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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170125 to 170201


여행 포토북을 만든 사진 위주로 업로드하였으며 모든 권리는 미 마이셀프 앤 아이, 오로지 나에게 있음.
















Day 6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와 샌드위치로 아침식사.



오하라만 보아도 꽉 찬 하루였지만 전날 일정을 너무 늦게 시작한 게 아까워 조금 부지런하게 나왔다. 그래봤자 11시... 또 조식을 놓쳤다.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 꼰빠냐를 주문했지만 스벅 파트너가 친절하기는 해도 꼰빠냐를 못 알아듣길래 포기하고 그냥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일본에는 꼰빠냐가 없는 걸까 아니면 다른 말로 부르는 걸까. 또 일본을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꼭 미리 알아가야겠어.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야 안 사실이지만 여행 내내 머문 가라스마는 교토의 비즈니스 중심가였다.


유독 현대식 건물이 많았지만 그저 쇼핑하기 좋은 시내이겠거니 했는데 이날 아침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가득 메운 걸 보니(그리고 내 옆에는 노트북을 두드리는 외국인...) 가라스마의 번화함이 이해되었다.


그 분위기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허세를 부려 보았다. 4차선 도로 위로 차가 오가고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어딘가로 바삐 향하는 바깥 풍경과, 테이블마다 비즈니스 미팅이나 잠깐의 휴식이 펼쳐지는 스타벅스 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작년에 학교에서 열린 모 외국계 언론사 취업설명회가 떠올랐다. 미국계 회사라 다들 관심있게 듣다가도 지사에 입사하게 되면 대부분 도쿄에서 근무하게 된다고 하니 조금 주저하는 분위기였다. 일본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교토라면, 가라스마라면 한 번쯤 살면서 국제적으로 젊음의 열정을 불태워 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정도면 일 잘하고 머리도 나쁘지 않은 구직자인데, 나 데려갈 일본 일자리 하나 없나?


여유가 된다면, 능력이 된다면 가라스마와 가와라마치가 예전에도 지금도 교토의 중심가인 이유를 더 깊이 알고 싶다. [서울과 교토의 1만 년]에서 정재정 교수가 "가라스마는 옛날에도 교토의 중심지여서 이 주변에서는 유물이 심심치 않게 출토된다 (...)"라고 쓴 구절을 보았는데 왜 중심지인지에 대해 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책을 헛읽었지 싶다. 시간이 아깝구나 얘야...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교토 여행 전에는 꼭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교토 편]과 정재정 교수의 [서울과 교토의 1만 년]을 읽기를 추천한다. 두 분의 글은 교토에 남은 한국의 흔적과 일본의 독립적인 발전을 좇으며 고대부터 이어진 한국과 일본의 교류를 독자와 함께 연구하고 설명한다. 사람 인 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에서 본딴 것이라는 설이 있다. 어떤 이는 이 설이 틀린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 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사람의 성장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모두가 공감할 만한 내용이 있어 사람들이 그 설에 설득당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 그럴싸하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드는 문화도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떤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양분은 타 문화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장점을 흡수하고 단점을 승화하는 열린 마음에서 얻어진다고 가정한다면,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좋은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노력이 극단적인 애국주의에 갇혀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생각을 조금 더 일찍 했다면 내 교토 여행도 조금 더 알찬 기행이 되지 않았을까.




어느 모로 보나 지금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실제로 교토를 돌아다닐 때만 해도 이 여행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그저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데 정신이 팔렸을 뿐. 그래서 이날도 교토 시내를 좀더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나갈 생각만 가지고 숙소를 나섰다. 그렇다고 그것도 영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여섯째 날은, 교토 남부에 있는 우지와 후시미이나리에 가기로 했다.




우지에 가려면 JR을 타거나 게이한 전철을 타는 편이 낫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교토의 버스 시스템이 탈 만 했고 오히려 JR이니 게이한이니 한큐니 하는 일본의 전철 회사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전철을 타는 일은 없었지만, 교통비 때문에 이날만은 이용하기로 했다. 교통 패스가 없는 상태에서 기차를 타는 건 부담스럽고, 기온 산조 역에서 게이한의 우지-후시미이나리 원데이 패스를 샀다. 사실은 미리 사 두려고 셋째날 쯤이었나, 일부러 찾아가서 역무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원데이 패스는 탑승 당일에만 살 수 있다길래 운동한 셈 치고 그냥 돌아왔다. 그러니 이날의 여정은 원데이 패스를 사는 것으로 시작. 다시 찾아간 산조 역의 역무원은 그날의 친절했던 역무원이었고, 상대도 나를 기억해서 친절하게 한국어 팜플릿과 지도까지 주었다. 일본인들은 외국인이 조금이라도 일어를 하면 안도하는 게 눈에 보여서 재미있다.





훨씬 먼 우지까지 갔다가 후시미이나리에 들러 교토로 돌아오는 일정.




좀처럼 멍 때리지 않는 편이라 우지 가는 전철 안에서도 카메라를 만지작 만지작했다가 괜히 창 밖으로 시선을 두기도 했는데 역시 재미있는 건 사람 구경이었다. 그나마도 우지로 갈수록 한산해져 재미있는 구경은 못했지만...





우지는 녹차로 유명하다지만 1월은 녹차 계절이 아니어서 녹차 마을 우지를 보러 온 건 아니다.

이날은 오직 평등원(뵤도인)을 보러 왔다. 



우지 게이한 역에서 나와 우지바시를 건너면 평등원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일본이 자랑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더니 가는 길목마다 표시판이나 배너에는 전부 평등원, 평등원, 평등원... 너희는 평등원 밖에 모르는 바보. 여기서 평등원 못 찾아가는 사람도 바보일 것 같다.




출발은 늦었고 평등원을 보고 싶고 돌아가는 길에 후시미이나리도 들르고 싶고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이고.


우지 강변을 따라 걸으며 느긋하고 호쾌하게 흐르는 강도 감상하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제약이 있어 일단 평등원부터 가기로 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이제 와서 조금 아쉽다.





천하가 모두 나의 것이니 저 둥근 달처럼 모자람이 없어라



평등원은 11세기 일본의 권세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아들 요리미치가 아버지 소유의 별장을 불교 사찰로 뜯어 고친 곳이다.


일본 왕실에 딸 넷을 시집 보낸 미치나가의 저 굉장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이라면 평등원 공사에 쏠렸을 세간의 주목과 공사 자체의 권위를 대강 상상할 수 있다. 천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평등원 봉황당을 보니 충분히 짐작되는 바였다. 그래도 부자 둘이 권세를 허투루 쓰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당대의 예술적 역량과 기술이 총동원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따로 내야 하는 봉황당 관람 요금이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어 밖에서만 바라보았더니 평등원에서 볼 만한 것은 봉황당 뿐이었다. 종교 시설 치고는 화려해서 조금 거북했지만(왜 사람들은 사찰의 규모나 화려함과 신앙심이 비례하는 것처럼 생각해 왔을까. 내가 믿는 신이 그 어떤 신이라도, 더럽고 누추한 곳 그 어디에서나, 그 누구와도 함께 계셔야 진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11세기 일본의 한 건물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대로 볼 만 했다.

다만, 거꾸로 말해 지갑을 열었으면 봉황당 밖 말고도 안쪽을 보며 더 다채로운 경험과 상상을 할 수 있었을텐데. 멀리서 건너다 본 불상 말고는 볼 게 없겠거니 했는데 이것 역시 아쉽다.


날이 궂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바람까지 부는 날씨에 가냘픈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니, 조도 맞추는 건 둘째 치고 구도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10엔 동전과 평등원.


날씨 때문에 다니기 쉽지 않았지만 의외로 지금까지 다닌 곳 중 탑3 안에 드는 멋진 곳.




봉황당 앞에 한참 서서 사진을 찍다가 슬슬 돌아갈까 했는데, 봉황당 옆구리에 숨은 길이 있었다.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듯이 줄줄이 들어가는 걸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들어갔더니, 평등원의 감상관 봉상관이었다. 시간이나 때울까 하고 들어갔다가 봉황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상쇄시킬 만한 유물 감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종과 많이 닮았다 싶은 종이 있어 한참을 머물러서 들여다 보았더니 정말로 학계에서도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종이라고 한다.




평등원의 보물 전시관 '봉상관'은 감히 말하자면 교토 여행에서 만난 최고의 감상 공간이었다. 어두운 가운데서 은은하게 빛나는 평등원의 운중공양보살 26분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천년 사찰의 아름다움과 시간의 켜가 느껴져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온화하기도 하고 경건하기도 한 그 기분은 제주 추사관 이래로 처음이었다.

미적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곳이어서 평등원에 관한 책자를 사려고 지갑을 반쯤 열어는데, 일어로 된 것 밖에 없단다. 아쉬워서 그다지 별 볼 일 없는 기념품점을 한참 뱅뱅 돌았다.




기념품점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우연치 않게 봉상관 안에서 계속 마주쳤던 중국인 부부가 먼저 기념품점을 떠나고 있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엄마는 아기를 소중히 안고 아빠는 양손에 짐을 들고도 아이와 놀아주면서.


이때까지만 해도 후시미이나리에 들렀다가 야와타의 이와시미즈하치만구까지 가 볼 생각이었기에 시간이 빠듯해 보였다. 밍기적거리며 평등원을 나왔다.



나카무라 토키치의 요상한 녹차 젤리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우지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먹을 만한 곳이 있을까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굳이 맛집을 찾아 다니지는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행은 먹는 게 절반이라는데. 우지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뭔가를 먹고 싶어 전날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나카무라 토키치라는 가게를 알게 되었다(네X버 블로그에서 우지 맛집 관련 포스팅은 8,90퍼센트는 이 집 얘기인 것 같다. 모를 수가 없다). 고 3 때 과외 선생님이 사다 준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녹차 맛의 세계에 입문한 이후로 말차 라떼부터 녹차 케이크까지, 녹차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 게 없어서 끌리듯이 나카무라 토키치에 가 보았다. 나름대로 기대감을 높일 겸 일부러 우지를 한 바퀴 빙 둘러보고 찾아갔는데... 나카무라 토키치의 인장이 찍힌 걸개를 들어올리니 놀라웠다. 평등원 말고는 사람 찾아보기 힘든 우지인 줄 알았는데 이 동네 찾아온 관광객은 다 여기 모여있었다. 1시간은 기다려야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데 그 긴 줄을 보니 감흥도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지친 기색으로 기다리는데 기껏 들어가서 혼자 한 테이블을 차지하기도 미안했다. 그렇게까지 먹어야 할 건 아닌 듯 해서 나카무라 토키치 안 가게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랐다. 점원도 싹싹했고 가격도 나쁘지 않아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산 게 실은 녹차 젤리라는 걸 알 때까지. 녹차 향이 아주 희미하게 나는 투명하고 차가운 젤리에 아무 맛도 안 나는 경단과 팥을 섞어 억지로 먹어야 했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먹는 걸 버릴 수는 없어 우걱우걱 먹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 치게 되는 맛이었다.



#우지 #교토 #Day6 드디어 맑아졌다!




한날에 이곳저곳을 둘러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날은 꼭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 가야 하는데 내가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미련이 남아서. 1월 하순에 내리는 비였지만 우지는 약간 쌀쌀한 초겨울 정도의 기온이어서, 비가 그친 후에는 다니기도 좋았다. 좀 더 둘러볼 만한 게 있을텐데, 그럴 여건이 되는데. 전철 역까지 와 놓고도 그 앞에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후시미이나리 근처에 맛있는 라멘집이 있다는 글을 보고서야 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후시미이나리 가는 길. 여기서 내렸으면 어땠을까 싶다. 교토부 오바쿠에는 중국식 절 만복사(만푸쿠지)가 있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의의도 깊고 국내 인문서에도 소개된 곳인데 그걸 알면서도 왠지 빨리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지나쳤다. 이래서 원데이 프리 패스 이런 게 문제다. 괜히 빠릿빠릿 돌아다니지 않으면 본전도 못 뽑을 것 같고, 아무튼 사람 마음을 초조하게 몰아붙이는 감이 없지 않다. 다시 교토에 가게 되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오바쿠에 가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전철은 20여 분을 달려 후시미이나리에 도착했다.




후시미이나리 신사라고 하면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나 SNS에 올라온 사진 몇 장의 이미지가 전부였다. 역에서 내리면 어떻게 갈지도 알아보지 않았는데, 다소 한적했던 우지와는 다르게 후시미이나리는 역에서부터 사람으로 붐볐다. 이런 관광지에서 길을 모를 때는 역시 대세를 따르는 게 편하다. 머리를 비우고 다른 사람들 뒷통수만 보며 걸으니 후시미이나리 신사 근처의 상점가가 나왔다. 




유독 눈에 잘 띄었던 것은, 형형색색의 등산복이나 패딩 자켓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노인이나 아이까지 낀 무리가 많은 걸 보고 무심코 중국인 많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중국어(그리고 아주 가끔 한국어)가 들렸다. 상점에도 한국어와 중국어로 쓴 글귀가 자주 보이고 노점상들도 외국인 손님의 주문에 익숙했다. 콧대 높고 감정이 없어 보이는 일본인도 이런 모습이니, 문득 관광지 주변 상가는 어쩜 이렇게 다 외국인 친화적일까 싶었다. 파리 생 미셸에서 한국어로 주문을 받던 웨이터가 생각나서 속으로 웃었다.




신사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일본 전국에 퍼진 4만 2천여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으로 정식 명칭은 '후시미 이나리 대사(타이샤)'이다. 농경과 상업의 신, 이나리 신을 모신 신사로 신라계 도래인인 하타 씨에서 유래했다는데 그 유명한 센본토리이의 화려함에 관광객의 머리 속에서는 이런 유래가 묻혀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 영리하고, 잔망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이나리 신의 사자 여우를 볼 때나 여기는 그냥 관광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간간이 할 뿐.




후시미 이나리 대사의 센본토리이는 사람들이 사업 성공을 기원하며 하나씩 세운 기둥이다. 시주를 했다고 하면 적당할까, 아니면 공양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이름에서부터 그 숫자의 많음이 느껴지는 센본토리이(천 개의 토리이)는 산을 빙 둘러가며 늘어서 있는데, 산 정상까지는 2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사람도 너무 많고 굽이 있는 부츠를 신고 있어 오래 걷지는 않기로 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토리이를 따라 걸으며 과연 이게 천 개로 끝나기는 하는 걸까 의심스러웠다. 사업의 대흥과 성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다들 소원을 이루었을까.



#후시미이나리타이샤 #센본도리이 근데 천 개보다는 더 많아 보인다...? #교토 #Day6



일본 특유의 이 적갈색에 눈이 어지러웠다. 나름 각오하고 걸었는데, 눈도 피로하고 도저히 산 중턱까지도 갈 자신이 없어서 도중에 돌아 내려왔다. 본전 근처에는 이렇게 소원을 비는 곳이 있어 사람들이 여우 모양의 나무 패에 소원과 이름을 적어 걸어놓는다.





나는 일본 신사에서 소원을 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애써 여유로운 척 하려고 해도 한국 사람으로서 '신사'라는 이름도 어쩐지 거북하고, 그런 곳에 소원을 빈다는 건 딱히 하고 싶은 행위가 아니었다. 무슨 미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도 아니라 기대한 것보다는 단조로워 하타 씨와 관련이 깊다는 것만 다시 한 번 머리에 새기고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그 맛있다는 후시미 이나리의 라멘집은 결국 찾지 못했다.

타코야끼만 하나 달랑 사서 역으로 돌아가며 먹는 그 처량함이란...





흔히 알고 있는 교토는 사실 교토 시, 그것도 시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교토'라는 이름은 교토 시 주변의 다른 시까지 아우르는 지방 행정 단위에도 붙어 '교토 부'라고 불린다. 교토 시에 살지 않는, 교토 부 내 다른 도시의 주민들이 '교토'와 어느 정도의 정신적-문화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사실 알고 보면 교토 부 교타나베 시 출신인 사람은 교토 사투리를 쓰는지, 그 사투리가 교토 시에 사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로 닮아있는지...). 하지만 확실히 다른 점은 교토 시를 벗어나면 더없이 조용하고 느긋한 시골 마을이라는 것이다. 우지나 후시미이나리 모두 관광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키가 작은 주택들이 모여있을 뿐 특별히 큰 상가나 빌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후시미이나리 역에서 전철을 타고 교토 시로 향할수록 전철 안이 조금씩 붐비는 걸 보면서, 솔직히 우리는 교토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진짜 교토는 어디까지일까. 교토 시에서 30분이면 닿는 우지와 후시미 이나리를 슬렁슬렁 걸으며, 여섯 번째 날이 이렇게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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