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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이란 무엇일까.


결코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은 아니다. 다만 혼자서 훌쩍훌쩍 떠나는 일을 매번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할 뿐이지.

혼자 자주 다니다 보니 남들보다 생각할 시간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이 여행은 뭘까, 이 여행 후에 나는 뭔가 달라져 있을까.

처음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그 전보다 더 적극적이고 밝아지기는 했다. 조금 달라진 나 자신이 새로워서 그 이후로는 여행을 떠나기 전이면 또다시 그렇게 새로워지기를, 어딘가 달라져 있기를 바라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덫에 빠져버렸다. 여행 직후 찾아오는 리프레쉬된 기분에 들떠서 언제부터인가 '이 끝에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뭔가 스스로 생각하거나 깨닫는 게 없다면 이 여행은 실패한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변화를 위한 변화. 일상 속에서 권태로워지고 나태해지는 나에게 실망해서 달라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때면 언제나 여행만 고집했고, 여행지에서 억지로 즐기는 기분이 들 때는 조급한 마음마저 들어 이탈리아에서"나 왜 여기 와 있는 거지"를 혼잣말처럼 읖조리곤 했다. 여행을 예찬하는 사람들의 명언을 볼 때는 왜 나는 그 사람들이 발견한 여행의 매력을 못 느끼는 거지라고 초조해 하기도 하고.

그냥 집을 떠나는 것 자체가 좋았던 건 아니었을까? 이대로 돈을 쓰고 시간을 아껴 떠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대체 뭐 때문에 여행하는 거지.




#2. 나는 어떤 사람이지.


지난 1년 반 남짓한 시간동안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는 충분했지만 실제로 내 안을 침잠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너무 피곤해, 라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을 피해 다녔다.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안의 나와, 내 밖의 사람들에게서 계속해서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회피했다. 대답하는 것이 귀찮았고, 무기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지금 내 힘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그리고 이룰 수 있을 때까지 견딜 수 있겠는지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까봐.


회피함으로써 몸과 마음은 편해졌지만 그 사이 나는 더욱 나를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무기력의 반복. 내가 나를 규정하지 못하게 되자 내 안의 중심이 사라졌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규정하는 말에 너무 쉽게 휩쓸리면서 자학하는 일만 늘었다. 그럴수록 다시 자기 불신이 강해지고, 다시 도망치고...



"불합리한 것이나 억지 등 여러 가지 일에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할 때가 있지. 그것이 건축가의 일이야. (...) 우치다 군은 셔터를 내려버리니까 말이야.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무감각하게 해 놓고 불합리하거나 억지를 잠자코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어. 자기가 다치지 않고, 잘 흘려보내기 위한 방위책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래서는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결과가 되거든. (...)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하고 싶지 않은지, 점차 모르게 돼. 알겠나? (...) 말도 안 되는 것에 밀릴 때도 있겠지. 상대방이 있는 일이니까. 다만 마지막에는 밀린다 해도 자기 생각은 말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이 아무 데에도 없게 돼.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조차 더듬어 갈 수 없게 된다고."

- 마쓰이에 마사시,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중



이래서는 여행을 한다 해도 변화할 내가 남아있지 않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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