽다.

알레한드로는 원래 검사였지만 카르텔이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이후 스스로 비정상과 불법의 영역으로 들어가 늑대가 된 사람이다. 가족을 잃기 전이라면 법 집행자로서 케이트와 똑같이 행동했을지 모르나, 알레한드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카르텔의 악행 이후 정의보다는 복수, 법보다는 폭력이 우선이 되어 맷이 짠 판에서 일종의 행동대장이 되어 비밀스럽게 움직인다.





케이트에게서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면서 희미하게나마 인간적인 면모를 비추기도 하지만 CIA와 손 잡고 카르텔 보스와 그 가족을 죽이고 복수를 완성하는 그는, 똑같은 비극을 겪었을 때 케이트에게 놓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이다. 정의와 원칙의 허약함을 깨닫고 보다 강하고 효율적인 폭력을 택한 사람. 다시 말해, 어쩌면 케이트의 미래일 수 있는 삶인 것이다.





4. 케이트는 맷과 알레한드로를 만나 비정상적인 세계, 후아레즈를 접하고 혼란 속에 남겨진다. 케이트의 상사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기고 있나? (Getting the vibe that we're winning?)"라는 말로 맷의 행동을 비난하는 케이트의 입을 다물게 한다. 법이 허락하는 선에서 원칙을 지켜가며 싸운 우리 방식이 틀렸다며, 사실상 맷의 상식 밖 행동을 용인하는 세상을 보고 케이트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에 맷의 작전(=알레한드로의 복수)은 끝을 맺고, 알레한드로는 그녀를 찾아온다.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에게 작전이 모두 절차를 제대로 거쳐 합법적으로 수행되었다는 확인 서류에 서명하기를 요구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의에 반하는 현실을 목도한 케이트는 이를 거부하지만 "자살을 당할 수도 있어 (You would be committing suicide)"라고 으르며 총구를 들이대는 알레한드로를 못 이기고 끝내 사인한다. 밖으로 걸어나간 알레한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만 이내 눈물을 터뜨리며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총을 내린다.


남은 건 혼란 속에 남겨진 케이트와, 그녀에 자신을 동일시할 수 밖에 없는 관객 뿐이다. 케이트가 나름대로 애쓰는 와중에도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고, '그녀의 정의와 원칙'은 결과 앞에 무너졌다. 마약과 카르텔이라는 악을 잡기 위해 국가 정부가 내세우는 정의를 이제 케이트와 관객은 어떤 심경으로 보고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을 못할 수도 있겠다. 두 시간 내내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와 묵직한 음악으로 영화가 관객의 멱살을 단단히 쥐어잡고 흔들어 정신이 없을테니.




p.s.1. 여담이지만, 영화 속 베니치오 델 토로가 너무 멋있어서 코피 터질 뻔 했다. 전형적인 미남도 아니고 몸매가 훌륭한 것도 아닌데 눈빛과 카리스마만으로 압도하는 느낌이... 워후. 한때 '보급형 브래드 피트'라고 불렸던 아저씨인데 브래드 피트는 무슨. 이 아저씨가 훨씬 멋있다.




p.s.2. [시카리오]는 올해 오스카에서 촬영상, 음악상, 음향편집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비록 [캐롤]의 다관왕을 염원하기는 했어도(특히 여우주조연상ㅠㅠ) [시카리오]가 상 하나는 받아가겠거니, 특히 음악상은 무조건 가져가겠거니 했는데 모리꼬네 할아버지가 생애 첫 아카데미를 가져가시는 바람에 [시카리오]의 수상은 물 건너갔다. 하필 경쟁자로 [매드맥스], [헤이트풀8], [레버넌트]를 만날 게 뭐람. 특히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는 세 번인가 물 먹었다는데. 대체 어느 정도로 뛰어나길래 [시카리오]가 무관에 그쳤는지, 궁금해서라도 저 세 영화를 봐야 하나, 그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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