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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이제 와서 여행기를 쓰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제대로 쓸 수나 있을지 걱정이다.

누구 말마따나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하루하루가 달라요, 기억력이랑 체력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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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간 : 2015.09.23-2015.09.25



공항으로 가기 전날이 되어서야 아버지께 "나 내일 일본 가"라고 말씀드렸다. 엄마한테는 그 전날에 얘기했고.


통보가 아닌 의논을 훨씬 선호하는 (그러나 본인은 의논이 아닌 통보를 하는) 아버지는 "뭐? 너 혼자? 그런 건 미리 얘기해야지!"라며 황당해 하셨으나 "돈도 있고, 일본이니까 혼자 가도 위험하지 않을 거고, 두 밤만 자고 올 거니까 돈워리워리~"를 태평하게 읊는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납득 안 하면 어쩌겠는가. 항공권 환불 위약금이 항공권 가격의 절반인데.


집에는 아침에 간다고 했지만, 사실 '아침 비행기=공항에 새벽 도착'이기 때문에 공항 버스 첫 차를 탔다. 자소서를 쓰느라 밤늦게까지 깨어있던 혈육이 정류장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아직 여름이 완전히 가신 게 아니라 새벽이어도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캐나다 퀘벡에 있는 후배와 카톡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국은 새벽 아니에요? 왜 이 시간까지 깨어있어요?"라며 의아해 하던 후배에게 캄캄한 새벽 풍경을 찍어 "공항 버스 기다려"라는 말과 함께 보냈더니 퀘벡에 오는 거냐며 흥분으로 가득한 톡을 받았다.


... 아닌데?ㅋㅋㅋ 근데 나도 지금 이게 캐나다 가는 길이면 좋겠다. 너희 본 지도 정말 오래 됐어.




워낙 이른 시간이라 정류장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다. 어두컴컴한데 혼자 우두커니 버스를 기다릴 나를 혈육이 걱정해 줄 정도였으니.

그런데 의외로, 내가 정류장에 온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세 사람이 캐리어를 들고 나타났다. 가족 사이처럼 보였다. 이런 시간에 공항에 가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다니, 얼마나 신기하던지. 애초에 깨어있는 사람이 나랑 내 후배 뿐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 후로도 공항 버스는 사람들을 연이어 태우며 영종도를 향해 달렸다. 뒤늦게 짐을 싸고 교통 정보를 찾느라 밤을 샜던 나는 용케 버티다가 광교를 지날 때쯤 기절했다.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버스는 이미 출국장에 거의 도착했다.


지난 유럽 여행 때는 공항 버스에서 내리면서 비싼 장갑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개고생을 한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뭐 두고 내리는 거 없지?!, 비몽사몽 간에도 주위를 살피면서 민속촌 줄타기 장인이 줄 타듯이 조심조심 너울너울 버스에서 내렸다. 하여튼 산만해ㅋㅋ




밥 먹듯이 공항을 드나든 건 아니지만 인천국제공항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낯선 건, 그 이른 시각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풍경 그 자체였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아침부터 외국에 나가려고 여기 왔단 말이야?라면서. 9월 하순 무렵이니 여행 성수기도 아닌 것 같은데...

하긴, 명색이 국제공항인데 이 정도는 모이겠지. 그래도 출국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나만 빼고 다 부지런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퍼질러 자고 있을 시간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새벽부터 활기차게 일하는 뚜XX르 알바생들한테서 아침식사로 먹을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려니 또 기분이 묘해지고.




얼마나 이른 시간이었냐면, 로밍을 신청하려고 간 슼 로밍 센터도 문을 열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런데도 그 전에 이미 한참을 기다려 항공권 체크인을 했다. 출국 심사도 한참 걸렸고.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얼떨결에 자동 출입국 신청을 해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안 했으면 한 10분은 더 서 있었을 듯.




출국장에 들어서니 사람이 많은 이유가 납득되었다. 가까운 중국, 일본 뿐만 아니라 필리핀이나 칼리보로 가는 비행기가

이 시간에 많이들 출발한다. 어쩐지 출국장 줄 서 있는데 앞으로는 일본인 아줌마들, 뒤로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더라.

여긴 한국 땅인데 이상하게 한국인은 나 뿐인 것 같은 경험이었다. 명동 아닌 곳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이야...

이 보드를 보니 다 이해된다.



면세 구역을 씩씩하게 걷는 어느 처자의 뒤를 따라서.


게이트에 도착하니 7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그래도 나도 꽤 부지런을 떤 편에 드는지, 내가 도착하고도 시간이 지나서야 같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책도 조금 읽고, 아이폰 충전도 하고, 삿포로 시내 들어가는 법에 대해서도 뒤늦게 알아보았다. 일본행 비행기라 그런지 한국 국적기인데도 여기저기서 일본어가 들렸다. 난 이럴 때는 꼭 벌써부터 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더라. 저번에는 아부다비에서 프랑스에 한 발 걸친 기분을 느꼈는데.


비행기 탑승은 정시에 시작되었다. 곱게 차려입은 일본 여자아이들 틈에 나 혼자 트렌치 코트를 빼 입고 (삿포로라 추울 줄 알았단 말이에요ㅠㅠ) 송아지만 한 배낭을 메고 비행기에 탔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비행기는 몇 번을 타도 좋다. 그러고 보면 내 모든 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첫 배낭여행도 그렇고, 두번째 유럽 여행도 계획에도 없다가 비행기 표를 지르는 걸로 시작됐고, 삿포로도... 심지어 제주도도 국내에서 비행기 타고 갈 곳을 찾는 와중에 걸려든 여행지였다. 나 전생에 비행기 엔진이라도 됐던 걸까?


인천에서 삿포로까지는 비행기로 세 시간 거리이다. 일본 남자와 어색하게 나란히 앉아 입국 신고서도 쓰고 간식도 먹고. 이 남자 분, 매너가 좋아서 펜도 빌려주고 화장실 가는 길도 비켜주었다. 감사합니당.


간식으로 나온 빵과 주먹밥을 먹자마자 또다시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 앙대... 삿포로 시내 들어가는 법 알아둬야 하는데...




아무래도 밤 샌 게 컸다. 여행 전후와 여행 중에는 체력 관리가 필수인데 밤을 새 버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삿포로에 다녀온 후 앓은 몸살은 이때의 과로로부터 시작됐지 싶다.

비행기 안에서 설레기도 하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이것저것 생각도 좀 해 보고, 그러느라 잠도 대강 자는 둥 마는 둥, 산만하게 세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삿포로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열한 시 이전이다. 캬.


롯데면세점 쇼핑백을 잔뜩 든 일본인들과 함께 입국장으로 향했다. 삿포로 치토세 공항은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크거나 화려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오가는데도 꽤 조용하고 정갈한 게 인상적이었지만. 공항 직원들 중에서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것도 신기했다.


입국 심사는 젊은 여성 직원이 맡아주었다.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첫 일본인이어서 살짝 긴장했지만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을 했더니 일어 잘한다며 칭찬해 주었다. 오히려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눈이 휘둥그레지던걸. 되려 난 그 모습에 놀랐다. 아, 그리고 마약 갖고 왔냐며 보여준 마약 사진에도 놀랐고 (그렇게 대놓고 물어본들 갖고 왔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마약은 무슨, 굵은 소금 보는 줄).

일본을 찾는 모든 외국인이 다 일어를 할 줄 아는 건 아니더라도, 그리고 일본어가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탑 랭크 언어는 아니더라도, 일본 공항에서 일어 쓰는 외국인이 그렇게 보기 드문 존재인 건가...? 내가 무슨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있다 하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홋카이도는 중국어는 좀 통하지만 한국어는 하나도 안 통할 정도로 한국보다는 중국과 심리적인 거리가 좀더 가깝다고 한다. 삿포로를 찾는 외국인은 일어를 아주 잘하거나 아예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아 물론 내가 일어를 잘한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흠흠.


아무튼 처음부터 여기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된다고 생각하니 몸은 피곤한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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