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록: Voyage/'14 mon voyage en Europe

#Rev4 혼자가 되기 직전이 가장 외롭다_Day 3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를 당신이 알아야 하는 주의사항 : 제목과 글 내용의 부조화와, 글의 부실함에 대해 미리 경고 드립니다. 이날 이야기는 엄청 쓰기 싫었나 봐요.



누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다섯 명이 쓰는 방에 나까지 포함해서 한국인이 세 명이니 이상할 것 없지만ㅋㅋ그래도 너무 이른 감이 있어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전날 그렇게 돌아다녀 호스텔에 오자마자 쓰러지듯이 잤는데도 금방 깬 걸 보면 인기척이 꽤 크긴 컸다.

대체 누구야. 침대에 커튼처럼 달아놓은 코트를 살짝 젖히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Y씨가 보였다. 아침 일찍 뮌헨행 기차를 탄다더니 서둘러 준비하는 것 같았다.

인사해야지 했지만 마음 뿐이다. Y씨가 짐을 정리해 문을 살짝 닫고 나갈 때까지도 잘 가라는 인사 한 마디 못 할 정도로 대책없이 피곤했다.

그래도, 그렇게 문을 닫고 나가는 실루엣을 보자니 어쩐지 내 마음 속에 한 사람 분의 아쉬움이 쌓였다. 하루라도 함께 다니며 이야기를 나눈 Y씨가 가 버리니 마음이 허전하다. 내 발치에서 자던(?) 베아트리스도 이날 저녁 라이프치히로 기차를 타고 돌아간다고 했다. 어제 너는 왜 유럽에 왔니, 독일에서 공부하면 뭐가 좋니, 난 지도 교수님이 무슨 생각하고 오라고 하라더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름대로 정도 들었는데 (완전 착했던 베아트리스ㅠㅠ 밥이라도 같이 먹을걸 그랬나봐).




이날은 J씨와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J씨는 밤에 야간 열차를 타고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떠났다.

난 이때가 정말 싫다. 누군가를 모두 떠나보내고 다시 혼자가 되는 것. 첫 배낭 여행 때에 비하면 외로움에는 나름대로 익숙해졌지만, 그리고 한국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고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에서 혼자가 되는 이 외로움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약속 없이 만나서 기약 없이 헤어진다. 아쉬움을 느끼는 이는 나 뿐인가 봐ㅠ


그래서 이날 아침식사는 특별히 내가 준비했다. 전에 사 두었던 식재료도 마저 써야 하고... 먹을 것으로 전하는 석별의 정ㅋㅋㅋㅠㅠ



빈 슈타츠오퍼의 아침


빈 슈타츠오퍼에서 오페라를 1유로에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한 우리는 이날 호스텔을 나서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슈타츠오퍼 앞으로 왔다. 본 사람은 많은데 정작 우리는 어디서 예매해야 하는지 몰랐던 1유로짜리 오페라 표를 사려고. 유감스러웠던 건 슈타츠오퍼를 뱅뱅 돌아봐도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슈타츠오퍼 문이 열렸는지도 모르겠다는 것. 하하.

한참을 헤매고 있으려니 빨간 벨벳 코트를 입은 오페라 호객꾼이 다가왔다. 못 알아듣는 척 하며 슬슬 피했더니 몇 번 들이대다가 알아서 다른 사람에게 붙었다. 역시 눈치가 빨라야.


결국 우리는 오페라를 포기하고, 빈 교외에 있는 벨베데레 궁에 가기로 했다. 트램을 타야 해서 슈타츠오퍼 바로 앞에서 트램을 탔다. 이른 아침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침 공기가 찼다. 겨울이라 그랬겠지.



 





슈타츠오퍼 앞에서 D번 트램을 타고 도착한 벨베데레.



벨베데레 궁에 가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클림트의 [키스]를 보는 것.

딱히 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이미 레오폴트 무제움에서 에곤 쉴레를 있는 대로 찬양했지만,

어쨌든 클림트의 [키스]가 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으니까.

이 정도는 봐야 빈 구경 좀 했다 할 수 있지 않겠니?!



근데 난 그렇다 쳐도 J씨... 미대생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클림트에 관심이 없어 왜...






한파를 뚫고 벨베데레 도착.




'벨베데레'란 궁의 이름이다. 1683년 대대적으로 빈을 침공한 투르크 군대를 무찔러

일약 전쟁 영웅이 된 오이겐 공의 궁전이었다.

(...) 궁전은 양쪽 끝으로 떨어져 두 건물로 나뉘어 있다. 남쪽의 완만한 언덕 위에 있는 건물이 상궁이고,

북쪽의 낮은 대지 위에 있는 건물이 하궁이다.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상궁과 하궁 사이에 넓고 정리가 잘 된 프랑스풍의 정원이 위치해 있다.




(...) 벨베데레는 지금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주요 국립 미술관이다.

상궁은 19세기와 20세기 회화를 가진 '대 회화관'이며, 하궁은 중세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 박종호,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pp. 54-57


대단히 의미있는 장소라는 것은 잘 알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 이곳은 그냥 하나의 관광지, 하나의 미술관에 지나지 않았다. 여름 벨베데레는 아름답다지만 겨울에, 그것도 체력이 방전된 나(원래 체력이 저질)와 J씨(전날 새벽 3시까지 바에서 놀다 들어옴)에게 벨베데레는 수면에는 딱인 곳이었다. 우리 둘은 복도 안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사이 좋게 졸다가 나왔다.

그래도 몇 시간 더 잤다고, 나는 나름대로 힘을 내어 걸으면서 그림을 보았다. 마침 영어로 하는 단체 가이드가 있어 훔쳐 듣기도 하고.



클림트의 [키스]를 감상하는 나와 J씨.jpg...는 당연히 아님.

Source: Observer (http://observer.com/2012/07/morning-links-10/)


비몽사몽간에 돌아다니느라 Y씨가 '정말 아름다웠다'고 극찬했던 이 유채화는 나에게는 그저 한 장의 엽서로 밖에 남지 않았고, 기억 속에 묻힌 다른 벨베데레 소장 작품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인상을 남겨 그다지 할 말은 없다. 내 무지와 컨디션을 탓해야겠지만, 레오폴트 무제움에서 쉴레의 그림에 흠뻑 취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다만 [키스]에 관해 확실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그림에서 느껴지는 쉴레의 급진적인 성향과 자유로움, 젊음, 허무함, 날카로움에 비해 클림트라는 늙고 위대한 거장은 훨씬 안정감이 있었고 온화했다는 감상이다. 쉴레의 그림이 대놓고 야해서 좋았다는 건 결코 아님. 그리고 제일 유명했다. 누가 벨베데레 최고의 명작 아니랄까봐, [키스] 앞에 유독 사람들이 바글바글. 멀리서 봐도 아 저기가 [키스]가 있는 곳이구나 알아볼 수 있다.


"우리... 이제 갈까요?"라고 둘 중 누군가가 말해서 벨베데레를 나왔다. 누가 말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둘 다 너무 배고프고 졸렸으니까. 기온은 한낮이 되어도 오르지 않고 결국 눈발까지 흩날려서, 결국 호스텔로 돌아가 잠시 쉬기로 했다. 빈 중앙 묘지와 라트하우스에 꼭 가자고 마음 먹었지만 날도 너무 춥고 체력도 엉망이었다. 이래서 여행 중에도 체력 관리는 필수다. 엉엉.


마침 점심 때가 되어서, 들어가기 전에 슈니첼이나 먹어보자고 벨베데레 근처를 살펴봤는데, 호텔과 주택만 많을 뿐 레스토랑이 없어 식사를 하기에는 마땅치 않아 보였다. 그대로 트램을 타고 시내로 돌아와서, 무제움 콰르티어 뒤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원래 우리가 가려던 곳은 유X 카페에서 맛집으로 알려져 있던 슈니첼비르트라는 레스토랑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운이 별로였다. 눈발을 맞아가면서 애써서 찾아갔더니 글쎄 문을 닫았지 뭐야. 엄청 난감했다. "이젠 제발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자ㅠㅠ"라고 반쯤 포기하고 그대로 돌아오다가, 근처에서 센티미터라는 펍을 찾아 들어갔다.



의외의 발견, 센티미터. 체인 펍 같다.


레스토랑이라고 하기에는 뭐 하고, 펍에 가까웠다. 안의 분위기는 대략 이랬다. 덩치가 산만 한 (정말 산만 했다!) 웨이터가 다가와서 주문을 받아갔다. 우리는 굶주릴 대로 굶주려 있어서 슈니첼을 먹으려고 갔다가 버거까지 따로 시켰더니 양이 엄청났다. 이날의 대박 사건.




보라 저 무시무시한 나이프를.




카톡 프사로 해 놓았더니 후배 Y가 '거품이 자글자글하다'며 극찬했던 생맥주.



빈의 슈니첼. 이렇게 찾아 헤매게 만들었던 음식은 네가 처음이야.


생맥주까지 각자 한 잔씩 시켜놓고 호기롭게 식사를 시작했지만, 양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 나중 가서는 헐떡대면서 억지로 음식을 쑤셔 넣다가, 결국 반절 밖에 못 먹고 남은 건 싸서 왔다. 언제 이걸 먹긴 할 지 의문이었는데 결국 감자튀김은 나의 일용할 저녁 식량이 되었다. 그런데도 남아서 그 다음날 아침까지 먹었다. 대박.


그렇게 그냥 U반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다가 칼스플라츠 역에서 베아트리스와 우연히 맞닥뜨렸다. 베아트리스는 제체시온에 갔다가 페리스 휠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페리스 휠이면 도나우 타워에서 저멀리 보이던 그것 같은데... 지하철 환승을 하려는 우리와는 다르게 바깥으로 나가는 베아트리스에게 어디 가냐고 물으니 이대로 걸어서 숙소로 돌아갈 거란다. 깜짝 놀라 "이렇게 추운데? 넌 브라질리언이잖아!"라고 엄청나게 스테레오타입에 박힌 말을 해 버렸으나ㅋㅋㅋㅠㅠ 베아트리스는 웃으면서 "라이프치히에서 살면서 괜찮아졌어"라고 대답하고 칼바람이 부는 역 밖으로 사라졌다. 오오 우리의 착하고 다정하고 씩씩한 베아트리스.


방에 돌아오니 국적 모를 두 외국인이 짐을 풀고 있었다. 그 사이에 방에서 한숨 자고 일어난 나와 J씨는 짐을 풀었다가 다시 쌌다가 다시 풀기를 반복했다. 나는 이대로 여기서 내일을 준비하고, J씨는 야간 열차를 타려고. 이별에 쿨하지 않아서 "슬프다"는 말을 되풀이했던 것 같다. 안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까지 정들 수도 있나?! 빈에서 즐거웠다는 J씨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으니 좋은, 즐거운 여행 하기를. 영어 못한다고 쫄지 말고요.


나 혼자 남은 방에서 일기를 썼다. 빈에서의 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힘내자. 외로워 말고.