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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록/영화: Movie

[바닷마을 다이어리] 언제까지 머물러도 좋을, 네 자매의 오래된 집


언제까지 머물러도 좋을, 네 자매의 오래 된 집.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았다.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2015년 칸느 프리미어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일단 이 영화의 캐스트가, 도저히 주목하지 않고서는 배기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기 때문이지만 또 하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드디어 부담 없이 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서였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열두 살 소년 가장([아무도 모른다])이나,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 사실은 병원에서 뒤바뀐 남의 자식이라는 걸 알게 되는 아버지([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보다는, 가출한 아버지가 낳은 이복 동생을 감싸 안는 세 자매 쪽이 감정적으로 (비교적)덜 힘들지 않겠냐는 거지.




하지만 스토리는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15년 전에 바람 나서 집을 나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도 머리 속이 뒤죽박죽 엉킬 일인데, 그 불륜 상대가 낳은 이복 동생의 존재라니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아버지의 여자와 이복동생의 관계는 더 복잡하다. 족보가 개판).

이 영화에 결정적으로 비현실적인 기분, 위화감을 더하는 건 따로 있다. 웬만해서는 존재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복 동생을 따뜻하게 품는 세 자매와, 아이의 등장에 불쾌하게 수군대는 말소리의 부재가 그것이다.


그러나 현실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이 모든 일은 감정을 폭발하는 데 소모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과거의 시간을 복기하게 된 등장인물들이 앞으로의 자신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아 올려갈 방식에 집중하기 위한 첫머리로 보인다. 비극 자체를 다시 조명하는 대신, 그 비극에 연관된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으면서 궁극적으로는 본인을 보듬는다는 전개이다. 그 덕에 영화는 설정만은 막장이지만 굉장히 부드럽고 순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일본 특유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과장 없이도(근데 솔직히 미화는 좀 있는 것 같다. 갑툭튀한 이복 동생이라니=_=) 세상을 보는 시선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구나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만큼.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배우들을 부리는 감독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했지만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은 유달리 화려하다. 아야세 하루카, 나가사와 마사미, 카호, 히로세 스즈가 자매로 나오는 것부터 대박인데 조연이 무려 키키 키린, 오오타케 시노부, 카세 료, 츠츠미 신이치, 후부키 준, 릴리 프랭키다. 하나같이 개성 강한 스타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로 묶었는데도 이런 영화를 부드럽게 무두질하는구나, 그 솜씨가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보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 하나를 더 말해보자면... '카마쿠라의 사계는 아름답구나'라는 것.

[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을 보면서도 영업 당했지만 정말 가 보고 싶은 낭만적인 마을이다.



ps 1. 배우들을 꽤 전형적으로 활용한 것 같기는 하다. 일본 배우들, 특히 여배우는 역할 선정이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는데-그래서 우에노 주리나 요시타카 유리코 같은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듯-, 주연인 아야세 역시 이 영화에서 아주 사소한 이미지 변신도 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더 진하고 영리하게 활용한다. 확실한 건 연기를 잘하기에 식상하지 않다는 것. 이미지 소비 어쩌고는 좀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ps 2. 히로세 스즈를 보면서 배우의 사생활 관리는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병헌처럼 사적인 문제를 아예 없던 일처럼 덮어버릴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더더욱. 영화 보는데 저 꼬맹이가 까불었던 게 자꾸 떠올라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ps 3. 보다가 영화관 객석이 빵빵 터지는 장면이 꽤 나왔다. 즐거웠다.


ps 4. 배고프다. 영화에서 먹는 장면이 대체 얼마나 나온 거야.




2015.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