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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둔 아이폰이 띠링띠링 울려댔다. 알람 설정도 안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자꾸 울려대는 소리가 귀찮아서 짜증을 내며 아이폰을 확인하니 학교 교학과와 학부 강사님에게서 문자와 전화가 와 있었다. 여행하면서 잊고 있던 한국에서의 나의 존재를 새삼 확인하는 듯 했다. 내가 그래도 어디에선가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좋아해야 하나? 일단 자는데 방해받았으니 성질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대로 일어나니 아침 6시 33분이었다. 어제는 인기척에 깼는데 오늘은 기계음에 일어나다니. 크헝.


이날은 그동안 가 보려고 했지만 가지 못했던 곳에 가기로 했다.


세기말,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일찍,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로서 당대 유럽의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의 수도이기도 했던 빈은 유럽 특히 주변국의 예술가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리하여 이 도시에서 활약했던 예술가 중에는 오스트리아 사람인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만이 아니라 독일 사람인 베토벤도 있었다. 이날은 저 세 사람이 나란히 묻혀있는 빈 중앙 묘지에 가 보기로 했다.




혼자이지만 아침은 야무지게 차려 먹었다. 그렇게 써 먹었는데도 J씨와 사 둔 식재료-뭐 얼마 있지도 않았다. 계란이랑 양파, 버섯 정도?-를 어떻게든 활용해야 했다. 돈도 돈이지만 우리 고모가 음식은 남기는 거 아니랬어 (밥풀 남겨두면 까치가 내 이를 하나하나 쪼아 먹을 거라나. 어린 마음에 놀라서 밥그릇을 싹싹 긁어 먹었던 게 지금까지 습관이 되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그래서 이날 아침은 버섯을 넣은 계란찜, 스팸, 엄마표 고추장과 어제 먹다 싸 온 감자튀김 (냄새가 너무 나더라. 배고파서 혼났다). 아침 일찍 주방을 독차지하고 야무지게 상을 차렸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섰다. 지난 밤에 눈이 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 추위면 견딜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장갑이 없어 며칠째 맨손으로 다녀 손등이 부르텄지만 오늘도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고 다니면 그런 대로 괜찮겠지.


교통권이 만료되어 무임승차도 생각해 봤지만 혼자 있으니 간이 콩알만해져서 나쁜 짓을 할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마음 편하게-그리고 통 크게-일주일 교통권을 샀다. 그 전에 빈을 떠나겠지만 교통권 사기가 너무 애매했어.


간밤에 알아봐 둔 대로 서역에 가서 6번 트램을 탔다. 트램을 어떻게 타는지 몰라 일부러 안 타던 때도 있었는데, 익숙해지니 버스보다 더 편하다. 눈이 쌓인 시내를 벗어나 내가 탄 트램은 씩씩하게 빈 중앙 묘지로 향했다.



빈 중앙 묘지 입구


가만 생각해 보면 서양에는 묘지가 기피 시설(aka 혐오 시설)이라는 이미지가 없는 것도 같다. 빈 중앙 묘지를 생각하면 역시 명사들의 안식의 장소로 유명한 파리 페르 라 셰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두 시설 모두 시내에서 멀지 않다. 심지어 페르 라 셰즈는 그 주위로 주택가가 들어서 있는걸. 우리는 묘나 화장터를 외딴 교외에 쓰는데, 혹시 여기에도 죽음과 매장에 대한 동서양간 인식이나 태도의 차이가 있어 그것이 작용할 탓일까?


트램에서 내리니 눈발이 거셌다. 기온도 어째 더 내려간 것 같다...? 음, 추워.

그래도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라는 클래식의 아웃사이더들(...)을 만나러 힘차게 묘지 안으로 들어섰다.



근데 망했다. 베토벤 묘지를 못 찾겠어.


음악가 묘역은 MUSIKER라는 표지만 따라가면 된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그런 게 죽어도 안 보인다. 따로 음악가 묘역을 표시한 것이라고는 묘지 구석에 꽂힌 작은 지도에 베토벤 비석만 성의없이 표시한 게 전부였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오가는 사람들도 한두 명, 그것도 성묘 가는 사람들 뿐인데 그런 사람들 붙잡고 "베토벤 무덤 어디 있어요?"라고 눈치 없이 물어볼 수도 없고... 게다가 눈발은 더욱 거세져 이제는 우산을 쓰지 않고는 얼굴로 들이치는 눈바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맨손을 호호 불어봐도 손은 점점 얼어가고. 아 안돼ㅠㅠ


1시간 30분 정도를 헤매다가 '그래, 난 클래식 팬도 아닌데 뭐'하며 베토벤과 슈베르트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입구로 돌아오는 길에, 입구에서 들어올 때 봤던 영구 행렬을 먼 발치에서 발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니, 이렇게 유명한 곳에 관광 표지가 없다는 게 말이 돼?'라는, 참으로 무지한 생각을 하며 투덜대고 있었는데, 그 영구 행렬을 보면서 내 생각이 짧아도 한참 짧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다. 빈에 사는 누군가가 가족의 곁을 떠나 영면에 드는 곳이고 그 가족이 그를 그리워하며 찾는, 간절한 삶과 죽음의 장소일 터였다.


아마 베토벤과 슈베르트도 이곳에서는 단지 깊은 잠에 빠진 빈 시민 중 한 명일 것이다. 유명인의 묘지를 친절하게 큼지막한 지도에 표시해 둔 페르 라 셰즈에 익숙해져서 관광객 마인드로 이곳에 왔으니 이렇게 생각했던 게 이상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핑계야 어쨌든 부끄러운 생각임에 틀림없다.

글쎄... 빈도 페르 라 셰즈처럼 지도에 표시를 해 두었는데 내가 못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나야 뭐 소문난 길치에 지도 둔재니까ㅠㅠ- 고지식해도 묘지 본연에 충실한 빈 시의 태도가 파리의 그것보다 더한 위로 겸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쨌든 그렇게,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칼바람을 맞던 나는 미친 추위를 뚫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미테 역에서 트램을 타고(아마 O번 트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로 향했다. 베토벤과 슈베르트 묘지를 찾지 못해 어쩐지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마저 찾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조금 불안해졌던 것 같다. 요금 아까운 줄 모르고 로밍 켜서 블로그에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찾아가는 법을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으니.




다행히 이 걱정은 기우였다. 트램에서 내리니 바로 눈앞에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와 쿤스트하우스'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J씨가 알려준 '시티맵투고(City Map 2 go)'* 어플을 켜고 확인하니 쿤스트하우스가 더 가까워 그 쪽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 이 어플 진짜 명작이다. 완전 추천. 여행하는 도시를 검색해서 통째로 지도를 다운받고 나면 내가 있는 위치와 가고 있는 방향까지 확인할 수 있어 나처럼 지도가 있어도 못 읽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더 좋은 건 공짜라는 것.



주택가에 능청스럽게 숨어있는 쿤스트하우스 빈 (Kunsthaus Wien).

시티맵투고를 따라가면 마법처럼 나타난다.


직역하면 '예술의 집'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소장하고 몇몇 기획전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쿤스트하우스 빈은 훈데르트바서가 세 번째로 기존 건물을 개조한 곳이다.

사실 쿤스트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은 미술관은 그라츠에도 있지만,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실내를 직접 구경할 수 없는 관광객들에게는 그 내부를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다*' 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박종호,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p. 374


문득 그라츠에도 가 보고 싶어진다. 거기 쿤스트하우스도 조형미만으로도 상당히 볼 만한 건물 같은데.




독일어 억양이 너무 강해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를 구사하는 매표원에게서 표를 샀다. 원래는 9유로 정도인데, 이유는 모르겠지만-지금 생각하면 학생 할인 같기도 하다. 근데 나 학생증 안 보여줬는데?!- 이날만 6유로에, 쿤스트하우스에서 하는 사진전까지 볼 수 있는 표를 사서 들어갔다. 직원이 뭐라고 설명하기는 했는데 억양이 정말 심해서 "6유로만 내면 된다"는 말만 귀신 같이 알아들었다. 친절하니까 됐어.


쿤스트하우스는 앞서 말한 대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모아놓은 곳이다. 전날 보았던 클림트나 쉴레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비교적 최근의 인물이어서 더 현대적으로 느껴진 탓도 이지만, 훈데르트바서의 그림은 사실 그림이라기보다 난해한 팝아트 같았다. 그래도 장작 위 욕조에서 목욕을 즐기는 사진 속 그와 닮은 그의 그림들의 유쾌함과 따뜻함이 싫지는 않아서, 나오는 길에 엽서를 몇 장 샀다.


쿤스트하우스 1층 기념품점에서 그가 디자인(했는지 아니면 그냥 그의 그림을 우표로 만든 건지 모를)한 우표 세트도 거금 8유로를 주고 샀다. 훈데르트바서가 생전에 우표도 디자인했다는 걸 봐서는 그의 디자인 우표일 가능성이 높긴 한데... 흠. 어쨌든 정말로 봉투에 붙여 쓰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독특하고.. 좋다 (예쁘다고는 말 못 하겠어). 아마 정말 이 우표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만 붙일 수 있지 않으려나.


쿤스트하우스 내부는 생태주의, 자연주의를 표방했던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을 따라, 건물을 이루는 거의 모든 선이 곡선이었다. 실내는 알록달록한 타일로 장식되어 들어와서 서 있기만 해도 최소 놀이공원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쿤스트하우스에서 나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로 가는 길. 걸어서 3~4분 거리, 지척에 있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비슷한 취지와 디자인 의도를 가진 바르셀로나의 까사 바뜨요보다 조금 덜 유명하지만, 가우디의 까사 바뜨요보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가 내 눈길을 더 사로잡았다(난 오스트리아랑 잘 맞나봐!!!). 빈의 무채색 아파트 사이에서 혼자 알록달록하고 혼자 부드럽다. 뭐 대단한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사진을 찍을수록 그 색감에 반해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용기 내어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 나도 이 멋진 공간을 배경으로 내 모습을 남기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쉽지만, 그래도 내 눈에 건물의 아름다움을 담았으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그 앞에서 더 사진 찍고 있기가 민망했다. 입구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각 방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이 초인종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데, 이게 정말 사람들이 사는 곳이구나라는 게 확실히 와 닿으니 그 다음부터는 사진 찍기가 조금...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맞은편의 기념품 상점 건물에 들어왔다.

춥기도 하고, 기차에서 쓸 엽서도 좀 사야겠고. 


조금 미적거리다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1번 트램을 타고 라트하우스 플라츠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눈앞에 빈 시청(라트하우스)가 보였다. 그런데 사람이 유독 많아. 뭐지? 하며 다가가니, 아!




시청 앞 광장에 스케이트장이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1월 말, 겨울이 한창이다.

그것도 그냥 운동장처럼 만든 게 아니라 코스를 만들어 보다 즐겁고 복잡하게 스케이트를 지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재밌냐 꼬맹이들?!


그러고 보니 주위에 가족 단위, 친구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고전적인 라트하우스의 위풍당당함과 빈 꼬마들의 즐거운 모습에 취해 있으려니 어쩐지 런던 리젠트 파크에서의 오열(;;;)이 기억나 슬슬 그 자리를 떴다.




링 슈트라세를 건설할 때 지역에 따라 각각의 기능을 분할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지역이 지금의 '트하우스 플라츠'를 중심으로 하는 링의 서부 지역이었다. (...)

이 지역을 처음 개발할 때 지금의 플라츠(광장)인 큰 지역을 사각형으로 비워두고, (...) 서쪽에는 시청(라트하우스)을 배치하고 시청을 마주보는 동쪽에 부르크 극장(궁정극장)을 배치했다.

또한 남쪽에는 국회의사당을 세우고 북쪽에는 빈 대학을 지었다.

이렇게 사각형의 네 변을 차지한 네 건물은 무엇을 뜻하는가? 행정, 입법, 학문, 예술을 의미한다. (...)

그들은 '시민들을 위한' 행정, 그리고 민주주의와 학문과 예술이 함께 꽃피는

20세기의 새롭고 이상적인 도시를 꿈꾸었던 것이다.


박종호,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pp. 314-315




시청 앞을 떠나 슬슬 걸으니 부르크 극장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면 이런 모습.

이 시간에는 공연이 없는지, 평일 오후는 극장 주변이 조용했다.

슈타츠오퍼는 중심가에 있어서 그런가 늘 사람이 많던데.




빈의 정계, 재계, 예술과 학계 유명인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는 카페 란트만.

국회의사당 앞에 있다보니 대통령이 여기서 신년 회견을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그 명성대로 안에는 쫙 빼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칼바람을 맞아 몰골이 말이 아닌 나는 일단 패스하기로.




라트하우스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시내 한복판에 떡 하니, 담도 없이 놓인 국회의사당이었다.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는 제정 통치 역사가 길어서 민주주의 역사를 대표할 인물이 없어

다른 나라와는 달리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동상을 세워두었다고 하는데,

기념적인 동상의 부재를 보완하기에는 사실 담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우. 부내 나는 모피 코트.


천천히 걸어서 한 바퀴를 돌며 라트하우스의 건물들을 모두 돌아봤다. 그런데 어찌나 춥던지... 이날따라 유독 추웠던 것 같다.

일찌감치 인천에서 장갑을 잃어버리고 또 빈에 와서도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알면서도 나는 그동안 장갑을 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장갑을 사려고 돌아다닐 때마다 옷 가게나 잡화점을 유심히 살펴봤고, 빈 시내에도 장갑이나 방한모를 파는 가게가 여럿 있었지만 쓸 만한 장갑은 다 비싸ㅠㅠ 비싼 가죽 장갑이 많았고(돈 없는 학생 배낭여행자는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게 하는 금액, 50유로ㅠㅠ), 얼마 없는 털장갑은 질이 너무 떨어져서 돈 주고 살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은 어찌나 춥던지,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고 손을 호호 불어봐도 도저히 추위가 가시지 않는 것이다. 이미 중앙 묘지에서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급기야 옷에 붙인 핫팩을 억지로 뗴어내서 보온 주머니처럼 만들었는데도 진짜 견디기 힘들더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케른트너 거리로 갔다. 거리 끝자락에 붙은 아주 작은 가게에 들어갔더니 주인 아저씨가 어떤 장갑을 찾느냐고 물었다. 가죽 장갑 말고 털 장갑 달라고 했더니 몇 벌 보여주더라. 그 중 가장 싼 털장갑(아저씨 말로는 토끼 털이라는데 토끼 털이 원래 싼 털인감?!)을 8.5유로를 주고 꼈더니 추위가 한결 가셔서 만족스러웠다. 첫날 봐 둔 가게인데 추위란 추위는 다 겪고 그제야 장갑을 사다니. 비싸기라도 했으면 엄청 후회할 뻔 했다. 친절한 주인 아저씨도 좋았고.



페스트 기념탑 (Pestsaule)

그라벤 거리에 위치한 페스트 기념탑은 1769년 레오폴트 1세가 페스트 퇴치를 기념해 세운 기념탑이다.


이 다음날에는 할슈타트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 후에 다시 빈에 오기는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쇤브룬에 갈 생각이라 빈 시내와는 이걸로 마지막이지 싶었다. 다소 무리해서 마음에 드는 니트를 한 벌 사고, 첫날 친절한 바리스타와 따뜻한 격려를 주었던 스타벅스에 다시 찾아가 일기를 썼다.

그때의 아늑함은 조금 덜하고, 친절했던 바리스타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곳에서 몸을 녹이며 하루를 회상하니 혼자서도 씩씩하게 돌아다닌 자신을 다시 느끼며 뿌듯해졌다.


내 마음의 위안이 되어준 스타벅스는 Bräunerstraβe 거리 초입에 있다. 페스트 기념탑이 바로 보이는 골목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려나. 다시 빈을 찾게 되면, 꼭 들르고 싶은 곳이다.




슈테판플라츠 역의 플랫폼.

괜히 사진 올려보고 싶었던 빈 지하철 역사 모습.




미테 역으로 돌아오는 트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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