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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시간이 넘는 고된 비행. 나이가 들수록 장거리 비행이 버거워진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고되다는 느낌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여행 더 많이 다녀야겠네.


내가 탄 비행기는 날고 또 날아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도착했다.


옆 자리에 앉은 홍콩 아저씨가 내 큼직한 보라색 배낭을 내려 주었다. 눈짓으로 인사하고 다시 배낭을 메는데 이놈의 배낭 어찌나 큰지ㅋㅋㅋ 배낭을 멘 건지 배낭에 업혀가는 건지ㅋㅋㅋㅋㅋ 몸통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통통 뛰는데 다른 사람이 이러고 가는 걸 봤으면 내 눈에는 꽤 귀여워 보였을 것 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


공항 벤치에 앉아 지갑을 꺼냈다. 유로 쓸 준비를 마치고 배낭에 자물쇠를 달려는데 아.... 고장났는지 열리지가 않는다. 끄허엉ㅠㅠ 자물쇠 딱 세 개 가져왔는데ㅠㅠ

난감해 하다가 바로 눈에 띈 잡화점에 들어갔다. 뿔테 안경을 쓴 깐깐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자물쇠를 보여주면서 비슷한 자물쇠가 있냐고 물었다. 아주머니가 보여준 자물쇠에서 적당한 걸 골라 계산하려니 이거... 14유로짜리였다ㅋㅋㅋ 오자마자 어이없이 돈 쓰네.


돈을 찾으면서 "이탈리아어로 20은 뭐라고 해요?"라고 물었더니 "비엔띠"라는 답이 돌아왔다.

보다 정확하게는 "비엔띠 에우ㅜㅜㅜㄹㄹㄹㄹㄹ로"를 0.7초 내에 말하는 듯한 발음ㅋㅋㅋ 있는 힘껏 혀를 굴려서 "비엔띠 에우ㅜㅜㅜㅜㅜㅜㄹㄹㄹㄹㄹㄹㄹ로"라고 따라하며 20유로 지폐를 건넸더니 아주머니가 '얘 봐라?'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돈을 거슬러 주었다. 챠오, 챠오라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언어의 힘이라는 게 정말 대단하다. 여행하는 나라의 말에 아주 약간의 관심만 보여도 단번에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매번 신기하다.


밀라노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를 탔다. 집을 떠난 이후로 제대로 못 자서 배낭을 꼭 안고 꾸벅꾸벅 졸았다. 옆에서 종알대는 꼬맹이 목소리 덕에 희미하게나마 정신줄은 잡고 있었다.




밀라노 중앙역 도착.


기차에서 내리니 공기가 후끈했다. 건식 사우나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 졸려서 쌍꺼풀이 진해진 채로 잡화점에 들어가 물부터 샀다. 계산대에 진열된 잡지 중에 이코노미스트 표지가 눈에 띄었다. 브렉시트 직후여서 브렉시트 이야기가 커버 스토리인 모양이었다. 관심이 가서 하나 집으려고 보니 7유로인가 8유로인가. 가격을 보고 바로 내려놓았다.


물통을 쥐고 전광판을 살폈다. 미리 예약해 둔 피렌체행 기차는 30분 후에나 출발한다. 야무지게 표를 뽑아두고 전광판 앞만 지키고 서 있는데 웬만큼 한 번씩 들어본 이탈리아 유명 도시들의 이름이 줄줄이 떴다. 피렌체, 나폴리, 로마, 피사, 베로나... 다 가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시간이.


기차가 떠날 시간 5분 전에야 플랫폼 번호가 떴다. 통통통 달려가서 기차를 찾아 착석.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다시 또 잠이 솔솔 밀려왔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귀중품이 든 것도 아닌데 가는 내내 그 큰 배낭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앞쪽에 앉은 일본인 아주머니들이 "피사 가려면 이 기차인가"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같이 여행 온 사람이 있으면 짐 맡기고 편하게 졸텐데, 하면서 설핏 잠들었다. 밀라노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밖에 안 되었는데 또 피렌체로 떠난다. 기회가 되면 제대로 보자, 밀라노.






피렌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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