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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 열정과 찜통 사이, 7월의 피렌체 두 눈이 번쩍 뜨인 건 한밤중이었다. 사방이 어두웠다. 곤히 자던 나를 깨운 건 같은 방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였다. 습관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아이폰을 켜니 새벽 서너 시쯤이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전까지 밀라노 아니었어? 생각거리가 생기니 잠이 깨는 건 금방이었다.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내렸던 순간의 장면부터 되짚어 보자.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두어 시간 달렸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플랫폼이 가까워지는 장면도 떠올랐다. 플랫폼을 서성이는 수많은 배낭족을 제치고 길을 건너 햄버거 가게를 지났다. 역 앞에서 코카콜라 프로모션을 했던 것 같은데 나, 그 공짜 콜라 받았나.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걷는 동안 직사로 내리꽂히던 햇볕. 정수리가 타는 듯해 '모자를 가져올걸' 후회했던 것도 생..
ep #1 갑자기 떠나는 길 여행의 계기는 조금 갑작스러웠다. 그해 여름, 나를 좋게 평가한 분들의 제안으로 어떤 일을 이제 막 시작한 터였다. 나한테도 감히 휴가라는 게 있기는 할까, 어디로 떠날 수는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일에 빨리 적응할 궁리부터 하는 게 당연한 자세라는 생각에 휴가는 포기한 참이기도 했다. 어느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휴가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이번 수다는 나에게도 휴가 계획을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일에 임하는 의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말이 '고도의 계산된 답변'으로 해석될 만한 답이 돌아왔다. 그럼, 이참에 유럽 다녀와 버려. 얼마나 쉬어도 되길래 유럽 이야기까지 나오나. 일주일도 괜찮다는 말에 바로 그날 밤부터 이틀을 꼬박 새서 비행기 표를 샀다. 언제 또 쉴지 모르니 과감하게 떠나버리라는 부추김에 금..
[제주일주(濟州一周)] #하룻날 약 일주간의 제주일주 시작 공항버스에서 내리니 비행기 탑승 한 시간 전이었다. 아슬아슬했네. 신경써서 계획한 여행 치고는 출발부터 실수했다. 기껏 택시까지 불러서 공항버스 첫 차를 탔는데 이거 왜 인천공항행 버스인 거야. 멍하니 카드를 찍자마자 눈치챈 게 다행이었다. 한 정거장 겨우 가서 내리고 김포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탔다. 버스값 만원 날리고 시간 잡아먹고 쯧.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동안, 매년 11월 첫째 주를 전후해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했다. 2016년과 2018년은 일주일, 2017년은 이틀 일정이었다. 당시 일터에서는 매년 여름부터 겨울 초입까지 주요 사업 두세 개를 연달아 진행했다. 하나하나 진 빠지는 프로젝트였지만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
1월 셋째주(1.16-1.22) 주간일기 꾸준히 쓸지 의문이지만 일단 시작하는 주간일기 #일요일 웨이브와 넷플릭스를 동시 구독하고 있지만 새롭게 보는 콘텐츠는 거의 없고 보던 것만 재탕, 삼탕 그리고 사탕하고 있다. 예전에는 드라마 시청을 선뜻 시작하기가 꺼려졌는데 요즘에는 영화마저 새로운 것을, 한 번만, 보겠다고 진득하게 앉아있는 게 힘들다. 콘텐츠를 접하는 채널은 많아졌는데 정작 취향은 좁아지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사탕 중인 콘텐츠는 '로앤오더 SVU(Law&Order SVU)'와 '프렌즈' - 맞다, 난 국내 드라마는 잘 못 본다. 여러 번 보다 보니 해외 드라마라도 귀에 들어오는 표현이 제법 된다. 요즘 '로앤오더 SVU'에서는 이 말이 자주 들린다. ...수사 드라마라서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온다. 순전히 재미 때문에 보지..
교토 B-cuts #1 #먹거리 - 절이나 공원에서 마차를 많이 마셨다. 마차를 마시고 일본인들이 화과자를 만들고 양갱을 곁들이는 이유를 알았다. 마차... 이 세상 쓴맛이 아니다. - 혹 다시 교토에 가게 되면 그때는 드립 커피 맛집을 미리 알고 가야지. 커피, 커피 하는 것 치고는 너무 프랜차이즈와 인스타그램에 의존해서 카페를 골랐다. - 게스트하우스 건물 1층에 피자헛이 있어서 두세 번 직접 피자를 주문했다. 한국에서도 안 먹은 피자헛을 일본 가서 처음 먹어봤네. 일본어로 피자를 어떻게 주문하나 걱정했는데 '난 피자를 먹고 싶고 그걸 네 가게에서 반드시 주문할 것이다'라는 의지와 돈만 보여주니 피자를 내주더라. #막 그냥 돌아다니면서 - 난 사진 문외한이다. 교토 여행 때문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내 카메라'를 장만했을 ..
220109_일단 써야 고칠 수 있다 "일단 써라. 뭐든지 써야 고칠 거 아냐." 학위 논문을 쓰던 때 지도교수님이 내게 한 말이다. 글줄을 붙잡고 며칠을 낑낑대다가 약속한 면담일이 되어 교수님께 쭈뼛쭈뼛 보여드리면, 교수님은 뭐라도 써서 초고를 완성해야 고쳐 쓰고, 고쳐 써서 논문을 완성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남보다 멋진 문장과 완벽한 논리 구조를 가진 글을 동경했던 나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깨달음을 주었던 말이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건 건강한 야심이 아니라 허영심이 아닐까?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알게 되어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몇 년이나 지나버린 제주 여행기를 뒤늦게 쓰면서 교수님과 헤밍웨이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일단 써 봐야 고치고, 고쳐야 남에게 보..
2021년 결산
['19 군산] 프리-코로나 군산 나들이 (ft. 부여) 코에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군산에 가 보기로 했다. 원래 생각했던 곳은 부산이었는데 일행이 생기고 기차가 아닌 차로 교통편이 바뀌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 부산이 군산이 되는 기적이. 엉뚱하게 부여에 꽂혀버렸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군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부여' 표지판을 본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왕 나왔으니, 이왕 가는 방향이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이런 생각이 문제다 에잉. 아무튼 그런 이유로 부여로 빠져서 정림사지와 국립부여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정림사지는 이름 그대로 오층석탑과 건물 터만 남아서 을씨년스러웠다. 석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요하고 아름다웠지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준비하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그 불상. 박물관에 전시된 건 복제품이고 진짜는 서산 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