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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삿포로·오타루 여행 정보를 알고자 하신다면 뒤로가기를 살포시 눌러주세요. 이건 제가 왜 오타루를 끝까지 싫어할 수 없었는지를 주절주절 떠든 글이랍니다.



다행히 이시미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간판은 이시미즈인데 왜 차양은 와키사카야ㅋㅋㅋ


가게 안은 상당히 좁았다. 손님은 많아야 한 번에 여덟 명 정도 받을 수 있을까? 워낙 작은 가게라 문을 여니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어디 부딪칠 새도 없이 바로 나한테 꽂혔다. 헉 이런 주목은... 스페인 오지를 여행할 때 이후로 처음이야ㅋㅋㅋ

사장님이 "이랏샤이마세~"라고 호쾌하게 맞이해 주었다. 엉거주춤하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어쩌다 보니 사장님 정면이네.

갑작스러운 주목과 인사에 당황한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사장님이 눈치 빠르게 바로 음식 사진이 있는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다. 해산물이 싫어 "생선 이외의 것이 있는 덴뿌라로 주세요"라고 더듬더듬 말하니 "그럼 채소 덴뿌라 밖에 없는데요?"라면서 사장님이 웃었다. "아, 그, 그걸로 주세요"라고 소심하게 주문.


새벽 공항에서 먹은 샌드위치와 비행기 안에서 먹은 주먹밥 말고는 먹은 게 없는데 시간은 벌써 세 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고소하고 기름진 튀김 냄새에 어지럼증을 느끼다가 정줄을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에서는 남자 세 명이 덮밥을 요란스럽게 먹고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아주머니 두 분이 우아하게 식사 중이었다. 사장님이 그때그때 튀김을 튀겨서 아주머니들 앞에 놓아주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훑어먹던 남자들이 나가자 가게가 조용해졌다.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사장님과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훔쳐 듣게 됐다.


사장님 딸은 올해 몇 살이죠 아직 학생이던가? 쉬는 날인데도 가게에 나와서 아빠 일 도와주고, 참 착해요 네, 제가 참 고맙죠

우리 남편은 여기 튀김 아니면 먹지 말라고 해요 그렇지, 이시미즈 튀김이 맛이 깔끔하잖아 응, 신선하지 하하 고맙습니다 이건 제 추천 메뉴에요


등등.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에요, 들리기에 들었을 뿐이지... 어디 다른 곳으로 자리 피해줄 수도 없고, 라디오를 틀어서 더 큰 소리로 수다 소리를 묻어버릴 수도 없고... 외국인이라고 내 앞에서 마을 이야기, 가족 이야기 거침없이 하시는데 웃음 참느라 혼났다.



사진만 봐도 침 나오는 내 덴뿌라.


사장님이 바로바로 튀겨서 차려주는 튀김은 기가 막혔다. 내가 아는 튀김은 바삭한 튀김옷을 입어 가끔 식기라도 하면 질겅질겅 씹어 먹어야 하는 음식인데. 그래서 가끔 입 천장이 튀김옷에 상처 입기도 하는 꽤 난폭한 음식이었는데, 이시미즈는 정말... 와.

어떻게 입에 들어가마자 사르르 녹죠? 말 그대로다. 입에 튀김을 넣자마자 꼭 솜사탕을 베어문 듯이 금방 사르르 녹아서 없어졌다. 그러면서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서, 호박은 호박대로, 새우는 새우대로 그 식감과 맛이 그대로 입 안에 남았다. 정말 감탄스러운 맛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오타루에서 쌓인 불만이나 실망도 같이 날아가는 듯 했다. 이 식당 어디 있는지 끈질기게 알아낸 보람이 있네. 오타루 인포 안내인님, 감사합니다. 네XX 블로거 분들도요. 복 받으실 거에요!


밥에 간장을 너무 많이 쳐 주셔서 좀 짜긴 하더라만, 그거야 같이 나온 미소시루를 먹으면 될 일이다. 아, 그런데 숟가락을 안 주셨네. 그러고 보면 아까 남자들도 젓가락으로 밥알을 주워(?) 먹느라 그렇게도 후루룩 소리를 냈던가 보다. 일본에서는 숟가락을 잘 안 쓴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애초에 소리 내서 밥 먹는 걸 질색하는 나는... 도저히 그렇게 먹을 수가 없었다ㅠㅠ

결국 용기 내서 한창 수다 떨던 사장님에게 "혹시 숟가락 주실 수 있나요? 국 어떻게 먹어요?"라고 물으니 사장님이 숟가락을 찾으면서 "한국인?!"이라고 되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국을 들고 마시지 않아서 항상 숟가락을 찾는다며ㅋㅋㅋ

그 말에 빵 터져서 "한국 사람은 원래 그릇을 들고 식사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까 남자 분들 보면서 나는 어떻게 먹어야 하나 조금 고민했어요"라고 대답하며 사장님이 주는 티스푼만 한 숟가락을 받아들었다.


방금 전까지 쭈구리처럼 앉아서 혼자 얌전히 밥 먹던 외국인이 의외로 길게 대답하니 사장님과 아주머니 손님들이 흐에에, 라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한 분은 엄마 웃음을 지으시고. 넉살 좋은 사장님이 "한국은 그렇구나, 일본은 그 반대야"라고 맞장구 쳐 주어서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순간 달라지던 그 분위기가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긴다.


씩 웃고 미소시루를 떠 먹는데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엄마 웃음을 짓고 나를 보던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혼자 왔어요?"

그렇다고 대답하니 그때부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왜 혼자 왔냐, 오타루는 처음이냐, 일본은 처음이냐, 일본어는 어디서 배웠냐, 아까 우리가 한 얘기 다 알아들었겠네, 창피하다 ("갠차나여")... 식사를 할 때는 밥에만 집중하는 편이지만 나도 의외의 말동무가 생겨서 신나게 대답했다. 이 작은 곳에 한국 사람 혼자 오다니, 신기하다는 아주머니 말에 문득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


"죄송한데 오늘 일본 연휴에요?"


그게 아니라면 '이 작은 곳' 오타루가 북새통인 걸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에 앉은 친구에게 하시는 말씀, "응응. 오늘이 마지막 날이지?".


나중에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정말 그날은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9월 21일 경로의 날 (敬老), 9월 22일 국민의 날 (休日), 9월 23일 추분의 날 (秋分) 같은 공휴일이 주말과 함께 줄줄 한 큐에 꿰인 실버위크. 하하.


역시.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안 그래도 중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이 작은 마을에 일본인들이 연휴의 끝을 불태우는 마지막 날에 눈치없이 놀러와 놓고 사람 많다고 불평했던 셈이다. 어쩐지. 아, 그래도 오타루는 인문 여행 하기에는 별로라는 내 생각을 철회하지는 않을 거야.


혹시 이 길고 재미없는 글을 쭉 읽는 분이 계신다면, 그리고 우연히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골든위크와 실버위크 등 일본 연휴가 언제인지 반드시 미리 염두에 두시고 여행 계획 짜시길 바랄게요. 멋 모르고 갔다가는 저처럼 사람 구경만 하고 오실 수도 있으니.

(아 그래... 내 잘못이네)


그 말에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가 오타루는 어땠냐고 물었다. 거기다 대고 나는 "예쁘다고는 생각하는데 조금 작아서... 겨울에 왔으면 더 좋았으려나, 좀 실망했어요"라고 쓸데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뒤늦게 아차 싶어서 여기 분이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실례했습니다ㅋㅋㅋ" "아니야, 괜찮아ㅋㅋㅋㅋㅋ"


거의 코스 수준으로 튀김을 즐기시는 두 분과는 달리 나는 몇 번 더 열심히 숟가락질을 했더니 그새 그릇이 비워졌다. 내가 많이 배고팠던 모양이야 허허. 밥을 다 먹고 주섬주섬 전철 시간표를 꺼내 사장님에게 이 한자가 출발이라는 의미냐고 물었다. 제가글자를읽어서요...

사장님과 아주머니들의 도움을 받아 전철 시간표를 해석하고 보니 마침 한 시간 후에 떠나는 전철을 타면 될 것 같았다. 바로 자리를 떠야 짐도 찾고 이것저것 볼 일도 다 보고 여유롭게 전철을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싹싹한 사장님 딸에게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열었는데, 그때 함께 수다를 떤 아주머니가 "바이바이 :) 키요츠케떼네"라고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아, 그때의 감동이란.



이시미즈는 대충 이런 분위기.


별 거 아닌 인사 한 마디에도 쉽게 감동할 만큼 나는 오타루에 질려 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걷고, SNS에 올릴 인증샷 몇 장 찍고, 사카이마치를 걸으며 먹을 만한 게 뭐가 있나 들여다 보는 일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여기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 몇 마디를 나누는 이런 작은 즐거움이 그간의 지루함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사람 사는 모습을 보러 왔으니 사람과 말을 섞고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게 더없이 기쁘고 즐거웠다. 그 짧은 몇 분이 어찌나 좋았는지, 오타루 역으로 돌아가는 동안 머리 속에서 몇 번이고 대화를 되감아 재생하면서 계속 실실 웃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실까. 그분의 마지막 인사 때문에 내가 오타루를 아주 싫어하지는 못하게 됐다는걸?


이런 게 여행하는 재미지.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그 사람들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못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사람들과 '통하'는구나, 사소한 말이나 행동으로나마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감한다는 거지. 난 이런 경을 할 때마다 기분이 째질 것 같다. 입이 귀까지 걸리고 괜히 뿌듯해지고.


그렇게 혼자 신나하다가 길을 잃었다.



여기가 어딘교.


분명 오타루 역으로 가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웬 상가다. 사카이마치는 아니고, 여기가 어딘교. 지나가는 할머니를 붙잡고 여기가 어디냐고 여쭤봤더니 "미야코도리 상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이 작은 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냐고...ㅋㅋㅋㅋㅋ 제가 이래요. 그래도 신은 나에게 방향 감각을 앗아가신 대신에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어보 뻔뻔함을 주셨지.



길을 잃어버리기 직전에 지나친 구 테미야선 철길.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이고 일본에서는 세번째로 개통된 철길이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었다 (대충 때려맞춤).

메이지 13년이던 해에 개통했다는데 1880년이면 우리는 통리기무아문 설치했을 때네.

...일본에 관한 것을 보노라면 항상 우리 역사와 비교하게 된다. 그 이후의 시간이 떠올라서 씁쓸하고 마음 아플 뿐.


4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오타루의 늦더위는 가시지를 않았다.

이제는 트렌치 코트가 문제가 아니라 입고 간 블라우스에 땀자국이나 안 나면 다행이다.

돌고 돌아 겨우 오타루 역에 도착.



#のりば_일본어로_타는곳_aka승강장

외국에 나오면 이게 좋다. 사방팔방 그 나라 말 배울 것으로 천지라는 게.



삿포로 역으로 가는 전철 안은 올 때와는 다르게 사람으로 가득했다. 하마터면 그 배낭 짊어지고 서서 갈 뻔.

오타루에서 삿포로까지는 40분이면 간다.

자리에 앉자마자 곯아 떨어짐.


여기서부터는 귀찮으니 사진으로 때워야지. 별다른 사건도 없었고 자느라 생각할 시간도 없었고.



삿포로 역에서 숙소가 있는 역까지 새로 표를 샀다.


삿포로 역은 엄청나게 커서 정신없었다.

매표기는 (당연히)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암튼 알아볼 수 있는 외국어 모드로 바꿔서 이용 가능.


아아, 졸려 죽겠다.




목적지 역에 도착했는데 길을 잃어버렸다.

지도를 봐도 모르겠네




다시 방향 가늠한답시고 원래 내렸던 플랫폼까지 걸어가서 역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여러 번...

드디어 맞는 출구를 발견해서 빠져나옴. 미노스의 미로인 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피곤해서 편의점에서 대충 음식 사다 먹고 잤다.

이렇게 오타루 다녀와서 바로 뻗어버린 삿포로 여행 첫날이 지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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