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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삿포로·오타루 여행 정보를 알고자 하신다면 뒤로가기를 살포시 눌러주세요. 이건 제가 왜 오타루를 싫어하는지를 주절주절 떠든 글이랍니다.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두렵네요.



나는 원래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밥은 배고플 때나 먹는 거라는 개념이 확실히 박혀 있는 데다 입도 짧고 먹는 양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만큼 단 하나를 먹더라도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성의없이 차린 밥상이나 맛 없는 음식은 용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삿포로 여행을 준비할 때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맛집이었다. 며칠을 바쳐 꼼꼼히 검색해 본 바, 오타루를 여행한 한국 블로거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고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맛집 중 하나로 이 이시미즈라는 튀김집이 꼽혔다. 외출에 더 가까운 이 짧은 여행에서 조금의 실패도 남기고 싶지 않았던 나는 오타루에 가면 반드시 이 집에 가겠다고, 비행기를 타기 한참 전에 이미 단단히 마음 먹고 온 상태였다. 공항에서 시내 가는 법은 모르면서 밥집은 제대로 알아오고, 하하.


다행히 내가 만난 이 안내인은 '난 이시미즈를 원해요. 아무리 다른 식당 추천해 줘도 소용없어요'라고 온몸으로 말하며 타협을 거부하는 내 태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이름을 바꿔버린 이 식당을 찾아줄 만큼 친절했다. 어쩌면, 상냥해... (하트) 그녀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오타루 식당가의 팜플렛을 뒤적였다. 그 사이에 또 말을 걸고 싶어진 나는 이렇게 물었다.


"오타루는 원래 이렇게 조용해요?"


한참 부스럭거리던 안내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겨'라는, 딱 그 표정으로.


"아뇨. 조용할 리가 없는데..."


나야말로 이 언니가 지금 뭐라는 거라고 되받아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싶었다. 아무리 작은 바닷가 시골 마을이란 걸 알고 왔어도 이 정도로 사람 얼굴 구경하기가 힘들 줄은 몰랐구만. 하지만 이때 알았어야 했어, 내가 틀렸다는 걸. 다시는현지인을무시하지마라


안내인에게 꾸벅 허리 굽혀 인사하고 인포를 나왔다. 그녀의 설명대로라면 '와키사카'로 이름을 바꾼 이시미즈는 메르헨 교차로 방향으로 걸으면 나오는 오타루 운하 근처에 있을 터. 그 반대 방향으로 흘깃 눈을 돌려 볼 만한 게 없는 걸 확인하고 오타루 운하 쪽으로 걸었다.


인터넷에 오타루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상위 이미지로 뜨는 오타루 운하 사진. 솔직히 그걸 밥보다도 먼저 보고 싶었다. 근데 글쎄.



오타루 운하. 끝.


오타루에 다녀왔다고 하면 대부분 거기가 어디냐고 묻긴 하지만, 오타루 운하 사진을 구글링해 보여주면 친구들은 "아아, 여기! 예쁘다! 어땠어? 이렇게 예뻐?"라며 운하의 아기자기하게 예쁜 풍경에 감탄했다. 그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아 풍경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지만 어차피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는 내 글인데 솔직하게 좀 말하자. 별로야.




운하 옆 수변길은 한 발 내딛기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가뜩이나 넓다고 할 수 없는 길 한쪽으로는 이름 없는 화가들이 이젤을 펼쳐놓고 운하의 풍경이나 관광객들의 커리커쳐를 그리고 있었고, 그 앞을 관광객들이 분주하게 오갔. 그 와중에 서로 사진 찍어주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카메라만 들면 주위에 무슨 결계라도 쳐지는지, 그 옆은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가던데 나도 셀카 찍는 척이라도 할걸 그랬나.


기차역에서 본 사람들이 죄다 어디 가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말에 인포 안내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이해되고. 으아, 정신없어. 조용하다 못해 인물 하나 없는 풍경화 속으로 걸어들어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는데 순식간에 도떼기 시장 한복판에서 엄마 잃은 미아가 된 느낌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조금 더 있길 바랐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ㅋㅋㅋ 지나가는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여 보니 중국어가 가장 많이 들리고 그 다음이 일본어다. 여기 한국어나 영어 쓰는 사람은 없어요?ㅠㅠ 아니, 그 전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홋카이도는 일본 사람들도 여행 삼아 멀리서 오는 곳 아닌가?


나도 그 시장통에 내 몸뚱아리 하나 더 우겨넣은 셈이지만 내가 생각한 삿포로 여행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운하 수변길은 어찌나 짧은지, 화가들 그림이나 사진을 구경하면서 걸었는데도 10분도 안 되어서 길 끝에 다다랐다. 허무할 정도여서 어이없어 웃음만 나더라.

내가 무슨 4대강 녹조 낙동강급 스케일을 바란 건 아니다. 하지만 폭이 2,30미터, 길이는 200미터 남짓한 개천을 갖다 놓고 오타루 명소로 홍보하는 건 너무 하잖아. 문득 파리 생 마르탱 운하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가이드북에 낚여서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갔다가 발품만 열나게 팔고 왔던 기억도 스멀스멀. 아, 아니야. 오타루가 더 심해. 그나마 생 마르탱은 길고 주위로 카페나 바도 늘어서 있어서 나름 운치라도 있었지. 산책하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오타루는 스케일도 실망스럽고, 시장통인 것도 놀랍고, 무엇보다도 별 볼 일 없는-운하 옆으로는 예전에 쓰던 창고와, 창고를 개조한 식당가가 전부였다- 빈약한 콘텐츠에 금방 지루해지는 곳이었다.


아, 그래. 콘텐츠가 문제였어. 사람 많은 건 부차적인 문제였을 지도. 여기저기서 손님이 많이 모여드는 거야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오타루를 전세 낸 것도 아니고 그냥 많고 많은 관광객 중 하나일 뿐인데. 오히려 마을 하나를 전세 내서 나 혼자 즐긴다는 발상이야말로 웃긴 일이지. 하지만 즐길거리, 볼거리가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내가 중국인, 일본인 뒤통수나 보고 국적 따라 사람들 옷차림도 다른가, 그거 관찰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잖아.


한편으로는 이 작은 마을, 이 조그마한 하를 이렇게도 팔아 먹는구나, 난 여기에 홀랑 낚여버렸네 싶어 헛웃음이 났다. 일본 사람들이 사소한 것도 호들갑 떨어가며 잘도 포장해서 미화하다 못해 왜곡하기까지 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거 하나 보려고 나를 포함해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 있다고 생각하니 약오르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길 한복판에서 깔깔 웃어버렸다. 아, 정말 대다나다. 웰컴 패스처럼 관광객의 동선을 파악 또는 유도하는 그 치밀함부터, 별 거 아닌 개천을 홋카이도의 대표 관광 명소로 개발하는 기가 막힌 창의성까지, 한국관광공사 직원들이 여기서 배울 게 한둘이 아니다. 일본에 공무원 연수라도 시켜야지 안 되겠어 하하.


... 그래... 그래도 내가 아직 구경을 덜해서 그런 거겠지. 더워서 짜증나는 거겠지. 다른 곳도 가 보자.


오타루 상가는 좁은 길을 따라 먹거리를 파는 가게와 크고 작은 기념품 가게로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건 키타카로와 르타오.




홋카이도 버터를 이용해 만든 바움쿠헨으로 유명하다는데 그래선지 출입구를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보니 실내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둔 르타오.

더웠는데 잘 됐다. 땀 식히고 가야지.




갈증을 참지 못하고 사 먹은 르타오 아이스크림.

420엔이니 우리 돈으로는 사천원이 넘는데 비싼 값을 한다. 아이스크림에서 진한 우유 맛이 났다.


운하에서 실망하고 키타카로와 르타오에 와서 마음이 좀 풀렸다. 역시먹을걸쥐어줘야. 하지만 여전히 오타루에 '잘못 왔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메르헨 교차로까지 이어지는 오타루 상가 카이마치도리(堺町通り)사람으로 붐비기는 했어도 그거야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불평할 일도 아니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고. 다만 상가 대부분을 차지한 음식점은 고만고만한 음식을 팔았다. 게라든가, 게라든가, 게라든가. 가끔 가다 버터 바른 옥수수나 소프트 아이스크림 정도? 중국 관광객처럼 보이는 10대 아이들이 옥수수 꼬치를 들고 다니면서 먹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우유와 해산물로 유명한 홋카이도이니 메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다 똑같은 음식, 고만고만한 메뉴를 파는 곳에 와 있으려니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속으로 조금 투덜거렸다. 일단 나부터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있잖아. 내 옆 벤치에 앉아서 건너편에서 가족이 게를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저씨도 어쩐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하하.


일단 더 걸어보면 뭐 더 볼 게 나오려나?



메르헨 교차로에 서 있는 오타루 오르골당 본관.


상가를 따라 쭉 걷다 보니 메르헨 교차로가 나왔다. 교차로 한쪽에 우체국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길래 우표와 엽서를 사려고 갔더니 눈치를 보아하니 여기는 그런(?) 우체국이 아닌가...? 사람들이 안에서 ATM을 쓰고는 있는데 우편 업무는 안 보는 듯 했다. 그대로 문워크해서 돌아 나왔다. 아, 친구한테 삿포로에서 엽서 보내준다고 했는데.


여행자에게 우체국(하다 못해 우체통이라도), 우표, 엽서는 중요하다. 가장 싸게 먹히면서도 가장 낭만적인 여행 선물일 뿐만 아니라 여행 기록 차원에서도 의미가 상당하다. 실제로 여행지에서 자기 자신이나 지인에게 엽서를 보내는 젊은 여행자들도 많고... 가끔은 나보다 더 늦게 집에 도착하는 내 엽서를 받아보면 그 종이 한 장만으로 다시 여행의 추억에 빠져드는데 의외로 이런 낭만을 몰라, 사람들이. 빈에서도 우체국 하나를 못 찾아서 결국 파리에 와서야 엽서를 부칠 수 있었는데 우표 한 장 얼마나 한다고, 라고 우습게 보지 말고 어떻게 하면 우표 한 장이라도 더 팔아볼까 이런 생각을 해 봐요. 땅 파 봐라 돈이 나오나.


조금 감성적인 여행 마케팅을 하고 싶다면 지자체마다 소장하거나 선물하고 싶은 디자인의 엽서를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역 한정 우표를 만드는 건 어떨까. 우체국은 뭐 하냐, 나 안 데려가고.



오르골당 맞은편 시계탑. 2시 정각이 되니 뿜빠뿜빠 시간을 알려주었다.

침착한 척 글을 쓰고 있지만 저거 찍을 때는 엄청 놀랐다. 갑자기 큰소리가...


그 유명한 오르골당에도 들어가 보았다. 가족과 친구에게 선물할 만한 오르골이 있을까 해서. 특히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선물을 안겨다 주는 친구 J를 생각하며 좋아할 만한 게 있을까 해서 살펴보았지만... 가격의 양극화가 심하다. 웬만한 오르골은 오천엔 이상? 달랑 만오천엔만 들고 일본 간 나(그래 내가 좀 궁상맞지)로서는 엄두가 안 나서 살포시 내려놓았다. 치, 친구야, 미안. 그래도 내가 저번에 파리에서 화장품 사다 줬잖아. 그걸로 조금만 퉁치자.


게에 있는 오르골이란 오르골은 다 쓸어갈 기세로 담고 있는 중국인들을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하네.


그런데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고. 아, 내가 잘못 찾아왔네. 

머리 속 바다에서 딱 이 말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듯 했다.


내가 이 초저렴 궁상 여행을 합리화할 수 있었던 것은, 거리를 걸으면서 풍경을 만끽하고 사람들 사는 모습을 눈에 담겠다는 나름의 여행 취지 덕분이었다.

오래 된 도시에는 거리를 걸어도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수백년간 매일 거닐었을 거리에는 작은 벽돌 하나조차 허투루 그 자리에 놓여있지 않다. 서울에는 서울 사람들이, 파리에는 파리 사람들이, 뉴욕에는 뉴욕 사람들이 살면서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건물을 쌓아 올리고 거리를 닦고, 그 주위로 그곳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선다. 그야말로 사람들의 삶이 도시 곳곳에 스며 들어있는 셈이니 그런 곳에서는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해도 볼 것도 생각할 것도 많다.


하지만 오타루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풍경은 어떨지 몰라도, 애초에 작고 운치있는 마을이었을 이곳은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관광객에게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 현지 특산물 위주로 상가가 재편되고 마을 내 주택 지역과 상업 지역이 재배치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오르골이나 초콜릿도 여기서 만들어서 외지인들이 가져다 다른 곳에서 팔았겠지만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 마당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겠지. 오르골과 초콜릿과 치즈 케이크를 쌓아둘 창고가 아니라 오르골과 초콜릿과 치즈 케이크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팔 곳이 필요해졌을 거. 그것들을 만들고 옮기고 보관하는 사람들은 파는 사람들로 그 모습을 바꾸었을테고.

그러니 내가 잘못 생각한 셈이다. 미식가가 아니니 홋카이도 게나 스시를 먹을 일도 없고, 돈이 없으니 기념품을 쇼핑하는 재미도 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산책하는 재미로 왔지만 오타루 운하는 기대 이하이고.


그렇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마인드로 생각하다가 그냥 이 마을이 싫어졌다. 여기 와 있는 나도 한심해졌고.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메르헨 교차로에서 걸음을 돌려 사카이마치를 다시 걸었다. 이렇게 된 거 이시미즈나 건지고 가자.



밥을 먹기 위한 여정은 진짜 다음에 つづ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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