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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록/영화: Movie

[위플래쉬] 열정의 희생으로 피어난 독선. 이런 삶을 원해요?


극장에서 나와서 조금 시간을 갖고, 다시 영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객관적으로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간단히 얘기하자면, 몇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영화를 보면서 했던 내 생각 그대로가 나에게는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재능있는 삶은 그 자체로 축복이기도 하지만 저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삶의 전부를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있는 열정적인 삶-플레처와 앤드류는 "I'm here for a reason"이라고 말한다-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왜? 그렇게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찰테니까. 한창 삶의 의욕으로 가득한 젊은이라면, 아니, 고만고만한 삶을 사느라 언젠가 가슴 속의 열정을 잃은 우리 중 대다수는 그런 불꽃 같은 삶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그리고 그 삶이 저마다 정한 최선의 가치로 보답받아 삶을 완성하는 것을 볼 때의 대리만족 역시 강렬하다.


슬프게도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받을 기회는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지만 말이지.


그 기회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건 타고난 재능을 가졌을 때의 이야기이다. 재능은 그 열정을 불살라서 그에 맞는 보상을 받아낼 수 있는 능력, 말하자면 그건 선택받은 사람이 받는 갖는 일종의 특권이다. 그리고 재능은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기울여도 여간해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평범할수록 그리고 자신의 한계와 재능 사이의 간극이 넓을수록 그것을 뛰어넘을 때 느끼는 쾌감은 진해진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자신이 남들과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고 느끼고 있었을) 대부분의 관객이 앤드류의 극적인 변화에 감동하고 희열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걔가 평범한 소년에서 무대를 장악하고 밴드를 압도하는 드러머로 변신한, 그 광적인 모습이 좀 드라마틱했어야지.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어떤 오류가 숨어있는데, 그건 "최고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이다.

극중 앤드류는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데 여자친구가 방해될 뿐이라며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썸녀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끝내버린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상처주면서. 어렵게 잡은 밴드 드러머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공연장에 나타난 건 또 어떻고. 진부한 이야기겠지만, 그런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삶에서 목표를 이룬다 한들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꿈이 한풀 꺾였을 때 앤드류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돌이켜 본다면 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모두가 꿈꾸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재능있는 자는, 한편으로는 거의 필연적으로 독선과 이기에 빠질 수 밖에 없어 외로운 자이기도 하다.




[위플래쉬]에는 앤드류 혼자 그 광기와 고독을 피워낸 게 아니다. 여기에는 플레처라는 사람이 있어서, 앤드류 안에 숨어있던 광기를 끌어낸다. 다만 내 눈에는 그가 제자의 재능을 발굴한 참된 선생이 아니라 또다른 싸이코로 보이는 이유는 플레처가 단지 제2의 찰리 파커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만을 인생 목표로 삼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플레처는 사실 누가 제2의 찰리 파커가 되고 또 그 또다른 찰리 파커가 어떤 삶을 사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앤드류 이전에 이미 제자를 죽음으로 내몬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 사람은 그냥 제2의 찰리 파커의 스승이 되고 싶었을 뿐이야. 그게 음악적 열정에서든 명예욕에서든-사실 명예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위플래쉬]는, 나에게는 열정의 가치를 일깨우는 영화가 아니다. 제자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려고 모진 말도 불사하는 선생의 훈훈한 음덕에 대한 영화도 아니다. 나한테는 그냥, 사람 마음에 비수를 내려꽂고 핵직구를 아무렇지 않게 던져넣는 플레처에게 자극받은 앤드류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지독한 드러머로 변한 영화, 그냥 또다른 재즈 드럼 싸이코의 탄생을 그린 영화일 뿐이다. Psycho maketh a psycho. 그 예술적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든지, 나는 이런 맹목적인 삶은 그다지 부럽지 않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를 "눈 먼 열정의 독선과 아이러니에 대한 영화"라고 평했다. [위플래쉬]의 감독 다미엔 차젤레는 영화 속 결말 이후 앤드류는 "서른 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내 생각의 마무리로 충분하겠지.


다만 어떤 결말이 되더라도 He was f**king perfect at the moment.




2015. 0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