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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2 라면과 치킨이 지겨워졌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처서가 지나고 기적처럼 더위가 꺾이면서 내게는 두 손님이 찾아왔다. 비염과 식욕. 비염은 확실히 반갑지 않은 손님인데 후자는 반가운 건지 아닌지 스스로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쨌든 식욕이 생기면서 배달앱을 들여다 보는 빈도가 잦아졌다. 슬프게도 내가 배달앱 VIP가 되는 일은 없었다. 번번이 아이쇼핑(?)에 그쳤던 건 순전히 배달비에 대한 억울함 때문이다. 식당에 배달기사들이 전속 고용되어 그 덕에 음식 배달비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스타트업이었던 배달 플랫폼 기업들이 요식업계를 좌지우지하는 큰손이 된 지금도 난 배달에 서비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걸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 너무 옛날 사람 같나. 포장 주문도..
ep #5 팔랑귀 때문에, 셀프 워킹 투어 로마 숙소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화장실을 혼자 쓸 수 있다는 거였다. 도미토리에 묵을 때처럼 '언제 씻으러 가야 하나' 하는 눈치 싸움을 할 필요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 헛구역질을 하며 화장실 입구에서 백스텝을 할 필요도 없다. 느지막히 일어나 화장실을 쓰고 싶은만큼 쓸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프라이빗 룸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 숙소'여서 좋았던 또다른 점은 어쩐지 이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프렌들리한 성격이었다. 호스트 마릴레나도, 이날 오후 마주친 그녀의 남자친구 지안루카도, 심지어 오랜만의 아날로그 열쇠에 쩔쩔매는 나 대신 숙소 대문을 열어준 현지 할아버지까지도 생면부지 동양인인 나에게 생글생글 웃어 보이며 먼저 말을 걸고 선뜻 도와주었다. 이날 아침 마..
ep #4 로마 명소 벼락치기 한여름 피렌체는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여행자의 플래시몹 성지 같은 곳이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온 듯한 가족(아이가 열댓살 정도면 열에 일곱은 미국식 영어 발음이었다), 걸음은 느리지만 언제든지 돈 쓸 준비가 된 연로한 일본인 관광객, 카메라에만 돈을 쓴듯 생전 처음 보는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중국인 등등... 그 다양한 타입의 여행자가 작열하는 7월 피렌체의 태양 아래에서 다같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모습이, 피렌체에서 본 가장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이탈리아에 온 지 나흘째 되는 날, 사람 구경 실컷 한 피렌체를 떠나 가볼곳 천지인 로마로 향했다. 같은 방의 한국인 언니와 기차 시간이 비슷해 함께 숙소를 나섰다. 친절한 호스트에게 직접 인사하고 싶었는데 그 사이 어디로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아쉬운..
뜻밖의 레스 웨이스트, 8월 7월 말부터 네이버 블로그 주간일기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일상이라고 할 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내 일상이라서, 주간일기 몇 줄이라도 적으려면 마른 걸레 쥐어짜듯 내 내면까지 비틀어봐야 글감을 겨우 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의식의 흐름대로 적게 되는데(마치 지금 이 글처럼) 요즘 꽂혀있는 게 환경 친화적인 생활, 예를 들어 미니멀 라이프나 제로 웨이스트 같은 것들이다 보니 주간일기도 주로 그 쪽 이야기를 쓰게 된다. 대체로 환경에 대한 내 상념 뿐이지만. 미니멀 라이프나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는 하다. 혼자 여행하면서 '가볍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짐에 대한 동경이 생겼고, 여행을 쉬게 되면서는 '모든 짐이 캐리어 한두 개에 다 담길 정도..
ep #3 발도장만 찍고 온 친퀘테레 꼭 친퀘테레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피렌체의 태양이 나를 반쯤 태워놓았거든. 35도 가까이 치솟은 한낮 기온도 기온이지만 피렌체의 햇볕은 유독 따갑고 눈부셨다. 반나절 동안 별 하는 일도 없이 피렌체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보니 이탈리아의 한낮에 '감히' 외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 년 전, 정오 무렵 기온으로 47도를 표시했던 스페인 세비야 시내의 어느 기온계를 떠올리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여름 폭염과 햇살은 사람의 진을 빼놓는 무언가가 있다. 잠시 열을 식히려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맞은편 침대에는 막 체크인한 듯한 낯선 여자가 짐을 풀고 있었다. 벽에 기대어 침대에 앉아 아이폰을 들여다보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쳐다봤더니 그 룸메이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마주쳐 인사를 ..
교토 B-cuts #2 #숙소 - 숙소가 있던 가라스마 마츠바라. 가와라마치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한적한 동네에 있어 조용하게 푹 쉬고 편하게 이동했다. - 여행 후 알게 된 사실 하나. 숙소 바로 맞은편 불광사는 꽤 유명한 관광 스팟이었다. 역사적 가치나 남다른 풍광 때문이 아니라, 절 경내에 있는 디앤디파트먼트 교토 때문에 유명한 곳이다. 교토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소품샵 겸 카페 겸 식당으로 꽤 알려져 있는 것 같아서, 교토 여행 브이로그에서 매우 높은 확률로 등장한다. 괜찮아 보여서 덩달아 호기심이 생겼는데... 코앞에 두고 거길 안 가다니. 왜 아무도 안 알려줬냐아!!! (대충 김래원 짤) - 디앤디파트먼트 말고도 주변에 은근히 가 볼 만한 베이커리나 레스토랑이 있다. 그 앞을 지나면서도 어쩐지 심상치 않아 ..
7월 마지막 2주 주간일기 네이버 블챌 주간일기 쓰는 김에 티스토리에도 써 보는 이야기. #1 인쇄할 일이 생겼는데 집에 프린터가 없다. 아니, 프린터가 없는 건 아닌데 평소 쓸 일이 없어서 구석에 처박아 뒀더니 감히 쓸 엄두가 안 난다. 토너도 굳었을 것 같고, 드라이버 설치하는 것도 일이고... 갈 만한 복사 가게도 없고, 지인에게 프린트를 부탁하기에는 좀 사적인 문서이다 보니 어쩌나 했는데 아니 글쎄 도서관에 프린터가 있지 뭐야. 어플 설치하고 인쇄할 문서를 업로드하고 미리 설정한 비밀번호 입력만 하면 무선 출력 쌉가능. 한두 장 인쇄하기에는 비용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잘 썼다. 종합문화시설(?) 도서관 사랑해... #2 모니터를 들여놓고 보니 책상 위와 뒤로 늘어진 전깃줄이 진짜 꼴 보기 싫었다. 책상 위에서 전원을 연결하고..
나의 노트북 (ft. 그리고 HP m27fw) 나에게는 10년째 쓰고 있는 노트북이 있다. 대학원에 입학한 직후 샀던 것이다. 당시 쓰고 있던 삼성 노트북보다 훨씬 가볍고(2.15kg 대 1.18kg... 비교 불가다) 깔끔한 흰색 외관과 선명하다 못해 눈이 아픈 디스플레이 때문에 포장을 뜯자마자 돈 쓴 보람을 120%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노트북이 내게 단순한 소모품 이상의 의미를 가진 데는 그것과 함께 한 10여년의 시간이 있었다. 이 작고 소중한 노트북을 백팩에 넣어 다녔던 매일 편도 두 시간의 통학길, 하루종일 이해 안 되는 논문을 붙잡고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서 한 자 한 자 피로 새기는 듯 과제를 썼던 도서관에서의 밤(머리에 기름칠해야 한다며 캔맥주 마시면서 썼던 과제의 기억...), 끊임없는 자기 의심에 빠져서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