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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Voyage/외출 #excursion

[29시간 고베 여행] #Ep2 고베의 낮

From 171214 to 171215

 

이 글과 사진의 모든 권리는 미 마이셀프 앤 아이, 오로지 나에게 있음

 

 

신발 굽 떨어지기 약 3시간 30분 전

 

2017년에는 몸이 조금 편해졌다. 인수인계다운 인수인계도 받지 못하고 바로 일을 시작한 그 전해에 비하면 천국이었지. 2년에 걸쳐서 할 일을 8개월간 몰아서 하느라 녹초가 되곤 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지나니 일이 몸에 뱄다.

 

그 덕에 어려운 일도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도 거의 기계적으로 척척 해 냈지만, 몸이 조금 편해졌을 뿐 시간은 부족했고 마음은 더욱 불편해졌다. 여전히 일이 많아 피로가 차곡차곡 쌓였고(오죽하면 프로그램 하나 끝냈다고 바로 그 다음날 귀가 안 들렸겠냐고), 선임은 변함없이 갈궈댔으며(개쉑...) 미래는 불확실했다. 모든 상황을 돌아볼 여유 없이 한 해가 지났고, 12월에야 겨우 2017년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길지 않은 휴가였지만 연초 여행했던 교토와 고베로 돌아가 그때와 똑같이 마음에 휴식을 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고베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지난 교토 여행의 덤이었던 고베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없는데... 아무 정보 없이 두세 시간 남짓 머물렀던 게 아쉬웠던 것 같다. 생각보다 정돈된 것 같아 호감을 주었던 고베, 하루라도 제대로 둘러봐야지 다짐했는데 이 여행에서 다짐을 실천하기로 하고 날아갔다.

 

슥슥 입국 신고서를 쓰니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어떻게 쓰는 거냐며 말을 걸어오셨다. 신고서 적는 법이나 기초 회화를 알려드리며 아주머니의 이야기도 들었다. TMI가 다소 많았지만... 친구 분과 함께 각각 자녀들을 데리고 디즈니랜드에도 가신다는데 아주머니 본인이 더 들떠보였다.

 

 

 

페리 티켓을 사서 셔틀버스 타러 가는 길

 

일본이 우리나라보다는 좀더 따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마에 찬바람이 닿는 걸 보니 역시 겨울은 겨울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5분 정도 달려 고베 공항행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뜻밖의 대참사를 겪었다.

 

 

 

 

 

셔틀버스 발판을 밟고 내려가던 중 비틀, 몸 뒤축이 흔들리면서 오른쪽 발목이 살짝 꺾였다.

발 밑이 미끄러워 내려다 보니...  할말하않   https://obsessedwithrecord.tistory.com/423

 

 

 

 

 

신발을 새로 사야 하나, 고칠 방법은 없을까? 그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에 고베 공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또 5분여를 걸어 공항 청사에 들어가 산노미야로 가는 전철로 환승했다. 거기서 또 숙소가 있는 나다 역까지 JR로 움직이기. 한 시간 정도 움직이는데 3번 환승에 1300엔 넘게 썼다. 싸다고 해서 선택한 건데 엄청 환승한 것 치고는 비싼데...? 심란하니까 별 게 다 마음에 걸렸다. 이 비효율적인 동선은 결국 숙소에서 리무진을 권유받았을 때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유였다.

 

여차저차 숙소 도착. 혼자 게스트하우스를 지키고 있던 여성 스탭이 반겨주었다. 이국적인 외모여서 속으로 '영어 잘할 것 같은데...'라는 근거 없는 짐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도움으로 체크인하고 혼자 방에서 짐을 풀고 이것저것 챙겨서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집에서부터 입고 온 두툼한 아우터는 그대로 입고 나갔다. 목덜미에는 식은땀이 맺혀있어 배로 으슬으슬 떨렸다. 그럴 만도 하지. 간사이 공항에서 출입국 직원이 "이게 3박 4일 짐이라니"라고 괜히 짐 주인 민망하게 하는 독백을 할 정도로 가득 채워온 24인치 캐리어를, 굽이 빠져 걸을 때마다 덜그럭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끌고 왔으니... 한국보다 따뜻할 줄 알고 왔다고 칭얼대니 스탭이 웃으면서 "생각보다 춥지?"라고 말했다. 덕분에 '생각보다(오못따요리)'라는 일본어를 배웠다ㅋㅋ

 

 

 

 

스탭이 알려준 구두 수선점으로 향하며

 

여차저차 신발을 고치고 고베 도심부, 모토마치로 향했다. 깔끔해 보여서 고베를 선택했지만 역시 도심은 도심인가봐. 사람이 많아서 정신 없고 길고 긴 상가에는 꼭 지저분한 구석이 있었다. 신발을 고치느라 시간도 허비했겠다, 힘들고 지쳐 더 둘러볼 의욕을 잃어버리고 밥부터 먹으러 갔다.

 

 

 

 

아이고 지친다 지쳐

 

아침 비행기 타느라 인천공항에서 간단히 샌드위치 먹고, 신발 고치느라 점심 건너뛰었더니 오후 4시 가까워져서야 겨우 첫 식사를 했다. 아점(?)은 블로그에서 유명한 고베 레드락 스테이크에서. 사실 제대로 된 고베규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고 그럴 여유도 됐지만 한창 돈 모으는 재미에 살던 시절이라 본의 아니게 짠내투어를 했다. 그리고 사실 차이나타운에서 만두도 좀 먹고 싶었고.

 

 

 

 

 

고베 레드락 모토마치점

兵庫県神戸市中央区北長狭通3-3-5泰隆ビル 2F

효고 현 고베시 츄오구 키타나가 사도오리 3-3-5 야스타카 빌딩 2층

 

 

 

 

 

 

 

 

 

 

 

 

묘하게 볼 게 없었던 차이나타운

넌 나에게 실망을 줬어

 

 

 

 

 

 

 

 

 

 

 

 

 

 

 

 

가게에서 나와 바로 난킨마치로 갔다. 지난 여행에서 못 먹어서 아쉬웠던 차이나타운 만두를 먹으러. 그러고 보니 차이나타운은 생전 처음이었다. '차이나'타운이라 사자 탈 뒤집어 쓴 사람들이 공연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는데, 내가 생각한 중국 버전 대학로가 아니라 중식 먹거리 골목 같았다. 길 양쪽으로 중국 음식점이 죽 늘어서서 관광객을 맞았다. 귀엽게 빚은 갖가지 동물 모양의 만두도 있고 달고나 이상으로 달아보이는 과자들도 잔뜩 쌓여있고 상인들은 중국어 억양이 진한 일본어로 손님을 불렀다. 배불러서인가, 만두 생각도 나지 않고 바로 단번에 집어들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처음 와 보는 차이나타운의 낯선 풍경에 그제야 이곳이 외국임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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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 외 I : 나는 왜 뒤늦게 이 글을 쓰는가 ]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내킬 때만 글을 올리고 그나마도 완결한 글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무려 2년째 똑같은 블로그 첫 화면을 보고 있다. 정작 중요한 글은 시간이 촉박한데도 영 쓰고 싶지 않아서 무슨 딴짓을 하고서 과제를 할까 생각하면서 블로그에 들어왔더니 갑자기 그 파도 사진이 민망해졌다.

 

첫 화면도 좀 바꿔볼 겸, 고베에서 구두 굽이 떨어진 그날과 그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단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겨보기로 했다. 특별한 기억도 없는 첫날 여행, 그나마도 구체적인 기억은 다 날아갔지만 후술할 일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되었다. 그것이 이 시국에도 글을 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