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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Voyage/'17 교토에 다카마츠와 고베 얹기

#Day8 집으로

 

 

From 170125 to 170201

 

여행 포토북을 만든 사진 위주로 업로드하였으며 모든 권리는 미 마이셀프 앤 아이, 오로지 나에게 있음.

 

 

Day 8

 

집으로 가는 날의 간단한 기록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비행기는 늦은 오후 간사이 공항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날이 되니 다급해져서 뭐라도 하나 더 봐야겠다며 일찍 길을 나섰다. 서둘러서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교토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특별한 추억도 인상적인 풍경도 아니었지만 며칠 동안 오가며 나름대로 정들었던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려고 창가에 앉았다.

 

 

 

 

 

교토 역 라커에 캐리어를 넣어두었다. 30인치는 족히 될 법한 캐리어를 라커에 넣으려고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일본인 아주머니를 도와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말에 "캐리어가 크니까요"라는 대답을 횡설수설 풀어서 말하려고 애쓰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는 외국인임을 바로 눈치챘다. 서로 어색하게 웃고 헤어졌다.

 

굳이 교토 역까지 가서 짐을 맡긴 건 그곳에서 공항 버스를 타기도 해야했지만, 전부터 제대로 봐야지 했던 동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오후 7시쯤 무작정 동사에 찾아갔더니 문을 닫아버렸길래, 마지막 날 보고 갈 것은 동사로 정해둔 터였다. 한 번이라도 가 본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아갔다.

 

어쩐지 몸이 찌뿌둥하고 날씨도 흐릿해서,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동사는 그런 내가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심심했다. 오중탑 가까이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탑이 워낙 커서 굳이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잘 보인다... 심드렁하게 멀리서 오중탑을 건너다 보다가 터덜터덜 돌아 나왔다. 나오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 교토 버스라고 생각하니 왠지 서운해져서 비디오도 찍어봄.

 

 

 

 

 

교토 역 이세탄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전부터 계속 생각났던 일본 라멘을 먹으러. 백화점 10층에 라멘 특별 코너가 있어 일본 전국의 라멘을 맛볼 수 있다나. 라멘도 지역별로 맛이 다 다른가 보다. 어느 지역의 라멘 가게 앞에 선 여중생들 뒤에 서서 같이 메뉴를 살펴보았다. 친구들끼리 요란스럽게 메뉴를 고르던 한 아이가 돌아서며 나에게 뭐라고 시끄럽게 얘기했는데, 파안대소하는 다른 아이들과 나를 보자마자 "핫 스미마셍"이라고 빵 터지는 그 아이의 반응을 보니 나를 제 친구로 착각하고 말을 건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같이 깔깔대며 웃었다.

 

아이들은 부타 라멘을 먹으러 가고, 나는 토야마 지방의 라멘 가게에 들어갔다. 코너를 빙 둘러보았지만 내 눈에는 여기가 일본 어디에 붙어있는 지방인지도 모르니, 그래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곳에 적당히 눈치 봐서 들어갔다. 네기 라멘을 시켜 한참 맛있게 먹었는데, 국물만 남은 라멘을 물끄러미 보던 내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살짝 손으로 건져보니 검은 머리카락... 종업원에게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이런 게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식사 도중에 보았다면 항의했겠지만, 어쨌든 라멘은 이미 내 뱃속에 들어가버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오사카 와사비 초밥마냥 이곳 라멘 가게에서 엿 먹어봐라 조센징이라며 일부러 머리카락을 흘린 건 아닐테고... 조심하라고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가볍게 말한 것인데, 그게 그냥 쿨한 한 마디일 거라는 건 나만의 생각인 듯 했다.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자세를 고친 종업원의 입에서 스미마셍이라는 말이 곧바로 대여섯 번은 줄줄이 나왔다. 종업원의 다급한 부름을 듣고 뛰쳐나온 주방 아저씨가 연신 사과하며 라멘 한 그릇을 공짜로 더 드리겠다고 말했다. 배부르다고 말했더니 그냥 라멘 값 900엔을 돌려주었다. 환불이고 뭐고 잔돈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아, 아니 됐다니까요!!"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갈아 가며 말하면서까지 사양했는데도 결국 100엔짜리 동전 9개는 내 손에 쥐여졌다. 하아...

 

 

 

 

 

동전이 또 생겨 약간 찜찜한 상태로, 여행 선물로 뿌릴 교토 과자를 뭐라도 좀 사러 백화점 지하로 향했다. 과자 이름을 몰라 삼각형 모양의 교토 명물이라고만 했는데 엄마 뻘인 점원은 약간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 그거 야츠하시!"라고 알려주었다. 야츠하시 맛을 모르고 남에게 선물하려고 하는 나에게 공짜로 한 입 먹여주기까지. 야츠하시는 달달한 팥앙금을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전병으로 감싼 것으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보면 향긋한 계피 향이 났다.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한 상자를 더 샀다. 점원의 마케팅은 성공했다.

 

교토 역 쪽으로 향하며 꼭 이 잔돈을 처분하리라 단단히 마음 먹었다. 마침 역사 안에 우지에서 본 나카무라 토키치의 상점이 있어 녹차 파르페를 주문했다. 500엔을 주었더니 돌아오는 거스름돈 50엔. 이 50엔이라도 없애보려고 이거 안 받고 싶은데 돈 안 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어디 돈 모으는('성금하는'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박스... 통이라도 없어?" 뭔가 의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점원들은 계속 이렇게 반응했다. "에? 에?!" 나보다 두세 살은 어려 보이는 여자 점원 둘이 도오시오, 도오시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해라며 난감해 하기도 하고, 계속 손사레를 치면서 못 알아듣겠는 영어로도 몇 마디 하다가 "저희 가게는 팁은 안 받습니다 손님... 저스트 욘햐쿠고쥬엔(450엔)"이라고 말했다. 나도 팁 줄 생각은 없어. 받으려는 자와 받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은 결국 내가 포기하고 50엔을 주머니에 넣는 것으로 끝났다. 교토 역에서의 점심과 디저트는 단돈 450엔에 해결했다, 본의 아니게.

 

 

 

 

 

엄청나게 커서 이게 말로만 듣던 별천지인가, 다카마츠에서 올라온 외국인을 당황시킨 교토 역. 빠이.

 

 

 

 

 

하치조구치 방향에 있는 케이한 호텔에서 30분 남짓 공항 버스를 기다렸다.

내가 이 표 예약하려고 교토 역을 빙 돌아서 걸어온 걸 생각하면... 으휴.

 

 

 

 

 

이 리무진을 아는 외국인은 많지 않을 줄 알았더니 다른 승객들도 전부 한국인과 중국인이었다.

 

리무진이라고 하기에는 좌석 폭이 좀 좁지만, 그래도 좌석 둘을 차지하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버스는 어느 덧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물어물어 진에어 카운터를 찾아갔다. 일본인 직원이 유창한 한국어로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먹을 것을 가지고 비행기에 타 본 적이 없던 나는 슬며시 야츠하시를 들어올려 보여주었다. "먹을 건데 비행기에 가지고 타도 돼요?" 괜찮다는 친절한 대답에 안심하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여행 경비가 생각보다 많이 남아 면세점에서 과자와 초콜릿, 르타오의 치즈케이크까지 신나게 사 들였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보니 문득 조금 배가 고파져서 면세 구역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TV로 하와이에 주인과 함께 사는 개의 느긋한 전원 라이프도 보고, 일본 국회에서 핏대 세우며 공격하는 여성 의원에게 조근조근 대답하는 여성 장관의 모습도 보다가 비행기를 타러 갔다.

 

 

 

 

 

대구에서 온 사람들이 이제 막 도착해 우르르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한 컷 두 장면.

 

 

 

 

 

 

 

 

 

 

 

전방, 후방, 심지어 바로 옆 자리까지 어린아이가 하나씩 탔다. 삿포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의 악몽이 떠올라 긴장했지만, 이번 비행 파트너의 부모는 꽤 많이 준비한 듯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색깔놀이 책과 장난감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2시간 남짓한 귀국길은 평안했다. 입 벌리고 잘 정도로... 7박 8일 여행이 이렇게 피곤합니다.

 

 

 

 

 

혼자서 보내는 긴 시간도 제법 재미있었다. 이렇게 길게 쉴 수 있다면 왜 굳이 일본에서 그 시간을 다 쓰냐는 말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렇게 시간을 내지 않으면 길게 있어볼 생각도 않는 곳이 일본일테니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색에 잠겨볼 여유도 있었고, 책에서 공허하게 설명된 도시와 유적을 눈으로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궁금했던 천년 고도는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었고(그러고 보면 가고 싶다고 생각한 곳은 정말로 다 가 본다. 꼬르도바, 로마, 교토...), 무엇보다도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다리 아프게 돌아다니는 아찔한 생각을 하니, 휴식이 간절히 필요했던 나로서는 교토만 한 답안도 없었다.

 

덕분에 잘 쉬었다. 비록 이 다음날부터 헬게이트가 열렸지만, 그렇기에 더 잘 쉬었다. 마지막 날 마음 먹었던 대로, 조만간 다시 방문해서 고베 항의 풍경과 교토 고려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할 계획이다. 한 번 본 교토도 다시 보고 제껴야지.

 

여행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