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록: Voyage/외출 #excursion

['17 서울야행] #Ep1 미드나잇 인 서울(?)


2017년 4월 어느 날, 주말을 끼고 서울 고궁을 돌아보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놀아볼까, 어디에서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였다. 난 고궁 가는 게 너무 좋아. 그러다가 한 군데만 가는 건 좀 아쉬워졌다. 종로랑 집이 멀진 않지만 왔다갔다 하기 귀찮아서 아예 서울에 숙소까지 잡아놓고 두 군데 정도 돌아보기로 했다. 얼떨결에 익숙한 곳을 가출까지 해 가면서 여행하게 되었다. 일단은 한 번도 안 가 본 창경궁부터! 출근길에 꾸려온 1박 2일치 배낭을 둘러메고 서울 나들이를 시작했다.




서울 고궁의 매력이라면 역시 도심 한가운데서 감상하는 옛스러운 멋이라고나 할까.

저멀리 보이는 현대식 건물과 단청이 한샷에 보이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번 여행 사진에는 한두장씩은 필터를 끼워보았다. 서울이 그다지 포토제닉하지는 않은데 서울의 멋을 깔끔하게 담아내기에는 내가 너무 똥손이라... 근데 필터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서울 풍경. 인스타 갬성...☆


4월 어느 봄밤, 라이트업된 고궁이라...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연인들이 많이 있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특이했던 건 고궁에 함께 온 직장인 무리가 많았다는 것. 매표소에서 실물 티켓을 뽑으려고 줄을 서다가 엿들은 직장인들의 대화가 한둘이 아니었다. 회식 대신 왔다는데, 상당히 낭만적인 문화 같아 조금 부러워졌다. 술이 아닌 고궁 야행을 다함께 즐기러 온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다.




이날은 카메라 뭘 잘못 만졌는지... 1일차 사진은 하나같이 빛을 질질 끈다ㅠㅠ




손떨방이 시급하다...




궁 안에는 건물 주변 라이트업과 몇몇 조명만 빼면 빛이 없었다. 조명 하나하나의 조도가 얼마나 높은지 보통 눈부심이 아니었다.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지만 눈으로 보는 건물은 예뻤으니 됐어. 한편으로는 전기가 없던 시대에는 얼마나 깜깜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전기와 전구가 이래서 희대의 발명인 거구나.




내 모니터로는 한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왕 세로로 찍어서 잘 나온 건 길쭉하게 올려야지. 시원~하게.

파랗게 저물어 가는 하늘과 초록 단청, 노란 조명이 잘 어울렸다.




이것도.




올리면 올릴수록 내가 똥손이라는 게 너무 실감되어서 슬프다... 창경궁 정말 예쁜 곳인데.

여러분 고궁 자주 가세요!




명정전 앞을 떠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았다. 건물이 많지 않네... 궁 창건 당시의 건물들은 이래저래 시간이 지나며 훼손되거나 무너진 탓일 거다. 우리 역사에서 궁이 전소되는 전란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전쟁까지 터졌으니까, 뭐. 살아남는 게 중요한 시기에 문화재까지 미처 신경쓰지 못한 걸 탓할 수는 없다. 이제라도 꾸준히 궁 복원에 힘쓰고 있어야 하니 마음을 놓아야 하나? 당장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단순히 문화재 복원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우리 문화 정체성과도 연관된 문제이고 관광 자원을 더욱 풍성하게 가꿔가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니까. 아 갑자기 숭례문 불 타던 모습이 생각나서 화가 나네. 복원 노력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눈에 띄어 다가가 보았다. 전통 악기로 연주회가 열린다고 한다. 무대 앞에 놓은 의자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찼고 건물 주변 나무 밑에도 사람들이 걸터앉아 있었다. 이렇게라도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다들 서 있는데, 아니... 창경궁이 연주 맛집이었나? 발 디딜 틈이 없어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겨우 나무 아래에 발 한쪽 들이밀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사람 엄청 많아.




FNL

(Friday Night Live) from Seoul




연주를 들은 후에는 궁 안쪽으로 더 들어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길을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조명에는 청사초롱을 씌워두었다. 사람이 많아 몰입하기는 힘들지만 봄밤에 이런 길을 걷는 나 자신에 취해본다...☆ 그렇지만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너무 어두워서 넘어질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예민한 망상자.


아, 그런데 너무 금방 지치네. 창경궁에 오기 직전까지 열일하고 와서 그런가. 그래도 볼 건 다 본 것 같으니 창경궁 야행에 취한 건 이 정도로 하고 숙소로 후퇴해야지. 서울 숙소는 평소 묵어보고 싶던 한옥으로 예약했다. 북촌과 서촌에 빽빽히 들어서 있는 한옥은 20세기 초에 지은 개량 한옥이 많아 정말 옛~날의 멋을 기대하기는 조금 힘들다. 인구 밀도가 높은 만큼 각 집의 규모도 크지는 않지만 나는 넓은 방보다는 조금 답답할 정도로 오밀조밀하고 소박한 공간에서 마음이 더 편해진다. 그리고 어쨌든 20세기 초도 21세기 사람인 나한테는 옛날이잖아?



  


블로그 서치 끝에 찾은 숙소는 서촌에 위치한 나그네하우스.


하지만 막상 찾아간 숙소는 내가 생각한 개량한옥에서도 더 개량(?)된 곳이었다. 사실상 기와와 건물 틀만 한옥인 듯... 그렇지만 오밀조밀한 건 여전해서 마음에 들었다. 깔끔하기도 하고. 게다가 광화문 대로와 가깝지만, 대로에서 딱 한 골목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있는 곳이라 시내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아늑했다. 게다가 모든 객실이 프라이빗으로 운영되어 하룻밤만 한옥을 감상하면서 푹 쉬고 싶은 나에게는 딱이었다.




흔히 떠올리는 한옥과는 조금 이미지가 다르긴 하지...?




방에 짐을 풀고 잠자리에도 누워보고 뒹굴거렸다. 그러다가 참, 밥 안 먹었지, 저녁 먹으러 가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때가 벌써 오후 9시였던가...




숙소 근처 서촌 먹자골목은 걷는 것만으로 오래된 서울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늦은 금요일 밤을 보내는 사람들로 왁자한 골목을 걷는 건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꽤 발품을 팔아도 혼자 늦은 저녁식사를 해결할 곳은 없어 보였다. 내가 아무리 혼여 혼밥에 익숙해도 술 마시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가서 혼자서 감자탕이든 뭐든 먹을 용기는 없다. 이 가게 저 가게 앞을 서성이다가 대로로 나와 인사동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뭐라도 있겠지.




광화문 방향으로 직접 걸어서 가 보기로.




밤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광화문이 예뻤다.




밤이 되었는데 해태는 귀여워 보인다. 조명발...




필터 끼워서 보는 광화문 불빛


이 사진을 찍기 불과 5개월 전에는 자동차 라이트가 아닌 촛불이 거리를 가득 메웠던 곳이다. 그 촛불이 난 지금도 자랑스러워. 한창 혼란스러웠을 시간을 잘 정리하고 바로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성과 온순한 성격도 좋고.



 

 


어메이징한 네모빤뜻한 주차 실력이다.

맥도날드 가려다가 주차장 입구에서 사이드 미러 부러뜨린 나로서는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주차 실력...b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인사동 쪽으로 갈수록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삼청동 쪽으로는 사람이 아예 안 다녀. 나 뭐 먹지... 지금쯤이면 종각 쪽에도 문을 연 가게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결국 내 선택은,




빠라빱빠빠-

이렇게 곤란할 때는 역시 맥도날드. 메뉴 고르기 어려울 때는 1955 세트.


해외 여행에서 "이번 끼니는 어디서 때우지? 뭘 먹지?" 하고 고민될 때면 늘 맥도날드나 스타벅스가 구원처가 되어주었는데... 서울에서도 그럴 줄은 몰랐네.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던 안국역 맥도날드 감사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멀지 않아서인지 곳곳마다 등불이 달려 있었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져. 컬러풀 서울.




생각보다 꽤 많이 걸었고 거리도 꽤 있어서 숙소로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탔다. 벌써 밤 11시.




숙소에 나 밖에 없는 걸까? 두 시간 정도 돌아다니다가 들어왔는데도 실내가 조용했다.

휴게 공간 분위기가 아늑해서 들어와서 뒹굴거렸다.




이날은 특별한 것 없이 휴게 공간에 앉아 시간을 좀 보내다가, 내 방으로 들어와 영화를 봤다.


브리 라슨이 오스카를 받아간 [룸]. 십수년간 좁은 방에 갇혀있다가 밖으로 나왔지만, 그 공간에서의 기억과 사람들의 시선만으로도 방 밖의 넓은 세상도 여전히 좁은 '룸'이었다. 조금 안타깝고 슬픈 마음으로 본 기억이 난다. 그래도 해피 엔딩이라 다행이야. 새드였으면 어휴... 영화 선택 잘못했다며 서울 야행 1일차 마무리를 자학으로 보낼 뻔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