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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About Me/내킬 때 쓰는 일상

221001 9월의 비움

 

* 네이버 블로그 주간일기 챌린지에도 똑같은 글을 썼는데 이건 메인에도 기록하고 싶어서 거의 그대로 갖다 쓰기로 했다.

 

 

 

9월의 비움 ; 물건의 기억

 

미니멀 라이프를 열렬히 지향하지는 않지만 내 품 안의 물건을 가능한 적게 보유하려고 신경 쓰고 있다.

 

물건이라는 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끼라도 치는 건지, 조금만 방심하면 그 수가 늘어나서 내 공간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웃긴 건 그게 내 마음 속에서도 부피를 차지한다는 거다.

자주 쓰지 않거나 쓰지 않은 지 오래된 물건이 내 공간에 존재하면, 특히 그것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 무질서와 불필요함을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그냥 타고나기를 이렇게 태어났는지(유전인 것 같기도 한 게 외할머니와 아빠가 유독 깔끔하고 정리정돈에 예민하시다)

눈에 슬슬 거슬릴 정도로 물건이 쌓이면 비정기적으로 솎아내고 정리하는 습관이 어릴 때부터 몸에 뱄는데

9월은 유독 그렇게 비운 게 많기도 하고 그 과정이 재미있기도 해서

물건에 얽힌 기억을 함께 정리할 겸 '9월에는 무엇을 비우고 치웠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1. 에펠탑 모형

 

9월의 비움은 출발부터 산뜻하게 '나눔'이었다.

 

2011년 첫 해외여행으로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를 돌아다닐 때 에펠탑 앞에서 아프리칸 청년에게서 에펠탑 모형 여러 개를 샀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얼뜨기 여행자다운 소비였다...

딱히 좋은 소재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1유로에 네다섯 개씩 살 수 있는 싸구려라고 해도 이걸 사 오다니ㅋㅋㅋ

 

그것도 얼마나 많이 사 왔는지 지인들에게 하나씩 선물하고도 집에는 사이즈도 다양한 에펠탑 모형이 다섯 개나 남아있었다.

그래도 비워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 아빠가 거실 장식장 한 켠에 서 있는 에펠탑 모형을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처럼

"이거 네가 사 왔니?"라고 물어서 하나쯤은 치우기로 마음 먹었다.

그 모형이 그 자리에 있은 지 10년은 되었을텐데 그걸 나 말고 의식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에펠탑 모형에게 못할 짓(?)을 한 기분이 들어서.

 

당근마켓에 나눔으로 올렸다.

가치를 얼마로 매겨야 좋을지 모르기도 하고 나한테는 많으니까 하나쯤은 그냥 남에게 주자는 생각이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인기가 좋았다. (왜...?)

내가 편한 곳에, 편한 시간에 맞춰 오겠다는 분께 드리기로 하고 나누었는데, 약간 쌓인 먼지를 채 걷어내지 못했는데도 모형을 반기는 모습을 보고 사람에게도 모형에게도 의미있는 나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내가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파리를 기념하며(이러고 3년 뒤에 또 갔다) 빨간 캐리어에 욱여넣어 가져온 에펠탑 모형은

이제 또다른 가정에서 파리 여행의 추억을 상기하는 기념품으로서 계속 존재할 것이다.

 

 

 

2. 커피 전동 그라인더

 

대학원 졸업 후 반년이 지났을 무렵 우체국 등기소포를 받았다.

등기를 받을 일이 없어서 의아했는데 발신인을 보고 웃음이 터지면서도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뒤늦게 알게 된 학부 후배가 사회 생활을 시작해 돈을 벌게 되어서, 내 대학원 졸업 선물을 늦게나마 전한 것이었다.

워낙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친구라서 소포를 보낸다는 것도 일절 말하지 않았던 거다.

 

정말 반갑고 기쁘고 행복한 선물이었는데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니

후배가 보낸 건 분쇄되지 않은 폴 바셋의 원두 세트였고 나는 커피 그라인더도 없이 그 커피를 받았다는 거였다.

선물을 받긴 받았는데 포장까지 풀고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후배가 하고 많은 것 중에 커피를 보낸 이유를 잘 알아서(그 친구는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보낸 공간에 퍼지던 커피 향을 유독 마음에 들어해서 자주 그 시간과 공간을 커피 향에 연결해 추억하곤 했다) 원두를 갈아 먹을 여러 방법을 강구했는데

스타벅스에서는 그라인더에 전혀 다른 풍미가 밸 수 있어서 자기들 것 외의 원두는 갈아주지 않았고 폴 바셋은 예나 지금이나 점포 수가 워낙 적어서 접근성이 고난이도였다.

내가 커피 두 봉지 갈겠다고 지하철로 40분이나 걸리는 곳에 있는 폴 바셋에 갈 수는 없잖아...

후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도 "진짜 사람 귀찮게 한다" "돈 쓰게 만드는 선물을 한다"고 장난 섞어 투덜거렸다.

 

선물을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가정용 그라인더를 알아보다가 개중에 가장 저렴하면서 성능도 괜찮아 보이는 이 전동 그라인더를 샀다.

커피를 좋아하기는 해도 직접 원두까지 갈아가면서 마시는 취미는 없어서 약간 일회용처럼, 부담없이 쓸 생각으로 싼 걸 샀는데

그라인더가 내돈내산으로 생기니 후배가 선물한 원두를 다 먹고도 직접 원두를 따로 사서 집에서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정신차려 보니 나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드리퍼도 있고, 드립 주전자도 갖추고, 커피 계량 스푼도 사고... 그러고 있더라고.

 

...역시 물건이 새끼치는 거, 맞다.

 

그라인더가 있어서 그동안은 몰랐던 셀프 핸드드립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지금의 나를 보면

새로운 물건이 또다른 활동과 낯선 세계로 나를 이끌어 준다는 감회에 젖기도 했고, 별 생각 없이 산 그라인더가 가성비가 워낙 좋아서 만족했지만 솔직히... 좀 귀찮아졌다.

핸드드립 커피, 그거 맛있긴 한데 원두를 갈고 나서 그라인더를 청소하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라인더 틈새에 커피 가루가 찌꺼기처럼 끼어 남지 않도록 꼼꼼히 털어내야 하는데 이게 너무 귀찮아.

왜 물청소를 하면 안 되냐고!!!

 

그 번거로움 때문에 점점 드립 커피를 마시는 빈도가 낮아져서 그라인더도 산뜻하게 팔아 치우기로 마음 먹었다.

앞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근처 개인 카페에서 좋아하는 원두를 사서 갈아달라고 부탁해 집에서 핸드드립해 마실 거다.

만원에 당근에 올렸더니 이것도 금방 팔렸다.

잘 가, 후배와 커피...

 

 

 

3. 카세트 테이프

 

꼬박꼬박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들의 앨범을 사서 들었던 꼬마가 나야 나

 

한창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초딩 고학년~중딩 급식 시절 가요보다 팝에 빠져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엔싱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은 대형 팝스타들의 앨범을 빠짐없이 들었고, 그렇게 팝에 빠지면서 그래미도 매년 챙겨보고 할리우드 영화판으로까지 덕질 범위를 넓혀갔다.

영어 노래 들으면서 '고-오-급 취미를 가진 나'에 심취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시절 힙스터 감성이라고 할까.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통역 없이 그래미 생중계를 보고 남들은 잘 모르는 다른 그래미 노미니들의 앨범을 또 따로 찾아 듣고(앨범 전체를 통으로 들었다) 거기서 취향에 맞는 가수를 찾으면 디스코그래피를 통째로 주구장창, 질릴 때까지 들으면서 다른 애들은 이런 가수 모른다고, 미국 가수 노래 듣는 애는 나 뿐이라고 하는 못된 힙스터 감성에 빠졌는데. 하, 세월...

 

학교 강당에서 혼자 린킨파크 2집 듣던 게 생각나네 갑자기.

 

예전 살던 곳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자주 가는 음반 가게가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온 벽면에 카세트 테이프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보가 나오는 날이면 "아저씨, XX 앨범 들어왔어요? 포스터도 주실 수 있어요?"라고 꼼꼼히 묻고 테이프를 사서 나오곤 했는데... 5,6천원 하는 테이프를 사려고 특별히 용돈을 아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모은 테이프가 3,40개는 됐는데 최근 2년 사이에 여러 번 정리를 하면서 저 열 장 밖에 안 남았다.

다 버리고도 이건 못 버리겠다, 테이프 플레이어가 없어서 두 번 다시 못 들어도 이건 꼭 갖고 있고 싶어서 남겨두었던 것들인데

그마저도 1년이 또 지나니까 별 감흥이 없어서 이것들마저 비워도 괜찮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버리려고 하다가 혹시나 싶어 당근에 올려봤는데 올리자마자 연락 폭주.

먼저 연락한 분이 계셔서 거래 못한다고 거절하기가 참... 신선했다ㅋㅋㅋ

개당 천원에 판다고 올렸는데 연락한 사람 중 누군가 너무 싼값에 올렸다며, 최소 5천원은 받아야 된다고 조언(?)해 주어서 연락해 온 사람들 중 먼저 3배 가격에 사겠다고 제안한 사람에게 팔았다.

약간 손해 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난 빨리 비워서 좋으니까 뭐, 됐다.

 

 

 

4.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박진영의 자뻑 노래 '살아있네'에는 "레코드 판이 카세트가 되고 카세트 테잎이 CD로 바뀌고 CD가 다운로드 스트리밍이 되도"라는 가사가 붙어있다.

박진영은 근 30년을 스타로 살아온 자신의 대단함을 어필하려고 그런 가사를 썼겠지만 나한테는 내가 음악을 즐기던 최초의 방식-카세트 테이프-을 떠오르게 해 지난 추억에 혼자 웃음 짓는 가사로 남아있다.

 

음악 듣기도 좋아하고 라디오도 즐겨 들어서 나만의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그것도 휴대용으로 갖고 싶어했던 엄마 아빠가 선물해 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다.

초등학생 때였는지 중학교 때 일인지 아리까리하긴 한데, 그 전까지는 아무리 졸라도 안 사주던 물건을 사 준 걸 보니 초등학교 졸업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중학교 시험 기간에 밤늦게 공부할 때도 이걸로 좋아하는 앨범을 반복해 들으면서 수학 문제를 풀었고(중학생 때는 수포자가 아니었던 많은 이유 중에 하나였을지도...) 친한 친구와 서로 들려주고 싶은 테이프를 교환해서 들어보고 감상을 나눴던 추억이 남아있는 물건인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mp3 플레이어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여서 카세트 테이프는 불과 몇 년 사이에 구시대 유물이 되어 있었다.

 

이후 아이리버와 삼성의 mp3 플레이어로 갈아타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부터는 폰에 음악을 담아 듣고 이제는 그조차도 않고 스트리밍해서 음악을 듣고 있다.

그 사이에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는 충전도 안 되고, 소위 '껌전지'도 안에서 녹았는지 기계 자체도 해체가 되지 않아 유물을 넘어 고물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걸로 음악을 들으며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도 뿌듯하고 보람찼던 중학생 시절과, 혼자 텐트에서 특별히 골라온 좋아하는 앨범들을 번갈아 끼워 들었던 어느 해 여름 가족 캠핑의 기억, 그리고 이 테이프 플레이어를 선물해 준 부모님의 마음을 간단히 정리할 수 없어서 쭉 끼고 살았는데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치우고 생긴 빈 자리를 보니 오히려 그 기억과 마음이 그리 쉽게 잊히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이번에는 정말로 비워냈다.

 

 

 

5. 음악 CD

 

이것도 카세트 테이프와 비슷한 결로 모으고 비워냈다.

CD 플레이어는 없었지만 음악을 즐기는 방식에서 CD가 주류가 되었을 때는 CD를 사 모아서 컴퓨터로 듣고, 특별히 마음에 드는 트랙은 리핑해서 mp3 플레이어에 넣어 듣곤 했다. 장르는 가요부터 영화 음악까지, 다양했다.

 

가요가 '케이팝'으로 불리게 된 때에 이르러서는 앨범이 팬들의 소장 욕구를 채워주는 것 이상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고

나도 그런 이유로 트와이스 앨범을 쭉 소장하고만 있었는데 그동안 모아온 앨범을 여러 번 솎아낸 끝에 남은 것들마저 비우기로 하면서 트와이스 앨범도 한 장씩만 갖고 나머지는 정리해도 좋겠다 싶어서 한꺼번에 알라딘 중고 팔기로 처분했다.

앨범 파는 원스는 나 뿐인지 트와이스 앨범은 값을 꽤 후하게 쳐 줘서 앨범 팔고 나니 중고 재벌이 되어있더라는...

 

영화 '린다 린다 린다' OST는 스트리밍 사이트에도 없어서 막판까지 고민했는데 배두나 사진집도 판 마당에 의미없다 싶어서 이것도 빠이.

 

 

 

6. 바인더와 펀치

 

대학원에 다니면서부터는 종이와의 싸움이었다.

수업에서 받는 프린트물, 내가 읽어야겠다 해서 프린트해 두고도 한 번도 읽지 않은(대학원생 국룰 아님?) 참고 논문 등등

쌓이는 종이의 부피와 무게를 감당하는 게 대학원생의 여러 과제 중 소소하지만 중요한 과제였다.

대충 그래서 바인더랑 펀치를 샀다는 이야기.

 

웃긴 건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언젠가는 읽을지도 모른다며 프린트물과 논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서 바인더를 더 샀고(학교 다닐 때보다 졸업 후에 산 바인더가 더 많다는 게 함정... 왜?;) 3공 펀치까지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사서 쭉 정리해 두었다.

 

근데 읽을 리가 있나.

 

최근 2년 사이에 이런저런 종이를 싹 버리고 바인더만 남았는데 향후 몇 년 내에도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이것도 이참에 비워냈다.

싸게 팔 생각으로 개당 2천원으로 당근마켓에 올렸는데 며칠 안 되어서 한 남자 분이 바인더 5개와 펀치를 세트로 싹 사 갔다. 너무 싸게 팔았나 싶긴 한데, 그래도 안 팔릴 줄 알았던 게 팔렸으니 그게 어디야. 일괄 구매 프리미엄으로 10프로 깎아드림.

 

 

 

7. 통장

 

정기적으로 월급이라는 걸 받았을 때, 한 여섯 달 정도 신나게 돈을 펑펑 쓰고 나니 잔고를 보고 현타가 와서 돈을 모아야겠다 결심했다.

고삐 풀린 말처럼 돈을 쓸 때도 재미있었는데 돈을 차곡차곡 모으니까 그것도 재밌더라.

역시 돈은 좋은 거야ㅋㅋㅋ

 

그 와중에 이자 한 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열심히 알아보다가 새마을금고가 세금 우대를 해 준다길래 뭐 조합원도 가입하고 적금도 들고 그랬다.

적금 만기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내가 여길 탈회했는지 아닌지 기억이 안 나서 다른 은행들 종이 통장은 다 정리하고도 새마을금고 것은 가지고 있었는데, 9월 초에 새마을금고에서 출자 미수령금을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쫄래쫄래 뛰어가서 미수령금(만원...ㅋ...) 받고, 간 김에 새마을금고 계좌도 완전히 해지했더니 종이 통장을 갖고 있을 이유도 사라져서 이것도 손수 갈기갈기 찍어서 버렸다.

책상 서랍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네.

 

올 여름 신한은행에 갔다가 창구 직원과 '페이퍼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은행에서는 이런저런 가입 서류도 전부 전자 문서로 바꾸고 서명도 태블릿에 받는 걸 보고 종이라는 게 그 정도로 비싸고, 무겁고, 부피가 대단했던 것이구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하긴 나도 논문을 감당 못해서 아이패드 샀었으니까.

페이퍼리스가 미니멀리즘이나 제로 웨이스트 같은 생활 양식을 넘어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아니 완전한 주류가 되었다는 걸 경험했다고 할까.

그것이 정말 친환경적인 결정인지는 조금 의문지이만, 뭐 그렇다고(횡설수설).

 

 

 

8. 옷

 

재작년과 작년에 여러 번에 걸쳐 옷장 속 옷을 잔뜩 비웠다.

원래 옷이 많은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난 왜 입을 옷이 없지' 싶어서 옷장을 정리해 봤더니 내가 내 마음에 들어서 산 옷보다 엄마가 입으라고 어디선가 가져다 주고 사다 준 옷이 더 많았다.

아니, 딱히 예쁘지도 않은 러블리한 티셔츠나 여리여리한 블라우스 이런 거 왜 자꾸 사다 줬냐고. 옷만큼 취향 타는 게 어디 있다고.

내 취향과 체형을 1도 생각하지 않고 엄마가 사다 나른 옷만 있었으니 옷이 아무리 많아도 입을 게 없지... 풍요 속의 빈곤이 이런 건가.

 

정말 다~~~ 치우고 내가 좋아하는 자주 입는 것들만 남겨뒀는데, 아름다운 가게에 가져가야지 하고 따로 챙겨두고 아직도 갖다 주지 않은 옷들 중에서 상태가 괜찮은 기본 니트가 있어서 당근마켓에서 오천원에 팔았다.

솔직히 안 팔릴 줄 알았는데 팔렸어...;

 

 

 

이것들 말고도 자잘하게 치운 게 많다. 특히 책.

대한민국 성인 평균 독서량보다는 좀더 읽는 편인데도 책에 대한 집착이 많이 옅어져서, 책을 모으는 것보다 버리거나 파는 데 더 재미가 들려서 책은 정말 유감없이 비웠다.

다만 이건 워낙 많이 팔아서 다음 기회에 포스팅하기. to be continued.

 

물건을 하나둘 비우면서 산뜻하고 가뿐해진 느낌이 강하다.

물건에 얽매이지 않아 더욱 자유롭고, 지금의 내 기호와 취향에 맞는 새로운 것들로 일상 공간을 채우면서 스스로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비우기(그리고 채우기)는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다.

한편으로는 비우고 나면 사라진 것들에 대한 묘한 아쉬움이 남아 조금은 착잡하고 헛헛한 기분도 든다.

다만 물건은 사라져도, 오늘의 기록으로 물건들과 함께 했던 시간과 기억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