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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7년의 밤], 2011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정유정이라는 작가와 [7년의 밤]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국 문학에는 무관심하고 무지한 내 귀에도 여러 번 들릴 만큼 대단했으니까. 그래서 읽어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기본적으로 에세이와 소설은 즐기지 않는 내 성향 때문에 그 관심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 관심이 실제 책 주문으로 이어지게 된 건 후배의 지나가는 듯한 추천이 있어서였다. 평소 책을 많이, 다양하게 읽는 후배이기에, 수많은 블로그 서평이나 권위있는 문학 평론가의 추천사보다도 "체고"라는 그녀의 감상을 믿어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에도 이 아이가 추천하는 책은 주저없이 믿고 읽겠다.


너무 멀게만 느껴지던 우리 문학계에 이런 대단한 필력과 상상력을 가진 작가가 있다는 게 놀랍다. 특히 이 책에서 드러난 메시지는 속이 시원할 정도로 명확하다.


"사실이 전부는 아니야" (p.25)라는 구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 사실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지. 그것을 사이코패스, 부성애, 복수 등등 전혀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로 한데 묶어낸 필력에 거의 압도되다시피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그 꿰는 솜씨마저 뛰어나다. 묘사는 또 얼마나 지독하게 꼼꼼한지. 내 추천으로 이 책을 읽은 아버지가 "세령호는 실재하는 곳이라니?" 물어보실 정도였다. 꼼꼼하게 구축된 세계관 안에서 현수와 영제 사이에 보이지 않게 흐르는 긴장감은 숨도 못 쉴 정도로 팽팽하다. 그 치밀한 구성과 묘사를 체감할수록 '작가 분 최소 기자 출신'이라는 생각은 거의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되었다 (작가 이력 내멋대로 조작?). 끔찍한 사건의 유리 파편 같은 이야기 조각들을 꿰매어 사실이 아닌 진실을 찾아가는 소설이지 않을까 짐작하긴 했지만, 흡인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절대로 과한 평가가 아니다. 이 책은 일련의 표절 시비와 실망스러운 대응으로 빚어진 한국 문학에 대한 내 불신을 아주 보기 좋게 깨뜨려 주었다. 잡은 순간부터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는 시간을 빼고는 몰두해서 읽었고, 첫 장을 편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도 밤새서 읽으시고는 아침식사 자리에서 먼저 책 이야기를 꺼냈다.

클라이막스가 좀더 격렬했으면 좋았으려나. 하지만 에필로그 직전에서는 쓸쓸하면서 묵직한 감동 같은 것 때문에 목이 메이기는 소설이기도 했다.



p.s. 왜 상처받고 좌절하는 소설 속 영혼들은 열이면 열 프랑스로 가는지 의문이다. 그 나라가 언제부터 힐링의 땅이었나...


진짜 너무 마음에 들어. 체고.




201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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